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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많이 찾는 포트 맥쿼리 등대.
 관광객이 많이 찾는 포트 맥쿼리 등대.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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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짙은 구름이 오락가락하며비가 오는 날이계속되고 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물줄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마음도 생기를 되찾는다. 비가 오는 날이면 베란다에 나가 시간을 보낸다. 며칠 전에는 한 시간 이상 번개가 하늘을 수놓는 장관을 베란다에서 볼 기회도 있었다. 번개를 이번처럼 가까이 본 적은 난생처음이다. 시골에 살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특권이다. 
  
비가 오면 우울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비가 오면 오히려 가슴이 후련해진다. 특히 소나기라도 퍼붓는 날이면 우울했던 기분도 멀리 달아난다. 김소월 시인이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라며 비를 기다리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비를 예찬하며 집에서만 지낼 수는 없다. 내일은 바람도 쐴 겸 집을 나서기로 했다. 목적지는 한 시간 정도 운전하면 갈 수 있는 포트 맥쿼리(Port Macquarie)라는 동네다. 관광지로 잘 알려진, 인구 5만이 넘는 큰 동네다. 주위 환경도 좋고 볼거리도 많다. 따라서 자주 찾는 동네다. 이번에는 오래전에 끝까지 걷지 못했던 산책로를 찾아볼 생각이다.   
  
다음날 아침, 구름은 있지만 파란 하늘도 보이는 날씨다. 평소와 다름없이 멀리 산맥과 바다를 바라보며 베란다에서 간단한 운동도 끝냈다. 천천히 집을 나서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중간에 레이크 카사이(Lake Cathie)라는 이정표를 따라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국도를 달린다. 동해가 멀리 보이는 경치가 유달리 멋있기 때문에 자주 찾는 국도다.

레이크 카사이 동네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넓게 펼쳐진 택지 개발 현장이다. 포트 매쿼리에 인구가 넘쳐나면서 새로운 택지를 개발하는 것이다. 개발 현장 건너편에 실버타운이 보인다.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다. 나도 언젠가는 실버타운에 정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담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주거 단지다. 캐러밴과 골프 카트를 가지고 있는 집도 보인다. 단지 끝자락에는 테니스장, 헬스장 그리고 수영장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골프 연습장과 퍼팅 잔디까지 잘 가꾸어 놓았다. 한가한 수영장에서는 할머니가 어린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손주들이 놀러 왔을 것이다.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년 생활의 모습이다. 

실버타운을 나와 오른쪽으로 태평양을 바라보며 국도를 타고 계속 올라간다. 한참 올라가다 등대가 있는 도로에 들어섰다. 해변에는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등대에 도착했다. 포트 맥쿼리에 있는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다. 따라서 관광객으로 붐비지만 운 좋게 주차장 자리 하나를 차지했다. 

이곳부터 산등성이를 타고 산책로가 시작된다. 바다를 끼고 도시 중심까지 이어지는 긴 산책로다. 끝까지 걷기에는 너무 먼 거리다. 적당히 걷다 다시 돌아올 생각이다. 등대에 올라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본다. 해변에는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태평양 물결이 큰 파도를 일으키며 달려와 바위를 때리면서 물거품을 하늘로 뿜어내고 있다. 

등대를 떠나 산책로에 들어선다.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그러나 계단을 만들어 놓아 어렵지 않게 내려갈 수 있다. 가파른 길을 다 내려가 해변에 도착하니 의자들이 있다. 주위에 꽃도 많이 준비해 놓았다. 해변에 나뭇가지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한눈에 보아도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바위가 파도를 막아주고 있는 옆에는 잔잔한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특이한 결혼식 분위기는 돌아와서 카메라에 담기로 하고, 산책로를 따라 산등성이로 올라간다.

조금 올라가니 주차장에 서너 대의 차가 주차해 있다. 산책로 근처에 있는 해변을 찾는 사람을 위한 주차장이다. 주차장에 세워진 경고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 해변에서는 누드로 일광욕 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비공식 누드 비치로 알려져 옷을 벗고 일광욕 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산책로가 있어 최근에 금지하기 시작한 것 같다. 

산책로 중간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언제 보아도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 특히 바다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은 아무리 마셔도 질리지않는다. 
 
산책로 중간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이너 비치(Miners Beach)
 산책로 중간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이너 비치(Miners Beach)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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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를 떠나 산책로를 걷는데 하얀 버섯이 군을 지어 있다. 먹음직스럽게 생긴 작은 버섯이다. 버섯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는 상식(?)은 있다. 눈요기만 하고 지나친다. 사실, 호주에서 산책로를 걷다 보면 수많은 종류의 버섯을 만난다. 버섯에 대해 잘 아는 사람과 걷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귀한 버섯을 채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와 해변(Miners Beach)에 도착했다. 누드 비치라고 알려진 곳이다. 하늘에 구름이 많아서인지 해변은 한가하다. 대여섯 명의 남녀가 나무 그늘에 앉아있다. 누드로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웃통을 벗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을 뿐이다. 경고 때문일 것이다. 

해변을 걷고, 숲속을 걷기도 하면서 산책로 끝자락 해변에 도착했다.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 해변(Shelly Beach)이다. 이곳에서 계속 걸으면 시내 중심가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멀다. 점심시간도 되었다. 몇 번 가보았던 열대 나무가 많은 레인포레스트 센터(Rainforest Centre)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분위기가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가족 단위로 많은 사람이 찾는 셸리 비치(Shelly Beach)
 가족 단위로 많은 사람이 찾는 셸리 비치(Shelly Beach)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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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다. 카페에도 사람이 많은 편이다. 열대 우림 지역에 와 있는 착각이 날 정도로 운치 있는 카페다. 간단한 점심과 음료를 주문하고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일기예보를 보니잠시 후 비가 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산도 없이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진다. 

급히 점심을 끝내고 빠른 걸음으로 산책로를 되돌아간다.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돌아오면서 찍기로 했던 풍경도 지나친다. 다행히 비는 맞지 않고 출발했던 등대 근처까지 왔다. 사진을 찍을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나중에 찍으려고 했던 결혼식 장소의 의자와 꽃장식들은 모두 치운 상태다. 결혼식이 끝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수없이 들었던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진에 담지 못한 결혼식 장소가 아쉽다. 

등대에 다시 올라서니 조금씩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다. 등대 주위를 천천히 걷는다. 등대에는 1879년이라는 팻말이 있다. 오래된 등대다. 조금 전까지 사람으로 북적였던 해변은 사람이 떠나 조금은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파도가 넘치는 바위에는 궂은 날씨임에도 한 낚시꾼이 대어를 노리고 있다. 

적당히 흩날리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주위를 서성거리며 등대를 올려보니 불빛이 반짝인다. 날씨가 흐려 등댓불이 켜진 것이다. 호주를 여행하면서 등대는 많이 보았어도 불빛 내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등대는 관광 상품의 하나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유용하게 쓰이는가 보다. 
 
비구름으로 주위가 어두어지면서 주위를 밝히는 등대.
 비구름으로 주위가 어두어지면서 주위를 밝히는 등대.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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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집에 갈 시간도 되었다. 자동차에 앉으니 본격적으로 비가 오기 시작한다. 고속도로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나기가 쏟아진다. 천천히 빗속을 뚫으며 운전한다. 빗속의 운전이 싫지 않다. 산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준 소나기가 고맙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잠시 집을 떠났을 뿐인데, 집에 돌아오니 긴 여행을 끝내고 온 기분이다. 퍼붓는 빗줄기를 뚫고 운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이 반갑다. 그래도 가끔 편안함을 벗어나는 삶은 인생의 양념과 같다.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포트 매쿼리에 다녀온 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있는 지금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벌써 며칠째 퍼붓는 소나기다. 수많은 집이 파손되고 산책을 다녀왔던 포트 매쿼리는 재난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타리(Taree)에서 집이 통째로 떠내려가는 모습을 뉴스에서는 계속 보여주고 있다. 홍수를 무사히 넘기고 모든 사람이 하루빨리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지인이 보내준 타리(Taree) 사진. 매닝강(Manning River)이 범람해 많은 가옥이 침수되었다고 한다.
 지인이 보내준 타리(Taree) 사진. 매닝강(Manning River)이 범람해 많은 가옥이 침수되었다고 한다.
ⓒ Helen 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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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포트 맥콰리, #N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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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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