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금요일이었다. 5월 21일, 대전에 갔다가 잠시 짬이 나서 금요일마다 서는 '테미장(퇴미장)'을 둘러보고 왔다. 대전의 대표적인 정기장이라고 하면 유구장이나 신탄진장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테미장'은 두 곳과 비교해 그리 오래전에 형성된 장시는 아니다.

'테미장'은 장이 서는 인근의 '테미고개'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안다. 테미고개는 동리 이름에서 붙여진 것으로 알려졌으니, 결국 '테미장'은 옛 지명을 빌려 붙여진 셈이다.

몇 년 전, 이곳에서 오랫동안 장사해 온 분들께 높은 빌딩이 밀집된 곳에 테미장이 생긴 유래를 여쭤본 일이 있다. 말씀에 의하면, 서대전네거리에서 충남대병원네거리 사이에는 지금 한창 신축 중인 농협 대사동지점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그 뒤편에서 몇몇 분이 예전부터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했었단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농협 대사동지점을 중심으로 하나둘 좌판을 벌이는 상인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의 정기장 모양새를 갖추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매주 금요일이면 먼 데서 일부러 지하철, 버스 갈아타 가며 장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꽤나 규모가 커졌다.

코로나19 여파도 있을 테고, 연일 비가 내려 장이 크게 서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고 갔는데, 다행히 사러 온 이도 팔러 온 이도 많아 장터 특유의 활기가 느껴졌다.

천마와 산마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장터를 둘러보니, 다발로 묶인 햇양파가 수북이 쌓여 있다. 한창 밭에서 꼬투리를 키워가는 완두콩도 보였다. 산발적으로 비가 내려서인지 유독 지짐이 냄새는 코끝을 간질이고, 수산물 좌판대에서는 갑오징어 먹물 빼는 상인들 손놀림이 분주하다. 그러나 정작 눈길을 끈 건 따로 있었으니, 바로 '자연산 천마'였다.
 
5월 21일(금), 대전시 테미장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자연산 천마'였다.
▲ 자연산 천마 5월 21일(금), 대전시 테미장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자연산 천마"였다.
ⓒ 박진희

관련사진보기

 
광고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접해서 천마의 존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진액이나 가루 형태가 아닌 실물, 그것도 자연산은 이날 테미장에서 처음 봤다.

커다란 감자 같이 생긴 자연산 천마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채취해야 해서 귀한 몸값을 자랑한단다. 장복하면 뇌졸증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 천마는 보통 1kg에 17~18만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주인장은 산다고 하면 15만 원까지 깎아줄 수 있다고 흥정해 왔지만, 두 번 세 번을 생각해도 내 호주머니 사정으로는 무리여서 눈요기에 그치고 말았다.
 
자연산 천마를 파시는 사장님은 직접 천마 캐는 현장 사진을 보여 주었다.
 자연산 천마를 파시는 사장님은 직접 천마 캐는 현장 사진을 보여 주었다.
ⓒ 박진희

관련사진보기

 
주인장은 자연산이라고 말하면 안 믿는 사람이 많아서 자생지를 사진 찍어 휴대전화에 저장하고 다닌단다. 임자가 나타났다 싶으면 사진을 보여줘 가며 팔고 있다고 한다. 사진을 보자 자연산 천마가 자라는 그곳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충북 보은에서요. 보통 천마는 전라도에서 많이들 캐오지요."


"충북에서 테미장까지 오셨어요?" 물으니, "새벽 3시에 대전역 새벽장에 들렀다가 아침에 이리로 왔지요"라고 답한다.

근면함과 강인한 생활력이 몸에 밴 분인가 보다. 경기가 예전만 못해서 대전역 새벽장도 요즘엔 매번은 못 나가는 실정이란다. 이 시국에 어디나 그러하듯...
 
재배하는 산마 가격은 자연산 천마에 비해 1/30 정도였다.
 재배하는 산마 가격은 자연산 천마에 비해 1/30 정도였다.
ⓒ 박진희

관련사진보기

 
조금 더 걸었더니, 이번엔 '마'라고만 쓰고 5000원이 매겨진 가격표가 놓인 곳이 보인다. 젊은 여사장은 "모양도 안 예쁜데, 사진은 뭐 할라고 찍어요?" 쑥스러워하면서도 사진 촬영을 제지하지는 않는다. 이해심 많은 분을 만나 다행이다. 장터에 나올 때마다 궁금한 게 많다 보니, 장사하느라 정신없는 분들께 쓸데없는 거 물으랴.... 이것저것 사진 찍겠다고 졸라대랴....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장터에서 물으려다 꾹 참고 집에 와 검색을 해보니, 천마와 산마(참마)는 이름만 비슷하지 재배 조건, 효능 등에서 전혀 다르다고 한다. 테미장에서 사진 찍은 산마는 깎여 있기는 하지만 둥근 마와 장마(長麻)가 섞여 있었다. 700g에 5000원이라니 천마 가격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 그렇다고 산마를 가벼이 볼 수 없는 게.... 위장 고치는 데 그만한 게 또 없단다. 

위(胃) 기능이 떨어지는 분들 중에는 발효 우유와 생마를 갈아 아침마다 드시는 분이 적지 않다. 생것을 꺼리는 분들은 굽거나 쪄서 드시기도 하는데, 연근 전처럼 부치거나 튀김옷을 입혀 살짝 튀기면 마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식품으로 치유할 수 있다면 조금만 바지런 떨어 가급적 약은 멀리하자는 개똥철학(?)을 갖고 있어서 오지랖을 넓혀 보았다.

천마는 이번 테미장에서 처음 보았지만, 산마를 알게 된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초등학생 때 살던 동네에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인 마곡사의 포교당(현 동불사)이 자리했었다. 늘 출입문이 열려 있어서 동네 아이들은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지금과 달리 본당 왼쪽에 텃밭이 있었는데, 채소며 화초를 키우는 그곳에서 줄기에 달린 (종자) 마가 신기해 몰래 따 본 적이 있다. 나보다 훨씬 대담했던 친구는 주먹 가득 따다가 집으로 가 엄마를 졸라 마를 쪄왔다. 먹어보라며 동네 아이들한테 몇 알씩 내밀었는데, 부드럽게 혀와 이 사이에서 발리던 그 찐 마의 식감은 지금껏 잊히질 않는다.

정기장에 나오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만나 긍정적 에너지를 충전하게 된다. 이번에도 대전 테미장에서 자연산 천마 장수 아저씨와 참마 파는 젊은 여사장님 덕분에 체내에 쌓인 스트레스를 훌훌 털고 왔다. 덤으로 잊고 있던 어릴 적 추억까지 떠올리게 됐으니, 수지맞는 장사는 장 구경 갔던 나만 하고 온 듯하여 미안하기 짝이 없다.

태그:#테미고개, #테미장, #금요 장터, #자연산 천마, #수지맍는 장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듣고 느끼는 소소한 일상을 욕심껏 남기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