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7 07:42최종 업데이트 21.02.0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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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보낸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사는 대전의 유등천은 예로부터 맑은 물이 자랑이었다. 시내 한복판인데도 강수욕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남녀노소 불문하고 물놀이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어느 해 여름 큰 비로 들이친 물이 하천 호안을 무너뜨렸고, 대전시는 이를 보수하면서 슬그머니 하천 바닥까지 준설해 버렸다. 이듬해 준설로 인해 하중도와 모래톱의 행방은커녕 깊이도 헤아릴 수 없어 발 담그는 이 없이 여름을 나고 있었다.

친수 문화인 '강수욕'의 상실이 큰 문제라 여긴 나는 하천생태계와 문화를 순식간에 바꿔놓은 준설에 대해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써 새벽녘에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다.
 

대전시 유등천 도심 속 강수욕 장소이던 대전시 중구 복수동 구간의 유등천 ⓒ 최수경

  

대전시 유등천 준설로 하상과 호안이 바뀐 유등천 복수교 구간 ⓒ 최수경

 
다음날 정오쯤 지인이 다급하게 "선생님의 유등천 기사가 다음 메인에 떴어요"라고 알려왔다. <오마이뉴스> 대전충남판 메인에 올랐고, 다음 포털은 메인 톱 둘째 줄에 올라 있었다. 한밤중 감정이 조금 격앙된 상태서 쓴 글이었는데, 제목도 나의 격앙을 반영하듯, '유등천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로 바뀌어 있었다. 독자를 유인하는 기사 제목도 참 절묘하게 잘 뽑았다.

그런데 조회가 많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댓글이 3백여 개가 넘는데 '내 고향 유등천이 반갑다', '생태계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이 잘못이다'라고 하는 글도 있었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악플도 많았다. 악성 댓글을 더 읽다가는 내 영혼이 피폐해지는 것 같아 더 읽지 않고 덮어 버렸다. 나는 소심하기 그지없는 소문자 a형이기에 논쟁 기사로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차츰 기사 쓰기에서 멀어져 갔다.


시간이 흘러 나도 나이를 먹은지라 웬만한 댓글에는 이제 무감각해진 것 같다.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했고, 주 관심사인 4대강과 관련해 쓴물 단물을 수없이 마셔서 그런가 보다. 십 년 만에 쓴 태양광 관련 기사가 다시 메인 톱에 올랐을 때, 정독도 하지 않고 쓴 악성 댓글에는 얼굴이 화끈거리지도 않았다.

나부터 시작할 수 있다

연재에서 어떤 글을 쓸까 설명한다는 것이 서론이 길어졌다. 어쨌든 나는 환경교육을 하는 사람이라 환경 이야기가 가장 잘 맞는다. 우리에게 지구온난화와 지속가능한 삶이 분리될 수 없음에, 환경과 인간의 관계성을 화두에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가깝게는 작년 여름 섬진강댐 하류와 용담댐 하류에 엄청난 수해가 발생했고, 올겨울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이 이어졌다. 금방 끝나리라 여겼던 코로나19가 변종 바이러스까지 출현해 팬데믹이 장기전이 되는 지금, 이 모든 것을 지구온난화와 연결 짓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화두이고 과제라는 것이 자명함에도,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너무 멀고 어려운 주제일 수밖에 없다.
 

2020년 8월 금산군 제원면 일대 수해 현장 홍수와 용담댐 방류로 용담댐 하류지역인 무주, 금산, 영동, 옥천 일원에 수해가 컸다. ⓒ 장성수열린세상tv 영상 캡처

 
기후변화 숫자의 목표치는 천문학적 숫자 급이고 너무 관료적이다. 그리고 과학적 패러다임에 의존한다. 기후변화·지구온난화·기후위기·탄소중립 등 이런 이름들은 과학자나 정치가들이 만든 명칭이다.

이러한 용어는 아직도 대중에게 괴리감과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지구·생태·빙하·해수면·북극곰의 문제로 프레임 하여 정보를 전달하고 설명하려 한다. '그러니 네가 변해야 한다'라는 암묵적인 강요가 있다. 기후가 미쳤다, 탄소 제로, 에너지 감축, 삭감, 비상 행동, 이런 이름들은 전투적이고 공격적이다. 인간의 활동으로 문제가 생겼으니 해결하자며 지구에 전쟁을 선포하는 듯하다. 모두 그 시급함과 절박함이 응축된 표현이다.

나는 이런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기후교육도 좋지만,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싶다. '네가 바뀌어야 해'가 아닌 '나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싶다. 지구와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공존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지구 온도 1°c 내리는 숫자보다 물 1 ℓ의 숫자가 더 밀접하다. 기후변화를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 사회 불평등과 탄소 자본주의적인 생활양식 등을 나의 권리 문제로 사고하여야 한다.
 

우중산책 포스터 자연의 현상을 경험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둔 저자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 ⓒ 최수경

 
영화 <파리로 가는 길>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은 환경 영화가 아니다. 지극히 로맨틱한 내용으로 밝고 아름다운 영상이 가득하다. 이 영화 제목이 내 연재 글을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일 것 같아 영화를 들어 설명하고 싶다.

영화는 남편의 친구와 동승해 프랑스 칸에서 파리까지 차로 7시간이면 갈 길을, 40시간에 걸쳐 가는 동안 벌어지는 프렌치 로드 트립 영화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정경과 역사·음식·여유·시장·감성이 탄성을 자아내도록 펼쳐진다. 특히 나의 리즈 시절 스타 다이안 레인이 나처럼 중년에 들었어도 여전히 우아한 모습으로 프랑스의 서정과 어우러져 매력을 자아낸다.
 

영화 속 여정을 채우는 생활 이야기처럼, 파리기후협약을 이행하며 달려가는 생활 속 기후 이야기를 그리고자 한다.

 
영화를 굳이 연재 제목에 끌고 온 이유는 파리기후협약 때문이다.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파리기후협약은 2020년 만료된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신 기후체제로 2021년 1월부터 적용되었다.

파리기후협약은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하자는 약속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195개 당사국이 협약에 참여하고 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c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하고, 1.5°c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하는 것이 협약의 목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임기 첫 행보로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했다. 이제 미국도 탄소 중립을 목표로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지를 밝힌 것이다.

나는 파리기후협약을 위해 2023년까지 우리가 달려가야 할 여정을 글에서 그리고 싶다. 파리로 가는 동안 프랑스 역사에 존재하는 로마 시대의 역사도 존중하고, 모네의 그림처럼 풀밭 위에 점심을 먹는 여유를 소중히 하며, 당대 예술가들이 찬미해 마지않던 세잔의 생 빅토와르산처럼 보호할 자연유산의 가치도 이야기하고 싶다. 또한 지역의 와인·음식·시장 등 다양한 문화유산처럼 기후환경에 대한 다양한 경험의 차이에 맞는 의사소통 통로를 찾고 싶다.
 

파리의 녹색 정원 아파트 에펠탑에 올라 바라 본 파리 시내의 한 아파트 정원 ⓒ 최수경

 
영화에서 앤이 묻는다. "파리는 오늘 갈 수 있어요?" 이에 자크는 "걱정하지 말아요. 파리는 어디 안 가요"라고 답한다. 그렇다. 파리는 거기 있다. 기후변화라는 풀어야 할 숙제가 우릴 기다린다. 2023년을 향해 달리는 파리기후협약, 기후변화를 경험하고 느끼고 감정을 표현하며 기후 문제를 풀어가는 여정, 그리하여 당도할 그곳 파리. 내 글은 여행길 어떤 골목에서 창을 가린 녹색 커튼을 올려다보는 여행객과 같을지도 모른다.
 

파리 에펠탑 파리기후협약은 2020년 만료된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신 기후체제로 2021년 1월 이달부터 적용되었다. ⓒ 최수경

 
덧붙이는 글 필자 최수경은 자연해설로 시작해 환경운동을 거쳐 환경교육가가 되었다. 사대강사업이 계기가 되어 금강에 빠져, 금강트레킹, 여울트레킹이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현재 금강생태문화연구소 숨결에서 환경교육, 생태관광, 금강물환경과 관련한 일을 한다. 글을 쓸 때, 자연의 메시지가 실린 미세한 떨림을 감지해 쓰고자 하며, 저서로 <금강길 이야기길>, <더 자연스러운 자연해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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