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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마는 식물 시장에서 꾸준하게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식물이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단순한 모양, 사계절 내내 싱그러움을 자랑하는 연둣빛에 천연 살균 물질인 피톤치드를 내뿜어 숲 속의 향까지 갖추고 있다.

공기정화 기능과 심미적인 매력을 다 잡은 식물이다. 그러나 흔하게 볼 수 있고 인기 있다고 해서 키우는 것도 쉽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윌마는 햇빛과 물을 좋아한다. 여기에 살랑살랑 부는 바람까지 받쳐준다면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그런데 이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얄짤없이 안녕을 고한다.

식물 시장 스테디셀러
 
윌마 너머로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가 보인다. 윌마를 키우다 보면 도시의 삶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윌마 너머로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가 보인다. 윌마를 키우다 보면 도시의 삶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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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윌마'라는 이름보다 '율마'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꽃집이나 시장에서는 다들 '율마'라고 부른다. 윌마라고 부르면 못알아 들으니 나도 율마라는 이름이 편한데 정식 이름은 윌마가 맞다.

모양새는 아이들이 나무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슥슥 그려내는 원추형이다. 잎은 눈송이 입자 같기도 하고, 깃털처럼 보이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나무 형태지만 가까이서 보면 보슬보슬하고 귀엽다. 

나는 이번에 윌마를 키우는 게 3차 시도다. 내가 식물이 전달하는 신호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탓이겠지만 1, 2차 모두 별다른 징후도 없이 한방에 죽어버렸다.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되도록 멀리하고 있었는데 그 특유의 싱그러운 연둣빛에 나도 모르게 낚이고 말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뭐가 달라도 달라지지 않았겠나 싶은 막연한 생각에 데려왔다.

윌마를 처음 키울 때는 아무런 정보도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선물을 받아 키우기 시작해 몇 주 지나지 않아 타들어가듯 말라 죽었고, 그 다음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키웠는데 반년을 채우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었다. 겨울 초입 무렵이었다. 두 경우 다 줄기와 잎이 아래쪽부터 슬금슬금 갈색으로 변하면서 조금씩 말라가다가 전체가 다 변색되어 죽어 버렸다. 윌마를 두 번이나 보낸 죽음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확실한 건 물에 아주 까다롭다는 거고, 추위에 예민하다는 짐작 정도다.

3차 시도는 달라야 한다. 도대체 너의 정체가 무엇이냣. 윌마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측백나뭇과, 학명은 쿠프레수스 마크로카파(Cupressus macrocarpa) 윌마(Wilma)다. 친해지려고 일부러 학명까지 불러본다. 입에 잘 달라붙지 않는 어려운 이름이다. 그리고 상록 침엽 교목이라고 나름대로 붙여봤다.

가을에 잎이 떨어지지 않고 늘 연둣빛이니까 상록이고, 잎 끝이 뾰족하니까 침엽이고, 키는 크지 않지만 원줄기와 가지의 구분이 명확하니까 교목이라고 했다. 관목과 교목 사이에서 좀 망설여지긴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 의식적으로 자꾸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고, 과 목 이런 것들을 파악하려 애쓰는 건 식물의 성격을 파악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제 성격대로 자라니까.

막상 데려오니 죽어버린 옛 기억이 문득 문득 떠올라 평소보다 부지런히 베란다에 들락거렸다. 겉흙이 마르지 않았는지, 잎은 짱짱한지 만져보면서 확인하곤 했다. 윌마는 표현에 아주 인색한 편이다. 잎을 손으로 슥 만져봐서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있으면 물이 충분한 거고, 맥없이 보드랍게 느껴지면 물이 부족하단 신호다. 이 시기를 놓쳐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윌마와 물
 
손으로 슥 훑어서 냄새를 맡아보면 피톤치드 향이 진하게 난다. 스트레스 받을까봐 자주 하지는 않는다.
 손으로 슥 훑어서 냄새를 맡아보면 피톤치드 향이 진하게 난다. 스트레스 받을까봐 자주 하지는 않는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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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마한테 물을 줄 때는 저면관수가 좋다. 이 방법만 써도 윌마의 사망률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저면관수는 아래쪽부터 물을 서서히 흡수해서 잔뿌리까지 물을 먹게 하고 흙 전체에 골고루 물을 공급하는 방법이다. 화분을 통째로 옮겨 대야에 서너 시간 담아 두는 방법이 좋지만, 나처럼 귀차니즘에 시달린다면 아름다운 매치를 조금 포기하고 큼직한 화분 받침을 마련해 거기에 물을 부어주는 것도 괜찮다.

그런데 도대체 윌마는 물을 주면 왜 그리 안달하듯 물을 다 날려버리는 걸까. 침엽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물을 저장하지 않는 습성이 있는데 그것 때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을 먹으면 잽싸게 날려버리고, 또 먹고, 그렇게 추위를 견디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걱정과는 달리 윌마는 추위에 강했다. 이번 겨울에 닥친 강력한 북극 한파에도 베란다에서 굳건하게 겨울을 났다. 그 추운 날씨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물을 먹었다.

윌마 이야기는 온통 물이다. 3차 시도로 길러보니 물에 까다로운 것보다 물을 아주 좋아한다. 물이 부족하지 않게 채워주면 잘 키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다. 그리고 윌마 성격이 밀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물이 마르면 이도저도 다 싫고 단호하게 생을 포기해 버린다. 초기에는 나도 민감하게 다가갔는데 반년쯤 지나니 이제 좀 서로 수월해졌다. 윌마를 좀 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윌마는 아무래도 식물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기르는 덤덤한 타입보다는 자주 들여다보면서 살갑게 돌보는 스타일이 어울린다.

자연의 에너지가 주는 즐거움
 
왼쪽에 보이는 윌마가 핫도그 모양으로 다듬은 수형이다. 여럿이 모여 자라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키가 커서 한결 시원해보인다.
 왼쪽에 보이는 윌마가 핫도그 모양으로 다듬은 수형이다. 여럿이 모여 자라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키가 커서 한결 시원해보인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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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환경도 중요하지만 기르는 사람과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로 길들이는 거다. 윌마를 번번이 죽이는 사람은 키우기 너무 어려운 식물이라고 손사레 치고, 또 어떤 사람은 윌마는 키우기 쉽다면서 베란다 한쪽에 몇 그루씩 기르기도 한다. 키가 조금씩 다른 윌마를 토분에 심어 여러 개 모아 키우면 작은 숲처럼 정말 예쁘다. 잘 기르는 사람은 안정적인 물 관리를 터득했고, 서로 합이 맞춰진 상태인 거다.

윌마는 그대로 자라게 놔두면 위로 삐죽하게 자라는 수형이다. 이것도 나쁘진 않다. 그래도 윌마를 키우면서 색다른 변화를 주고 싶다면 수형을 바꿔 볼 수 있다. 기르는 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순을 따거나 가지를 쳐서 모양을 다듬어보자. 긴 타원형으로 다듬어 핫도그 모양으로 만들거나, 줄기 중간에 잎을 따서 잎 무리를 2단으로 만들어 볼 수도 있다. 희한한 점은 이렇게 뜯고 자르는 것에는 전혀 까다롭지 않다는 것.
  
키우면 정든다고, 윌마가 좋다. 예쁜 꽃을 피우지도 않고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 그게 윌마의 매력이다. 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는 것으로도 탁월한 심리 안정제 노릇을 한다. 고흐가 그린 하늘로 솟아오를 듯 불타오르는 측백나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윌마를 키우다보면 자연의 에너지가 이런 것이구나, 저절로 알게 된다.

태그:#윌마, #율마, #식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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