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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코로나19의 위기가 닥쳤다. 나는 당시 13년 차 현직 보건교사이자 정보부장 그리고 2학년 부장을 겸임하게 된 아주 특이한 사람이었다. 내가 재직하는 학교가 그나마 학생 수가 적은 편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보건교사로서 무엇을 해야할까 눈앞이 막막했다.

새롭게 도전하는 2학년 부장과 정보부장 업무만으로도 배우고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데, 신종감염병 발생이라니!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했다. 학교의 보건교사는 나 한 명이기에 어느 누구도 나를 대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학교 감염병의 컨트롤 타워로서 나름의 역할을 다해서 전문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의 시작, 학교 보건교사는 무슨 일을 할까? 

2020년 1월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보건실로 출근을 했다. 그때부터 무수히 쏟아지는 '코로나' 관련 공문을 처리해야 했고, 마스크부터 손소독제, 소독티슈 등 보건실 곳곳에 숨어있던 물품을 확인하고 부족한 물품은 무엇인지 파악하여 구입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감염병 물품마다 분실방지를 위한 라벨지를 만들어 붙이고 모든 학년과 반, 그리고 여러 교무실에 배부할 감염병 바구니(체온계를 비롯한 모든 감염병 예방 관련 물품을 넣어서 각반에 배부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특히 코로나가 발생했던 2020년 1~2월경에는 마스크와 손소독티슈, 손소독제 등 학교의 감염병 관련 물품을 정확한 수량까지 파악하여 교육청에 보고하라는 공문이 쏟아졌다.

보건실 보관장 곳곳에 숨겨있던 마스크를 종류별로 세고, 그동안 잘 쓰지 않았던 이마형 체온계부터 모든 물품들을 다 꺼내서 카운트하고 대장에 적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물품이 너무 귀하여 마스크 하나조차도 함부로 꺼내서 쓰지 않았다. 마스크 하나, 손소독제 하나라도 더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 내 코로나19 의심증상자 등이 발생했을 때 대비하는 '일시적 관찰실'을 지정하여 운영하는 전반의 업무도 만만치 않았다. 계획 수립부터 일시적 격리실의 담당교사 지정, 일시적 관찰실에 필요한 방호복, 장갑, 보호 안경 등 물품 구입까지 세세한 업무가 많았다. 모든 교사가 공평한 횟수로 들어가도록 하느라 심사숙고했다.

나의 이런 계획에도 말없이 묵묵히 따라준 선생님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감염병 관련 업무에 대해서는 모두가 보건교사를 바라보고 있었고 역학적, 의료적 관점에서 일시적 관찰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통해 다른 업무들도 하나하나 완성해나갔다.

이후 열화상카메라가 학교에 보급되면서 열화상카메라 위치선정부터 관리, 역할분담을 위한 계획수립 등 셀 수 없을 정도의 일들이 한꺼번에 겹쳤다. 과연 이것이 모두 보건교사가 해야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받아들였다. 보건실 앞, 즉 현관 입구에 설치된 그 장비를 내가 가장 잘 관리하고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것이 나의 책무라고 받아들였다.

오늘날 열화상카메라를 거쳐 학생들이 등교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줄을 서서 들어가는 학생들을 생활지도하는 교사, 열화상 카메라 앞에서 체온을 확인하는 교사, 동선을 안내하는 교사 등 이것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요일별 지도교사를 선정했고 되도록 부장교사 1인과 부담임교사 1인 총 2인으로 구성하였다. 열화상 카메라와 학생 간의 거리를 지키기 위해 칼라콘을 설치하고 교무실무사님에게 안내판 제작을 부탁하며 바닥에 동선을 위한 발바닥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였다. 

학교는 '코로나'라는 말만 나와도 혹은 관련 내용만 나와도 보건교사인 나에게 질문하였고 뭔가 정답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 같았다. 늘 최선을 다해서 매뉴얼과 지침, 공문에 따른 신중한 결정을 하려고 애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한마디로 학교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는 일은 없어야 했기에 코로나19 매뉴얼과 계획서를 닳고 닳도록 보고 또 보았다. 게다가 교육부의 개정 사항이 나올 때마다 늘 심장이 쫄깃해지고 신경이 곤두섰다. 한마디로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보건교사의 업무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초기의 학교는 어땠을까? 갑작스럽게 확진자가 발생했던 학교의 보건 선생님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모두에게 처음이었던 상황에서 보건소는 유일한 의료인인 보건교사와 주로 소통을 하였고 보건교사를 통해 업무가 진행됐다.

그 보건 선생님은 자신의 학교에 이동식 선별진료소가 차려지면서 진단검사 실시 전부터 진단검사 시 필요한 개인정보 업무를 비롯하여 진단검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학교에 계셨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너무 힘드셔서 참다못해 눈물을 보이셨다고 하였다.

내가 실제로 뵙지 못하여 알 수 없지만 그곳을 다녀온 보건선생님은 본인도 그 광경에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하다고 하였다. 어떤 도움도 드리기 어려워 따뜻한 커피와 빵을 사드리는 것밖에는 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학교 주변의 기자가 무언가 말을 걸 것 같아서 빨리 피했다고 했다. 보건교사의 입장에서 당시 하고 싶은 말들은 많았지만 하기 어려웠으리라 생각했다. 나에게는 무수히 많은 말들을 쏟아낸 것을 보면 그 말들을 하고 싶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보건 선생님의 땀과 눈물 덕분에 우리 지역의 보건교사들은 단톡방을 통해 확진자 발생 시 해야 하는 업무와 절차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들었고 미리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학교 보건교사로서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학교 구성원들의 적절한 역할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어느 정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교장 선생님께 우리 학교에도 같은 위기가 닥칠 수 있고 그럴 경우 모든 교직원이 자신의 역할을 확실히 알고 절차를 진행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교장선생님은 보건교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다.

코로나19 대응 활동을 돌아보면 학교 관리자를 비롯한 교직원들은 보건교사의 역할과 중요성을 확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건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간호학과를 졸업한 간호사이자 교육자인 보건교사를 주목한다면 답은 명확하다. 의료적인 관점의 업무와 교육의 업무일 것이다. '학교보건법 제15조'에 따르면 '보건교육'과 '학생의 건강관리'를 보건교사가 담당하는 업무로 정확히 제시하고 있다.

나는 보건교사의 '업무과중'이라는 측면보다는 업무의 특성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학교의 어느 구성원이라고 한들, 자신의 일이 적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누구나 본인의 일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끼겠지만 맡은 바 책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건교사로서 힘들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기 어려운 일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일명 '냉동 시행령'으로 불리는 '학교보건법 시행령 제23조'의 '보건교사의 직무'에는 '학교 환경위생의 유지 관리 및 개선에 관한 사항'이라는 한 줄이 있다. 이 근거만으로 보건교사가 정수기 관리 등 수질 관련 업무, 공기정화장치 등 공기의 질 업무부터 미세먼지, 심지어 차량 2부제까지 하도록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업무는 전혀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환경위생 관련 업무분쟁과 소진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보건 선생님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보건교사 단체들은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이토록 오래 묵은 법령, 상위법(학교보건법, 초중등교육법)과도 상충되는 법령, 건강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감염병 위기가 고조되는 지금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법령을 개정하도록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다.

보건교사가 전문성 갖고 일할 현장을 원한다

코로나19 대응에서 여실히 드러난 보건교사의 전문성은 바로 의료인이 가진 지식과 방법이고, 그 전문성과 역량을 높이는 일이 학교의 감염병 예방과 대응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학교와 사회는 모두 알았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2020년부터 정규 보건교사 임용과 학교의 보건교사 배치율을 높이고 최근 '보건교사 2인 배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하였다.

보건교사는 일반 교사가 아닌, 의료인(간호사)이다. 그 어떤 교사나 직원도 보건교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학생의 응급처치를 다른 교사가 대신할 수도 없고, 그것은 법령상 보건교사의 일이라는 점이며 보건교사 임용을 간호학과 출신으로 제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는 보건교사가 의료인과 교육자로서 해야 할 업무를 명확히 하여 건강관리와 보건교육에 대한 역량을 높이는 것이 학교라는 조직과 우리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학교와 사회의 안정화를 이루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의 시대는 신종감염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개인의 삶과 건강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더욱 급증할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의 건강서비스와 건강증진 교육이 더욱 중요시될 것이다. 

최근 '타이레놀' 사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보건교육을 통해 '타이레놀'은 그저 약품의 이름이고 성분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 나의 제자들은 그 사태를 보면서, 보건 선생님이 정말 중요한 내용을 알려주신 것에 새삼 뭔가 깨달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타이레놀 사태를 바라보면서 나는 왠지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교육의 힘은 바로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바꾸는 작지만 커다란 변화인 것이다. 보건교육을 통해 나는 그것을 이루고자 했고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보건교사 선배를 통해 최근에 들은 이야기이다. 어느 선생님은 Y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을 한 후 간호사로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서울에서 보건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보건교사는 1년 후 보건교사를 그만두고 학교 현장을 떠났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학창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고 우수한 인재로 평가를 받았던 그 선생님은 학교 현장의 분위기가 보건교사를 다른 교사처럼 교사로 인정하는 것 같지 않았고, 의료인이자 교육자로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으나 어렵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했다. 이후 교직을 그만두고 현재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생각과 많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내가 보건교사를 하면서 그토록 부장교사를 희망한 것도 다른 교사들과 같이 교사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건교사는 의료인이라는 전문성을 지닌 교사이고, 교사로서 당연히 수업도 잘 할 수 있으며 부장교사도 개인이 원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보건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보건교사 선배로서 후배 보건교사이자 인재가 간호학과에서 4년간 쌓은 전문성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학교 현장이 아니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고 슬펐다. 학생의 건강을 위한 학교의 컨트롤타워로서, 확고한 준비와 의지로 능력을 갖춘 인재는 그렇게 학교 현장을 떠나갔다.

이러한 씁쓸한 상황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보건교사가 떠나간 학교 현장에 또다시 위기가 닥치지 않도록 이제는 교육부와 국가가 해답을 제시하길 바란다.

태그:#보건교사, #학교보건법, #학교 환경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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