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9 07:30최종 업데이트 21.06.09 07:30
  • 본문듣기
코로나19로 2년째 사라진 풍경 가운데 하나가 초등학교 운동회다. 예년 같으면, 도시의 아파트 한가운데 운동장에서는 봄가을로 운동회 연습한다고 음악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봄가을 초등학교 운동회 도심 아파트숲에 위치한 초등학교의 경우, 운동회 철이되면 운동회 연습 음악이 아파트 주변에 크게 울려퍼졌다. ⓒ 최수경

 
그런데 기실 코로나19가 아니어도 도시의 초등학교에서 동네잔치 같은 운동회를 찾기는 어렵다. 내 어릴 적 운동회 때는 아이스께끼, 쫀드기, 병아리 장수, 띠기(달고나) 만드는 좌판에 줄을 섰다. 아이들 잔치인지 어른 잔치인지 모를 만큼, 동네 사람들 모두 운동장에 모여들었다. 주인 따라 마실 온 개들까지 학교 운동장은 받아들였다. 읍내 식당은 가마솥을 내걸고 하루 정도 분점을 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교문 앞 병아리장수 누가 사가요? 물으니, 부모를 동반한 아이에게만 판매한다고 했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 베란다에서 병아리를 키운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 최수경

 
사라진 운동회

도시의 초등학교 운동회 풍경은 집에서 준비한 점심밥을 함께 둘러앉아 먹는 게 아니라 학교 급식이다. 운동회 총연습도 주변 아파트의 소음 민원에 눈치보며 한다. 학부모들 치맛바람을 차단하려 간식도 못 갖고 오게 하고, 물은 각자 개인 텀블러에 담아 바구니에 모아놓았다. 아이들은 운동장 담장의 느티나무 그늘이 아닌, 천막 아래 목욕탕 의자에 앉아 삼삼오오 노닥거린다. 
 

초등학교 운동회 풍경 흙에 궁뎅이 대고 앉아 흙장난하며 운동장 무대에 나갈 때를 기다렸던 부모세대와 사뭇 다르다. ⓒ 최수경

 
백 미터가 나오기 어려운 운동장에서 육십 미터 개인 달리기를 하는데, 체력 저하로 인해 이 악물고 달리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그나마 청백계주가 운동회의 백미다. 모처럼 하나됨의 함성이 운동장을 넘어 아파트단지를 쩌렁쩌렁 울린다.
 

아름드리 나무가 학교의 담장을 따라 자라는 초등학교 나무그늘을 주는 느티나무, 양버들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자라는 오래된 학교는 대부분 구도심화되거나 도시화로 인해 폐교가 되었다. ⓒ 최수경

 
그러나 이제 그 함성이 없을 날이 더 많다. 만국기 펄럭이는 운동장에 아이들 꿈 대신 미세먼지가 가득 채운다. 급기야 교실운동회로 전격 변경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나 아이들이 느끼는 것은 어른이 느끼는 충격의 강도와 다를 것이다. 아이들은 필수 의복으로 자리한 마스크에 일찌감치 적응되었을 것이다.
 

만국기 휘날리는 초등학교 운동회 코로나로 인해, 미세먼지로 인해, 만국기 휘날리는 가운데 아이들 함성과 함께하는 초등학교 운동회가 귀해지고 있다. ⓒ 최수경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지구는 푸른 행성이라고 그림책이 알려주었다. 숲은 늘 신선한 공기를 만들며, 물은 강과 대기를 순환하는 지구의 발전소라는 과학적 지식을 교육과정을 통해 전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제공한 선한 자연의 법칙을 순응하듯 의심 없이 체화했다. 어른들은 세치 입으로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그들의 손은 숨어서 자본 권력의 산업화를 쫓아 지구를 유린했고 자연의 자존심을 긁었으며 우리의 양심을 팔았다.
 

유치원 운동회 그림책 속에 푸른 지구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의심없이 체화하는 미래세대에게 약속을 지키고 싶을 것이다. ⓒ 최수경

 
유아들은 태어나자마자 마스크를 의복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기차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스크로 작은 얼굴을 다 가린 유아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마스크를 써야 본인은 물론 지구를 구하기라도 하는 듯 유치원생이 마스크 생활에 더 모범이다. 돈벌이에 급급해 국민의 안전위생을 등한시하고 방역의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부류는 대부분 성인이다.

코로나19가 추억 속으로 사라져도

코로나19가 시작된 작년 초 거리두기로 인해 집에 갇히자 사람들은 집 주변에서 근거리 산책을 즐겼다. 나도 우리 동네 하천에서 코로나 산책을 시작으로 급기야 코로나 만보걷기를 시작했다. 
 

코로나 만보걷기의 주 무대였던 하천변 교각 거리두기로 인해, 집 근거리 장소를 기반으로 한 만보산책. 급기야 만보걷기로 이어지면서 봄부터 초여름까지 식생의 다양한 변화를 모니터링했다. ⓒ 최수경

 
때로는 이어폰을 끼고 인터넷 강의나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귓바퀴가 몸 밖으로 튀어나오게 한 것은 비단 소리가 잘 들리도록 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귓바퀴가 없었다면 전 인류가 코로나19시대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최고의 방역은 마스크가 아니던가.
 

최고의 방역은 손 잘 씻고 마스크를 하는 것이라 했다. 귓바퀴가 없었다면 전 인류가 코로나19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 최수경

 
우리나라가 방역 모범국으로 무기도 없이 잠깐 동안 전 세계를 점령한 때가 있었다. 구체적인 의료 정보보다 문화우월성이 먼저였던 세계 제일 미국이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던 때이기도 했다.
 

미 의회 마스크 진풍경 코로나 확산 초기 미국의 마스크 풍경 중 하나 ⓒ jtbc뉴스 캡처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마스크 진풍경 문화와 마스크의 관계를 말해주는 다양한 모습들 ⓒ 연합뉴스TV 캡처

  
기후변화와 중국의 산업화, 폐기를 서둘러야 할 우리나라 석탄발전 등 수많은 요인이 초미세먼지의 유입을 가중시킨다. 인류의 백신접종으로 코로나19가 추억 속으로 사라져도, 집안 서랍 속 한편엔 마치 치약과 비누를 쟁여놓듯 마스크를 쟁여놓을 것이다. 마스크 안 쓴 날은 마치 구름 걷힌 한라산 정상에 오른 날을 마주하듯 할 것이다.
 

생활 필수품이 된 마스크 플라스틱, 비닐을 쓰지않으려 해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산하는 비닐쓰레기들. ⓒ 최수경

 
비말전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 생활이 2년여 지속되는 가운데, 백신주사만 맞으면 이전 생활로 돌아가리라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에 가려 잊고 있었던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눈코입 점막과 폐에 누적되면 건강을 서서히 앗아갈 미세먼지의 세상을 살고 있다. 비타민을 챙겨 복용하고, 운동으로 몸을 다듬고, 참선으로 자신을 보살피는 활동들에 있어, 안전한 들숨 날숨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스크를 끼고 강모래밭을 맨발로 걷는 금강트레킹 참가자들 대자연의 품에서 마스크를 끼고 임해야 하는 코로나19시대의 인류 ⓒ 최수경

 
인권이나 복지 등은 인간이 문명을 이루며 지구를 지속가능하게 지탱할 때 지구가 사람 사는 세상에 던지는 기회이다. 인간이 지구의 폐와 혈관을 더럽힌다면, 지구가 버티기 일보직전의 안간힘으로 몸부림치는 일이 잦아질 것이다.

누가 예측했던가. 인류가 마스크로 입을 막고 살게 될 줄. 누가 알겠나. 안 점막 전용 마스크가 눈을 가리는 날이 올지. 사람 살자고 생활필수품이 된 마스크 한 장이 남극 펭귄의 목을 감는 슬픈 그림책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지혜와 노력이 더 필요한 이유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