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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이나 고고학 등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일본 교토는 참 특별한 도시일 것이다. 교토는 794년 헤이안쿄 천도로부터 대정봉환(일본을 사실상 통치하던 막부가 정권을 덴노에게 반납한 사건) 이후 일본조정이 도쿄로 이동한 1869년에 이르기까지 1075년의 세월, 일본의 공식적인 수도로 기능했던 도시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기에, 이 지역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유적들과 유물들이 빚어졌다.
 
가마쿠라 시대(한국사 고려시대)의 일본 불상들(류코쿠 뮤지엄)
 가마쿠라 시대(한국사 고려시대)의 일본 불상들(류코쿠 뮤지엄)
ⓒ 박광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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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전국의 주요 도시들에 융단폭격을 가했던 미국조차도 이 교토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교토의 문화적 가치를 미국 측이 높이 샀다는 이야기, 교토가 원자폭탄 투하 후보지였다는 이야기 등 엇갈리는 설들이 전해지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교토는 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있었다. 교토가 품어왔던 천년의 유산들은 그렇게 후대로 전해질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학문의 도시'로서의 정체성까지 더해지면서 교토의 남다른 위상이 정립되었다. 수도권에 주요 대학이 군집해있는 한국의 예와 달리, 일본에서는 지역 주요 대학들의 권위 또한 만만치 않다. 특히 교토의 경우, 2번째 제국대학이었던 교토대학을 비롯해 리츠메이칸대학과 도시샤대학 등 유서 깊은 대학들이 이름을 드높이면서 자연스레 지역 자체의 이미지도 대학들과 뗄 수 없게 변모하게 되었다.

학문의 도시 교토에서 면학에 정진해 온 연구자들은, 문화유산들을 가꾸고 수집하는 데에도 특히 열의를 쏟았다. 특히, 이들의 학문적 성과가 지역주민들과 공유되어 온 것은 교토의 지역적 가치를 더욱 증진하는 효과를 낳았다.

27일까지 류코쿠 뮤지엄에서 불교 특별전 열려

류코쿠 뮤지엄(龍谷ミュージアム)은, 대학과 지역 사회가 함께 호흡하는 순기능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이다. 불교 연구로 명망 높은 류코쿠 대학은, 지역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목표로 2011년 4월에 류코쿠 뮤지엄을 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니시혼간지(西本願寺)를 마주하고 있는 류코쿠 뮤지엄은, 불교 유물들을 중심으로 여러 전시들을 기획하여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어왔다.

특히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아 4월 17일부터 6월 27일까지 기획된 특별전에서는, 이례적으로 내부 사진 촬영까지 허락됐다. 대학 측이 지역사회에 학문적 성과를 나누고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으므로, 기자는 다른 일정들을 미뤄두고 이곳 박물관으로 전격적인 취재를 실시했다. 
 
2~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 그리스 로마 양식의 영향이 엿보인다.
▲ 간다라 불상(류코쿠 뮤지엄) 2~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 그리스 로마 양식의 영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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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코쿠 뮤지엄을 상징하는 전시물로는 단연 '간다라 불상'을 꼽을 수 있다. 간다라는 오늘날의 파키스탄 북부, 아프가니스탄 남부에 걸쳐 위치한 지역으로, 인도를 침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군과 함께 들어온 헬레니즘 양식이 불교와 결합해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보통 사람들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을 간다라 불상의 실물들이, 박물관의 한 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대부분은 2~3세기, 이르게는 1세기에 제작된 불상들이었다. 초기불교 시대에는 불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이곳에 전시된 간다라 불상들은 최초로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시기의 귀중한 유물들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원정 이후 아프가니스탄 북부 일대에는 그리스계 박트리아 왕국이 세워졌다. 박트리아 왕국이 멸망한 뒤에도, 그들이 사용하던 박트리아어는 인도 쿠샨 왕조에서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 박트리아어 문서(류코쿠 뮤지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원정 이후 아프가니스탄 북부 일대에는 그리스계 박트리아 왕국이 세워졌다. 박트리아 왕국이 멸망한 뒤에도, 그들이 사용하던 박트리아어는 인도 쿠샨 왕조에서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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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은 '인격적 신'을 믿었고,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아 상상한 신의 존재를 그들만의 정교한 형상으로 표현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상(神像)들이 바로 그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원정 이후 간다라 지역에 뿌리를 내린 그리스인들 중 불교의 가르침에 귀의하게 된 이들 또한 석가모니의 형상을 신상처럼 조각해내었으니, 불상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불상이 인도를 넘어 중국으로 한반도로 일본 열도로 전파되기에 이른 것이다. 불상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지역 고유의 문화와 양식이 녹아들었음은 물론이다.
 
그리스 헬레니즘과 불교의 융합으로부터 새로운 문화가 잉태되었다,
▲ 석가모니의 첫번째 설법(류코쿠 뮤지엄) 그리스 헬레니즘과 불교의 융합으로부터 새로운 문화가 잉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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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불상들에는 기증자의 이름이 표시되어있다.
▲ 류코쿠 박물관에 전시된 간다라 불상들의 일부 각 불상들에는 기증자의 이름이 표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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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실제 유물들을 마주하며, 간다라에서부터 일본 헤이안 시대에 이르는 불교의 전파와 발전 과정을 피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날 소학교 3학년생 자녀와 함께 류코쿠 뮤지엄을 찾은 교토 시민 마루야먀(丸山)씨는 박물관의 존재에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인도나 파키스탄 현지, 유럽의 유명 박물관, 도쿄까지 가지 않아도 지역 사회에서 이런 굉장한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것은 크나큰 혜택이죠. 생각해보면, 간다라 불상을 보러 오는 데 그냥 시내버스만 타면 된다니, 놀랍지 않나요?"

이와 같이 지역 사회에 문화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수도권이 아닌 지역사회에 거주하여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마루야마씨의 어조에는 교토에 대한 애향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와의 대화로부터, 지역 사회에 공헌한다는 대학의 목표는 충실히 달성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구감소와 수도권 집중으로 한국의 지역 사회와 지역 소재 대학들이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다. 학문의 도시. 주민들이 도쿄를 동경하지 않는 도시. 이곳 교토에서 접한 대학 박물관의 존재는, 한국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까.

태그:#일본, #교토, #류코쿠, #대학, #간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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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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