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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내일채움공제(청년공제)는 비싼 대학 등록금 때문에 빚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매력적인 저축입니다. 2021년 기준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이 2년 동안 300만 원을 적립하면 정부와 기업의 지원으로 1200만 원을 모을 수 있습니다.

2020년까지 청년공제 누적 가입자는 10만 개 기업 40만 명에 달하고, 7만 6680명이 만기금을 수령했습니다. 청년공제 가입자의 2년 이상 근속 비율은 64.0%로 일반 중소기업 청년보다 두 배 이상 높았습니다.

연아(가명)씨도 ㄱ병원에 입사하면서 청년공제에 가입했습니다. 병원 생활은 힘들었지만 청년공제를 받을 날을 생각하며 견뎠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날 무렵 ㄱ병원 대표는 새 대표에게 병원 영업을 양도했습니다. 영업 양도이기 때문에 시설, 부채, 고객, 직원들은 모두 승계되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새 원장은 매우 권위적이었습니다. 반발과 하대가 기본이었고, 직원들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직원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아씨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청년공제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진 퇴사를 하면 회사와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고, 청년공제는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아빠 찬스'도, '엄마 빽'도 없는 그에게 정부 지원금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한 환자가 연아씨 동료에게 소리를 지르며 '진상'을 부렸습니다. 환자의 고성에 놀란 원장이 점심 시간에 직원들을 불러 난리를 쳤습니다. 모욕을 당한 직원은 얼마 후 병원을 그만뒀습니다.

원장은 연아씨를 불러 퇴사한 동료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원장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네가 누구 편인지 알겠다."
"청년공제까지 해줬는데…"
"네가 나한테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원장의 말에 그는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전 원장과 달리 새 원장은 청년공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만기일이 언제인지, 만기 끝나면 얼마나 받는지 물었습니다. 연아씨는 청년공제 수탁업체에 전화를 걸어 만기일을 물었습니다. 업체 직원은 회사가 기분 나쁘지 않게, 회사에 앙금 남지 않게, 문제없이 그만둬야 한다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그녀가 왜 그래야 하느냐고, 본인의 만기일이 되면 적금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업체 직원은 만기가 되는 달 월급이 입금되어야 하고, 회사가 업체에 월급명세서를 지급해야 문제없이 목돈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회사가 명세서를 주지 않을 경우 2년, 3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회사가 직원 엿 먹일 방법이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청년공제 만기를 한 달 남짓 앞둔 올 2월이었습니다. 원장은 직원들에게 신규채용 면접을 보겠다고 통지했습니다. 고용이 승계된 정규직인데 갑자기 신규채용을 한다니 연아씨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면접에 응했습니다. 그녀를 싫어했던 원장은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신규 면접에 불합격하셨습니다. 당신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연아씨의 앞날에 '재'를 뿌리면서 원장이 남긴 마지막 말은 '행운'이었습니다. 청년공제 만기 20일을 남긴 날이었습니다. 그녀는 '원장님 저는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카톡을 남겼지만 원장은 카톡을 '씹었습니다'.

해고 예고 기간 동안 원장에게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지만, 원장은 그녀를 '마네킹' 취급했습니다. 한 달 뒤 그녀는 병원에서 쫓겨났습니다.

연아씨는 가까운 노동권익센터를 찾아 억울함을 호소하고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연아씨는 부당 해고가 인정되면 청년공제 2년이 지나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공제금을 받을 수 있는지 고용노동부에 문의했습니다.

그런데 청년공제 담당자는 "청년내일채움공제 기간 중 부당해고를 당한 경우 청년공제는 '중지'되고,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복직 후 남은 기일을 근무해야 만기공제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연아씨는 황당했습니다.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청년공제는 만기를 채웠을 테고, 당연히 적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지 의아했습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닌데 '갑질' 원장 밑에서 20일을 더 근무해야 한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원장에게 당할지도 모를 수모를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직장갑질119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구멍슝슝 갑질금지법 리모델링" 기자회견을 열고 적용범위 확대와 근로기준법 76조 3 불이행 처벌조항 신설을 촉구하고 있다. 2020.7.16
 직장갑질119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구멍슝슝 갑질금지법 리모델링" 기자회견을 열고 적용범위 확대와 근로기준법 76조 3 불이행 처벌조항 신설을 촉구하고 있다. 2020.7.16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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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계약'으로 악용

노동자가 해고를 당하면 고용보험이 중단됩니다. 노동자가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으면 고용관계가 회복되어 해고기간이 고용보험 피보험기간으로 산입됩니다. 그런데 똑같이 사용자의 귀책 사유로 노동을 제공하지 못해 벌어진 일인데, 청년공제는 부당해고 기간을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입니다.

악질 사용자는 청년에게 엿을 먹이고, 정부는 이를 구경하고 있는 꼴입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신청했고, 24회 차 중 20회 차까지 납부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제가 청내공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악용해 괴롭히고 있습니다. 사유서 3회 작성 시 해고하겠다고 협박합니다. 근로계약서보다 30분 일찍 출근하라고 강요하고, 1분이라도 늦으면 지각 처리 하겠다고 위협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가슴 통증으로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상황입니다." (2021년 4월)

"2020년부터 중소기업 청년내일채움공제 2년형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 온 부장님의 괴롭힘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과중한 업무를 주고,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갈구고, 경위서를 쓰게 하고, 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통보했습니다. 그만둘 때까지 갈구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 (받을 때) 까지 다니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2021년 3월)

"건설회사에서 회계직으로 1년 6개월째 일하고 있습니다. ​그만두고 싶은데 청년내일채움공제 때문에 참고 다니고 있습니다. 직속 상사의 폭언이 장난이 아닙니다. 욕, 폭언, 개인 업무 지시까지 여기 다닌 후로 우울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욕 들은 날은 병원에도 몇 번 실려 갔습니다. 녹음한 파일 보내드립니다. 하루하루 고통스러워요ㅠㅠ" (2021년 2월)
 
'청년공제 갑질' 제보 사례가 잇따르자 정부가 대책을 내놨습니다. 가입자가 휴·폐업 등 기업의 귀책 사유로 중도해지를 할 경우 가입 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도 환급금을 받게 됩니다. 또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가입자가 이직해 중도해지를 할 경우 해당 기업은 다음 해 청년공제 지원이 제한됩니다.

하지만 '정부는 멀고 주먹은 가까이' 있습니다. 회사의 귀책 사유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퇴사할 경우 정부지원금을 받지 못해 금액이 현저히 줄어들게 됩니다. 사용자들이 이를 이용해 폭언, 성추행, 노동법 위반, 사적 지시 등 온갖 갑질을 일삼고 있는데 정부는 제대로 감독하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정부의 청년공제를 '노예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직장갑질119의 한 제보자는 "스트레스가 심해서 가슴도 두근거리고, 일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고, 어떨 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가족들이 청년공제가 아니면 어디서 그런 목돈을 받을 수 있겠냐고 해서 버텼는데,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듭니다"라고 눈물을 흘립니다.

청년공제의 재가입 사유를 완화해야 합니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사업장의 휴‧폐업 △도산 △권고사직 △임금체불 △고용보험료 체납 △기타 지방관서장이 재가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퇴사한 후 6개월 이내에 재취업할 것을 전제로 1회에 한하여 재가입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등 사업주의 귀책 사유가 아니더라도 노동자의 귀책 사유가 아닌 한 재가입 요건에 포함되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자가 불가피한 사유로 이직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이유로 두 번 다시 이 제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면 매우 가혹한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재가입 기간과 횟수 제한을 폐지하거나 확대해야 합니다.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부당대우를 일삼으면서 노동자를 묶어두는 무기로 이 제도를 악용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고용노동부에 제안합니다. 청년공제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입니다. 악덕 사장이 청년의 삶을 저당 잡아 갑질 하지 못하게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청년공제에 가입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합니다. 설문 결과 노동법 위반 회사나 갑질이 심각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불시 감독을 벌여 불법을 바로잡으면 됩니다.

대한민국이 설문조사와 근로감독을 할 능력이 없어 청년의 꿈이 짓밟히는 걸 구경만 하는 나라는 아니겠지요?

덧붙이는 글 | 박점규 기자는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입니다.


태그:#갑질,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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