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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코로나로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 수업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작년 저희 아이는 3학년이었습니다. 3학년은 생존수영이라는 과목이 있지요.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수영장에서 진행되었을 너무나도 즐거운 수업. 어느 날 종이컵과 빨대가 책상에 놓여 있더군요.

"준혁아, 종이컵과 빨대로 무슨 수업을 했어?(과학수업이 있던가..)"
"응, 체육수업인데 생존수영 수업이야. 종이컵에 빨대로 숨 내쉬기, 참기 연습을 하래. 아! 이따가 샤워할 때 물 틀어놓고 눈뜨고 숨참기도 하라고 했는데."


네, 생존수영이었습니다. 생존수영에 대한 것을 동영상으로 보고 숨 참기, 호흡 연습.

1년 내내 수업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첫 학기는 혼란스러워도, 선생님께서 유튜브 동영상을 매주 한두 번씩 잘못 올리셔도, 가끔 동영상 링크를 올리는 것조차 잊으셔도, 이해했습니다. 우리 모두 코로나 상황을 처음 겪어 보았고, 학교에서도 선생님도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방학이 지나고 온라인으로 수업이 대부분 진행될 것을 알았던 2학기는 조금 달라져 있기를 바랐습니다. 학원들이 발 빠르게 움직여 온라인에 맞춘 수업을 만들 수 있었던 그 시간 동안 우리 학교들은, 교육부는, 교육청은 더욱 기민하게 움직였겠지, 기대했습니다.

개학 첫날부터 무너진 기대
  
1학년 3~4교시 학습지라고 올려진 1장 짜리 게시물. 곧 2학년이 되는 아이들이 2교시에 걸쳐 수행할 정도의 수준이 되는가도 의문이지만 카메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심지어 비뚤어진 상태로 한글파일에 삽입해 놓았다.
 1학년 3~4교시 학습지라고 올려진 1장 짜리 게시물. 곧 2학년이 되는 아이들이 2교시에 걸쳐 수행할 정도의 수준이 되는가도 의문이지만 카메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심지어 비뚤어진 상태로 한글파일에 삽입해 놓았다.
ⓒ 정치하는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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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저의 기대는 개학 첫날부터 무너졌습니다. 여전히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는 것이 수업의 전부였고, 개학식조차 어디선가 만든 개학에 관한 영상을 보는 것으로 대체하더군요.

2학기에 진행되었던 생존수영 수업은 숨 참기, 빨대로 호흡 연습으로 대체되고 유튜브로 리코더를 배우는 아이들 덕에 아침마다 온 아파트에는 리코더 소음 장인들이 탄생했습니다.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이 대부분 진행되었을 것이라 예상되었던 그때, 교육과정을 온라인에 맞게 수정해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요?
     
유튜브 링크로 올라오는 수업 탓에 유튜브를 하지 않던 아이들도 연관 동영상에 관심을 갖게 되자 수업을 유튜브로 올리는 방식을 지양해 달라고 학교에 항의한 엄마에게, 수업 영상을 찍어 올려주시면 아이들이 선생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더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한 엄마에게, 학교는 이런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강남에서는 조금이라도 수업을 줄여달라고 하는데 왜 그러냐.'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 학력격차가 벌어진다 이야기합니다. 네, 당연하지요.

이럴 바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학교 수업은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학원에서 수학, 영어 진도를 나가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보낸 친구들, 초등학교 4학년 희수는 고등학교 수학을 시작했다 하고, 학교 대신 영어학원을 열심히 다닌 3학년 다희는 AR점수(영어 책의 레벨, 예를 들어 AR1은 미국 초등학교 1학년 수준)가 10점이 넘었다고 자랑합니다.

학교에서의 학습을 포기하고 학원으로 내몬 것은 누구였을까요? 학원을 갈 수 없고, 집에서 봐줄 사람도 없는 아이들은 집에서 유튜브에 올라온 온라인 수업을 듣다가 연관 동영상을 클릭하고 시간을 보냈겠지요. 학력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원인을 정말 모르실까요?

온라인 수업을 한 저녁이면 숙제를 하고 찍어서 이학습터에 올려야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 가운데 부모의 도움 없이 사진을 찍어 파일 업로드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을까요? 일이 바빴던 며칠 동안 아이가 알아서 잘하고 있을 거라믿었지만, 숙제를 해 놓고도 바빠보이는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 파일을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를 잊은 아이는 숙제를 3일이나 늦게 제출하였습니다.

숙제를 제때 올리는 것을 잊은 아이를 혼내긴 했지만 학교를 갈 때는 시험을 틀리거나 숙제를 안 한 적이 없던 아이에게 참 미안해졌습니다. 부모에게 의지하는 온라인 수업은 아이들의 교육 격차를 더 벌리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도 소외받지 않는 시스템이길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원격수업(계보경 외, 2020, COVID-19에 따른 초·중등학교 원격교육 경험 및 인식 분석 : 기초 통계 결과를 중심으로,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원격수업(계보경 외, 2020, COVID-19에 따른 초·중등학교 원격교육 경험 및 인식 분석 : 기초 통계 결과를 중심으로, 한국교육학술정보원).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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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학교에 가는 날이 더 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길 바라지만 언제 또다시 온라인 수업 시간이 더 늘어날지 모릅니다. 정부 방침으로 인하여 실시간 온라인 수업 역시 늘었습니다.

아이는 오늘도 전화를 합니다. "엄마! 줌에서 또 튕겨 나왔어, 다시 안 들어가지는데!!! 선생님께 말씀드려줘!" 전 회의하다 말고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연락을 합니다.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 친구들이 선생님께 말씀 좀 드려 달라고. 학원은 자체 시스템을 갖추고 온라인에 적합한 수업을 만드는데 학교는 여전히 똑같네요.
  
한 학교의 실시간 온라인 학습 공유 화면
 한 학교의 실시간 온라인 학습 공유 화면
ⓒ 정치하는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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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온라인 수업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수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공유된 학습 화면에 아이들이 서로 낙서를 주고받거나 채팅창으로 장난치는 동안에도 한 번의 개입조차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도 계십니다. 아이들이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은 오롯이 부모의 몫인가요?

대통령님, 코로나로 우리나라는 힘겨움도 겪고 있지만 'K-방역'이라는 말을 만들 정도로 위기를 기회로 삼았습니다. 교육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맞이할 미래의 수업을 앞당긴다 생각하고 온라인에 맞는 수업을 준비해 주세요.

일부 열심인 선생님들만의 노력으로 일부만 내실 있는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그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다시 공교육을 믿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부모님이 집에 없어도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어 어떤 아이들도 소외받지 않는 시스템이길 바라봅니다.
 
학교라는 공간을 책으로 표현하여 온라인수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강미정활동가의 작품
 학교라는 공간을 책으로 표현하여 온라인수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강미정활동가의 작품
ⓒ 강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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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치하는엄마들, #모두가엄마다, #온라인수업, #원격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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