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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 발열체크를 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 발열체크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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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굵직한 구두 메시지를 실언 없이 전달하는 윤석열식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메시지 정치에 최근에는 '기념촬영' 방식이 접목됐다.

일례로, 현충일 전날인 5일에는 2017년 8월 18일 경기도 철원 육군부대에서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부상을 입은 이찬호씨와 기념촬영을 했다. 사고 당시 병장이었던 이찬호씨는 제조사의 무관심과 무책임을 비판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와의 기념촬영은 동일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관련된 메시지와 더불어 대형 방산업체의 비리와 관련된 메시지도 함께 담고 있다고 해석된다.

현충일인 6일에는 2010년 천안함 생존장병 전우회장인 전준영씨와 기념촬영을 했다. 군대에서 불행한 참사를 겪은 예비역 군인을 만났다는 점에서는 전날 기념촬영과 다르지 않지만, '북한'과 관련된 메시지도 담겼다는 점에서는 전날과 달랐다.

9일에는 그의 메시지 정치에 새로운 '도구'가 추가됐다. '장소'를 통해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추가된 것이다. 서울 남산예장공원 우당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것이 그것이다.

왜 이회영이었을까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 둘째)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내에 있는 이회영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이회영의 후손인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왼쪽 셋째)의 안내로 봉오동·청산리전투때 사용된 옛 체코군단의 소총을 살펴보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 둘째)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내에 있는 이회영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이회영의 후손인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왼쪽 셋째)의 안내로 봉오동·청산리전투때 사용된 옛 체코군단의 소총을 살펴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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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이회영 선생은 자신과 가족과 친족뿐 아니라 전 재산까지 독립운동에 바쳤다. 그를 포함한 이건영·이석영·이철영·이시영·이호영 6형제가 주동이 되어 총 59명의 친척이 중국으로 넘어가 독립투쟁을 집단적으로 벌였다.

'오성과 한음'의 오성 이항복을 10대조로 둔 이 집안은 이항복 이후로 딱 1대(代)만 빼고 계속해서 과거급제자와 장차관급 이상을 배출했다. 한국 최고의 명문가 반열에 드는 이 집안을 세상은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고 불렀다.

이 집안이 보유한 재산은 갑부 수준은 아니었지만 상당했다. 이런 재산이 민족해방투쟁에 고스란히 바쳐졌다. 진정한 의미의 '갑질'을 한 갑족이었으니,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명사로 칭송되는 것은 당연하다.

8일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회영의 손자인 이종걸 전 의원은 "윤 전 총장 측이 참석 의사를 밝혀와 행사에 초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우당기념관 참석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곳에서 윤 전 총장은 이런 말들을 했다.

"어른들께 어릴 적부터 우당의 그 삶을 듣고 강렬한 인상을 많이 받아왔다."

"여러분 다 아시다시피 우당 선생의 그 가족, 항일 무장투쟁을 펼친 우당 선생 6형제 중에서 살아서 귀국한 분은 다섯째 이시영 한 분이다. 다들 이역에서 고문과 영양실조로 돌아가셨다."

"우당과 가족의 삶은 엄혹한 망국의 상황에서 정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생생하게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는 어떤 인물을 배출하는가와 함께 어떤 인물을 기억하는가에 의해 존재가 드러난다."


위 발언의 핵심은 '이회영처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인물을 배출하고 기억하는 것이 한 나라의 존재를 드러낸다'로 정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윤석열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겠지만, 그가 이회영과 우당기념관을 선택한 것이 과연 자연스러웠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이유가 있다.

아나키스트 이회영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
 
우당 이회영 우당 이회영
▲ 우당 이회영 우당 이회영
ⓒ 우당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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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이 독립투쟁을 통해 세상에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나처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라'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시대 대중이 그에게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떠올렸을 뿐, 그가 세상에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는 따로 있었다.

이회영이 던진 그 메시지는 2019년 7월 25일 검찰총장 취임 이후 윤석열의 행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회영은 독립을 추구했지만 '독립이면 무조건 좋다'는 식은 아니었다. '어떤 형태로 독립이 돼야 한다'는 점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그에게 있었다.

그는 김원봉이나 신채호처럼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였다. 정부나 국가의 지배와 압제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지킨다는 무정부주의 신념의 소유자였다. 그런 신념으로 그는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단순히 조선왕조나 대한제국을 부활시키려고 자신·가족·친족과 재산을 바쳤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독실'한 무정부주의 신도였다. 남들뿐 아니라 가족도 감화시킬 정도였다. 이런 사실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백정기·엄순봉·이강훈 등과 함께 독립투쟁을 벌인 그의 아들 이규호(이규창, 1913~2005)는 상하이 주재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有吉明)를 죽이려다 미수로 그쳤다. 그 뒤 친일파인 상하이 조선인 거류민 부회장 이용로를 죽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그는 엄순봉과 함께 1936년 2월 4일 경성지방법원 피고인석에 서게 됐다.

그해 2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 '유길(有吉) 공사 모살한 양명(兩名)에게 중형'에 따르면 이규호는 무정부주의에 가담한 동기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친부의 감화로 무정부주의를 믿게 되어"라고 발언했다. 자기는 의롭고 위험한 일을 하더라도 자식에게만큼은 시키지 않으려 하는 부모의 마음도 대단하지만, 위험하지만 의로운 일을 자식에게도 시키려 하는 부모의 마음 역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이회영이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에 명운을 걸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이회영이 금과옥조처럼 생각한 것은 권력기관의 압제가 없는 독립국 건설이었다. 아나키즘 자체를 실천하는 게 그의 목표가 아니었다. 그것에 관계없이 권력기관의 억압이 없는 세상을 세우는 게 그의 꿈이었다. 2018년에 <한국학 논총> 제49권에 실린 장석흥 국민대 교수의 논문 '이회영의 민족혁명과 자유사상'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당은 아나키즘과 관계없이 권력이 지배하지 않는 세상, 억압과 수탈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일관된 자신의 정치사상이라고 했다. 자신('그'의 오타)의 정치사상은 사민평등하고 만인이 자유·평등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균등하게 부여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삼한갑족 출신이었던 이회영은 자신이 남의 지배와 압제를 받는 일 뿐 아니라 자신이 남에게 지배와 압제를 하는 일도 거부했다. 이정규의 <우당 이회영 선생 약전>에 따르면, 이회영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도 남에게 지배받고 싶지 않으니, 기소불욕(己所不慾)을 물시어인(勿施於人)으로 나도 남을 지배해서는 아니 될 것이 아닌가. 지배 없는 세상, 억압과 수탈이 없는 세상이 우리 독립 한국에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 말의 표현은 달랐을망정 나의 일관된 정견(正見)이었다.
 
권력기관의 민중 압제를 혐오했고 무정부주의에 심취했던 이회영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살아있었다면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민중이 아니라 오로지 검찰만의 권력을 지켜내는 데에 혼신을 다한 윤 전 총장을 달가워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나키스트로서, 더 큰 권력을 잡기 위한 윤 전 총장의 행보에 '우당 이회영'이라는 이름이 동원되는 것도 불쾌해 했을지 모른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하고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하고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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