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6 14:10최종 업데이트 21.05.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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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내 소나무숲길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된 대학 캠퍼스 산책길 ⓒ 최수경

 
도심 속 대학 캠퍼스 공간은 시민들에게 숨통과 같다. 너른 캠퍼스 부지에 숲과 산책로, 잔디밭 등이 시민들에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름드리 소나무와 호젓한 숲길을 맛보려면 비용이 필요하다. 도심의 공원이 흉내 내기 어렵다.
 

카이스트 소나무숲 길 캠퍼스 조성 당시 대덕연구단지 특구 내에 잘 보존된 숲을 산책로로 활용하였다. ⓒ 최수경

 
한밭 들 구릉지에 일찌감치 들어앉은 대학 캠퍼스들은 대부분 숲을 품고 있다. 벚꽃이 흩날리고, 녹음이 그늘을 주어 자주 찾는 대학 캠퍼스, 특히 카이스트는 수많은 뭍 생명을 키운 공간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 많지 않다.
 

카이스트 내 백로 번식지 둥지에 있는 백로 새끼들이 어미가 가까이 오자 일제히 먹이를 먹기 위해 부리를 벌리고 있다 ⓒ 최수경

 
시민을 상대로 생태교육을 해온 나는 대전의 생물에 대한 모니터링을 십수 년 동안 했다. 한때 4~5월이 되면 카이스트 내 야산은 백로 서식지였다. 화려한 벚꽃에 취할 때 귀도 함께 열면,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백로류의 요란한 짝짓기 소리가 났다.
 

카이스트 백로류 번식지 한 나무에 해오라기, 쇠백로, 중대백로, 황로가 같이 둥지를 튼다. ⓒ 최수경

 
쇠백로, 중대백로, 황로, 왜가리, 해오라기 등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목련나무 구분 안 하고 한 나무에 20여 개의 둥지를 지었다.
 

생태교육장으로 활용되었던 카이스트 백로 서식지 필드스코프로 탐조하며 백로의 습성을 이해할 수 있다. ⓒ 최수경

 
이미 포란 중이거나 둥지 재료를 얻기 위해 나뭇가지를 꺾으며 씨름하는 녀석, 암컷 경쟁을 위해 싸우거나 이들의 알을 호시탐탐 노리는 까치까지 번식지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어미가 물고 온 물고기를 먹는 새끼 백로 강한 형제만 살아남는다. 형제들끼리 살육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동물의 세계는 냉정하다. 필드스코프로 백로의 습성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교육장이다. ⓒ 최수경

    

백로 새끼의 사체 둥지에서 떨어지거나 형제들끼리의 세력 싸움에서 밀려난 새끼 백로들 ⓒ 최수경

 

백로의 알을 훔쳐 달아나는 까치 백로 서식지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까치는 부모가 둥지를 비운 사이에 사냥을 한다. ⓒ 최수경

  

까치가 사냥한 백로의 알. 백로 번식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 최수경

 
카이스트에 백로 개체 수가 매년 증가하니 잔디밭과 벤치 등이 새의 배설물로 얼룩졌다. 카이스트는 소량의 간벌 작업을 행하다 어느 해 특단의 대책으로 백로가 둥지를 트는 시기에 솎아베기를 단행했다. 요란한 톱 소리와 나무 쓰러지는 소리, 공사용 트럭이 분주히 오가며 백로를 위협했다. 결국 백로들은 둥지 짓기를 포기했다.
 

카이스트의 명물 거위가족 잔디밭과 연못을 드나들며 오가는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 최수경

   

카이스트의 자랑 거위가족 거위가 걷는 모습의 표지판이 서있다. 실제 연못에서 나와 건널목을 건너는 거위가족을 자동차가 멈춰 기다리기도 한다. ⓒ 최수경

 
카이스트의 명물인 거위들이 교정의 잔디밭과 연못을 유유히 노닐고, 학교 팸플릿과 교정 건널목 표지판에 거위 그림을 넣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연못 주변 광활한 잔디밭 역시 거위 배설물이 가득한데 말이다.
  

새끼를 먹이기 위해 백로가 사냥해 온 먹잇감 백로의 배설물, 떨어뜨린 먹잇감이 부패한 냄새, 깃털, 소음 등은 도시민들에게 반갑지 않다. ⓒ 최수경


카이스트에서 쫓겨났지만 백로의 개체 수는 더 증가했다. 이듬해 번식지를 충남대 농생명과학대학 뒷산으로 옮긴 것이다. 그러자 인근 대규모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배설물 냄새, 날리는 깃털, 시끄러운 소리가 주거에 상당히 지장을 주었기 때문이다.
   

백로는 하천이 인접한 낮은 산지를 번식지로 택한다. 대전시 정 가운데 위치한 남선공원은 3대 하천 합류점 인근에 위치해 있다. ⓒ 최수경

 
대전천과 유등천, 갑천이 만나는 합류점 인근 남선공원도 백로들로 하얗게 덮였다. 남선공원 주변은 다세대 주택들이 에워싸고 있어 피해가 더 컸다. 주민들은 당장 벌목을 요구했다. 대전 서구청은 백로의 가을 이소(새의 새끼가 자라 둥지에서 떠나는 일)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주민을 설득했다.
  

당시 주민의 즉각적 벌목 요구에 한발짝 백로 편에 선 구청 남선공원 백로 번식지 피해에 대해 구청에 즉각 벌목을 요구하자 구청은 이소 후 간벌하겠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 최수경

 
주민 요구대로 바로 벌목해 민원을 해결하려던 서구청이 마음을 바꾼 것은 공무원이 <백로마을이 사라졌어>(저자 권오준)라는 동화책을 접하고 나서였다. 이 책은 백로가 번식하는 시기에 산주가 임의로 벌목을 단행해 알과 새끼들이 둥지에서 떨어지는 등 백로 서식지 훼손 사례를 다룬 책이다.

제2의 고양시 백로 사건이 되풀이 된다면 구청의 환경 정책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관련기사: 무차별 벌목으로 고양시 백로 150여 마리 떼죽음 http://bit.ly/cRSWeg).

환경단체와 서구청은 주민들을 설득해 백로가 완전 이소한 후로 벌목 시기를 조정했다. 그나마 주민의 요구와 자연과의 공생을 고민한 흔적으로 추후 방안 연구까지 끌어낸 사례였다.
  

충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옆 백로가 둥지 튼 나무를 간벌했다. 이소 후가 아닌 번식기에 간벌을 했다. 2015년 6월. ⓒ 최수경

 
남선공원에서 쫓겨난 백로는 이듬해 소규모로 흩어졌다. 충남대의 경우 백로 깃털이 날려 봄날에 도서관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없다며 소리 없이 벌목을 단행했다.

서구 모 중학교와 조용한 내동 주택가 뒷산을 덮친 백로 떼도 있었다. 배설물이 선생님들 자동차를 오염시킨다고 학교에서 불편을 호소했고, 주택가 주민들은 꽹과리를 들고 쫓다 지쳐 구청에 벌목을 요구했다.
  

청주시 서원대학교 옆 백로 번식지 청주남중 벌목으로 번식지가 훼손되자 이듬해 서원대로 옮겨 대규모 번식지가 조성되었다. 학교 설립자의 봉분을 둘러싼 전나무숲에 기대어 새끼를 키우고 있다. ⓒ 최수경

 
청주시도 백로와 한창 전쟁 중이었다. 영운천이 합수하는 무심천변 청주교대와 청주남중 뒷산이 백로 떼로 뒤덮이면서 청주남중 급식실 창문을 못 열 지경이었다. 학부모들의 거센 민원은 당연했고 결국 청주시도 벌목 행정으로 마무리 했다. 이듬해 백로들은 기습적으로 공격하듯 청주남중에서 1km 떨어진 서원대 여자기숙사 옆으로 번식지를 옮겼다.

이렇듯 사글세 살 듯 전전하는 동네북 백로의 고달픈 여정은 이웃 도시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둥지의 꿈은 청년들만 꾸는 것이 아니다. 백로가 오기 전부터 해오던 사업이고 이름이다. 마치 이곳에 백로가 둥지를 틀 것을 예견한 듯하다. ⓒ 최수경


도심지 백로의 이동 행적을 따라가 보면 원칙이 있다. 개구리가 바글거리는 논이 사라진 지 오래인 지금 백로가 찾는 곳은 발을 담글 정도의 야트막한 하천, 자신과 새끼를 먹일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물고기, 둥지와 가장 단거리에 위치한 얕은 언덕 숲, 천적을 막을 수 있는 인간의 구역... 바로 도시 하천이다.
 

다리만 물에 담글 수 있는 얕은 하천에서 먹이를 찾는 중대백로. 암수가 교대로 새끼를 돌보며 먹이를 구해오고, 새끼가 어느 정도 커서 먹는 양이 많아지면 암수가 동시에 먹이를 구해온다. ⓒ 최수경

 
대전은 하천의 도시답게 3대 하천이 한밭들을 지난다. 백로의 번식지는 모두 합류점 인근이다. 그런데 이미 오래 전부터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 속에 백로는 있었다. 문제는 왜 갑자기 개체 수가 증가했고, 도심 숲을 게릴라식으로 점령했느냐는 것이다.
  

대전 도심 백로의 번식지 수난사 벌목 단행, 백로 번식지 훼손, 이듬해 새 번식지에 벌목 단행, 번식지 훼손을 거듭했다. ⓒ 최수경

 
나는 4대강 사업의 시작부터 강을 모니터링 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강 수위가 깊어진 것이 시작이다. 금강의 지류 역시 제방과 하천정비가 이루어져 백로의 포식 환경이 변했다. 상대적으로 도시는 생태 하천 복원 사업으로 하천 환경이 좋아졌다. 수질이 깨끗해졌고 이들의 먹이원도 풍부해졌다. 그러니 도시 숲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다.
  

금강 세종시 구간 4대강사업 현장 우안의 강 둔치 모래를 퍼와 좌안에 자전거도로를 만들기 위해 쌓고 있다. 4대강사업으로 강 깊이가 깊어지면서 새의 다리 깊이의 하천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백로류, 물떼새, 고니 등의 관찰 빈도가 현저하게 줄었다. ⓒ 최수경

 
세종시의 옛 연기군 금남면 감성리에는 백로 서식지가 있다. 대평리의 너른 논 습지는 이들의 먹이원이었다. 감성초등학교 아이들의 백로 보호 활동도 활발했다.
 

세종시(옛 연기군 시절) 금남면 감성리 마을 가게 감성리는 드넓은 논과 풍부한 수량의 금강에 기반해 충청권 금강유역의 대표적인 백로 서식지였다. ⓒ 최수경

 

세종시(옛 연기군 시절) 금남면 감성초등학교 뒷산의 백로 서식지 2009년 3월 감성리 임야 일원은 백로가 번식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 최수경

 
그러나 산주가 임의로 벌목을 해 백로 서식지는 훼손됐다. 세종시 기념물 제3호로 존속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4대강 사업과 동시에 충청 금강 일대 최대 백로 서식지인 감성리 번식지가 벌목으로 훼손되면서 대전 도심에 백로 개체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대전시 갑천 인공하천 구간에 설치된 대형 둔산보 둔산보로 인해 갑천 유등천 합류점은 호수가 되었다. 수달의 배를 채워준 큰 물고기의 사체와 수달의 배설물이 어도 주변에 많다. 이는 큰 물고기(잉어, 붕어)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들은 주로 담수성 어종이다. ⓒ 최수경

 
같은 시기에 3대 하천이 만나는 합수점에 대규모 둔산 가동 보를 만들었다. 보를 없애야 할 생태 하천 복원 사업에 오히려 더 크고 견고한 보 구조물을 하류에 만들어 합류점 유역이 모두 호수화 되었다. 백로들이 다리를 담그고 먹이 활동을 할 수 있는, 호수의 영향권이 덜 미치는 지역에서 백로 갈등이 시작된 것을 우연으로 보아야 할까.
  

번식기의 중대백로 백로는 대학교를 좋아한다? 인간의 구역인데도 주거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다. ⓒ 최수경

 
예로부터 사람들은 강가에 모여 살았다. 그리고 강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젖줄이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강을 독점하기 시작하면서 살아 있는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여울목은 파괴되고 수로가 되었으며, 흐르는 물을 호수에 가두었다. 도심 하천의 백로에게 필요한 것은 떡붕어가 아닌 피라미 같은 작은 물고기이다. 하천을 기반으로 사는 백로가 사냥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누구를 위한 생태 하천 복원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2016년 백로 서식처를 간벌한 이후 백로가 도래하지 않는 카이스트 내 야산. 당시 백로의 분변으로 얼룩져 벤치의 기능을 상실했던 곳. ⓒ 최수경

 
많은 연구 결과 백로를 쫓아내자고 인위적인 서식 방해 작업을 하고, 천적을 이용해 서식지 이동을 유도하는 인위적인 교란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소 철에 강도 높은 벌목만이 대안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는 경관을 훼손하고, 공원 기능을 상실하며, 토양 유실 등을 초래해 시민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철새는 지구 위도를 남북으로 오가며 생애 주기를 완성해야 하는 집단 특성을 갖고 있다. 백로류가 그 지역을 번식지로 선택한 것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어차피 올 것이라면, 태화강의 백로 서식지, 무안 상동마을의 왜가리 번식지처럼, 지역의 생태관광 자원으로 상생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금대리 느티나무와 우물 이 마을 뒷산에는 오랫동안 왜가리가 찾아오는 번식지가 있다. ⓒ 최수경

 
삼백년 노거수에 햇소지가 달린 금줄이 쳐 있고, 공동 우물을 메우지 않고 1년에 한 번씩 퍼내어 다 함께 청소하는 마을이 있다. 가정마다 수도가 있어 사용 안 하는 우물인데도 말이다. 마을 뒷산에는 매년 왜가리들이 날아와 둥지를 튼 지 수백 년째이다. 필시 이 마을은 햇소지를 꿴 금줄과 왜가리 서식지 존속에 상관관계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늘 아래 90세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는 걸 어쩌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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