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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이 2008년 10월 20일 국회에서 쌀직불금 부정수령자 명단공개 및 국정조사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이 2008년 10월 20일 국회에서 쌀직불금 부정수령자 명단공개 및 국정조사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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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부의 책임은 아니지만, 제도가 미숙한 상태에서 시행돼 많은 문제를 낳았다. 전 정부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철저한 개선책을 마련해 실체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경우 숫자 많지 않겠지만,부당하게 받은것은 모두 환수조치 돼야 한다." - 이명박 대통령 44회 국무회의 (2008년 10월 21일) 

"정부는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 그리고 가족들을 대상으로 쌀  직불금 수령실태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부정수령자의 수령액을 전액 환수하는 한편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 - 한승수 국무총리 (2008년 10월 17일) 

"행전안전부(장관 원세훈)에서는 쌀직불금이 도입된 2005년 이후 국가 및 지방공무원, 공기업 임직원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08년 10월 16일) 

위 발표들은 2008년 공무원들의 쌀직불금 부당수령 사태에 대한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발언 및 행안부의 입장입니다
 
LH직원들의 농지 투기 사태가 벌어진 2021년 현재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정부 주요인사들의 발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08년의 좌절이 초래한 비극을 알기에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2008년의 좌절과 비극 

13년 전인 2008년 당시 이봉화 보건복지부 차관의 '쌀직불금 부당수령 사건'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이명박 정부는 '쌀직불금 부당수령 사건'을 '감사원 은폐 의혹 사건'으로 프레임을 전환시킵니다. 그러면서 공무원의 쌀 직불금 부정수령 사실이 밝혀질 경우 직불금 환수와 파면·해임 등 법적 징계절차를 밟고, 2005년 이후 쌀 직불금 수령자와 2008년 신청자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쌀 직불금 부정수령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자진신고를 받습니다.  (관련기사 : 부동산 투기 공무원 일망타진하는 확실한 방법 http://omn.kr/1scj4) 

왜 이런 프레임 전환이 이루어졌을까요?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겠습니다.
 
2008년 10월 21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농림수산식품부에 ‘쌀직불금 부당신청신고상황실’이 설치되어 관계자가 공무원 쌀직불금 부당수령여부 조사업무를 보고 있다.
 2008년 10월 21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농림수산식품부에 ‘쌀직불금 부당신청신고상황실’이 설치되어 관계자가 공무원 쌀직불금 부당수령여부 조사업무를 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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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재임시절인  2007년 6월 20일 감사원의 쌀 직불금 감사결과를 보고 받는 자리에서 당시 박홍수 농림부 장관에게 제도개선을 지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직불금이 농민들에게 가지 못하고 부재지주에게 가는 것을 빨리 시정해야 한다."

대안으로 농업경영체 등록제를 만듭니다. 그러나 개선안이 마무리되기 전에 정권이 바뀌었고, 감사원은 '쌀 직불금 감사자료'를 비공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 자료 비공개를 노무현 정부의 은폐로 프레임을 전환시킵니다. 2008년 10월 18일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노무현 청와대는 쌀 직불금 감사 보고 받고 뭐라 했나'였습니다. 

쌀직불금 수령을 자진신고한 공무원들과 보수세력의 역공에 밀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의 감사원 감사결과 은폐 및 외압 의혹을 직접 반박해야 하는 궁색한 처지에 몰립니다. 감사원의 '쌀직불금 부당수령 감사'를 통해 부재지주와 가짜 농사꾼을 청산할 기회를 놓친 노무현 정부는 정권마저 놓치자, 바로 공무원들과 보수세력에 의해 외압을 행사하며 부패한 공무원들을 비호하는 세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2008년 공무원들의 쌀직불금 부당수령 사태는 어떻게 결말지어졌을까요? 쌀직불금을 수령했다고 자진 신고한 중앙행정기관 7462명, 지방자치단체 2만 4982명, 시·도 및 지역교육청 1만 2707명, 공공기관 등 4436명 등 총 4만 9587명의 공무원 중 겨우 2988명이 징계위에 넘겨져 그중 1794명이 징계 및 경고 조치를 받은 것으로 끝났습니다.  

놀라운 것은 3급 이상의 고위공직자 중 단 3명에게 파면도 해임도 아닌 퇴직과 면직이 이루어졌을 뿐이고, 고작 31명에게 내려진 중징계의 대부분은 중징계 중에서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인 정직이라는 것입니다. 
 
행정안전부 2009.09.29 보도자료
 행정안전부 2009.09.29 보도자료
ⓒ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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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경영체등록을 한 공무원들의 폐해 

LH직원들의 농지투기 사태를 맞아 대통령은 부동산 적폐 척결과 촛불 정신을 말하고 있지만, 총리와 장관은 농지투기에 관여된 LH직원들을 농지법과 공무원법의 영리업무 금지 위반으로 처벌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이러다가 2008년의 공무원들의 쌀직불금 부당수령 사태의 흐지부지한 결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됩니다.

농업경영체등록을 한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교사들이 농가당 농업소득 연 1175만원인 농민에게 끼치는 피해를 모르는 것 같아 몇 가지 적어봅니다.

첫째, 농촌 지역 내에서 구매력이 있는 가장 유력한 소비자들인 그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진짜 농사꾼들로서는 소비자는 줄어들고 경쟁자가 늘어나는 이중의 부담을 안게 됩니다. 게다가 친환경 직불금 등 각종 직불금을 불법 수령하면서 진짜 농사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은 줄어들어 버리기까지 합니다.  

둘째, 농민들에게 제공되는 보조사업이나 지원제도가 농사짓는 공무원들의 필요에 따라 왜곡되고 편향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현재 농업 관련 지원이나 보조사업은 대부분 시설이나 자재 등 현물 지원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농민들이 업자와 결탁해 보조금을 횡령한 사례를 들어 현금 지원이 불가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지원이나 보조사업에서 현금 지원이 실현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농사 짓는 공무원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 그들이 현금이 아닌 영농 관련 시설이나 자재를 지원 받으면 재산상 이득을 위한 영리업무가 아닌 것으로 위장이 쉽기 때문입니다. 
 
셋째, 농사를 부업이나 취미활동으로 격하시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부심을 가지려 노력하는 농사꾼들에게 자괴심과 좌절감을 안겨준다는 것입니다.

농사꾼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공기업 직원들이 그들의 '재산상 이득'을 위해 펼치는 노력은 꼼꼼하고 치밀합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시흥농협에서 총 58억원을 대출받은 LH 직원 13명은 대출을 받기 위해 해당 농협에 조합원으로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농협 조합원으로 가입하려면 농업인임을 증명하기 위한 농업경영체 등록과 농지원부, 농지 임대차계약서 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농업인이 돼야 0.20%p 우대 금리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58억원의 0.20%는 1160만 원입니다. 이들은 앉아서 농가의 1년 농업소득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다간 공무원·공기업 직원들이 농민재난지원금 100만원 받을라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9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667, 667-1,2,3번지에 보상을 노린 수백 그루의 측백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9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667, 667-1,2,3번지에 보상을 노린 수백 그루의 측백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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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4차 재난지원금 대상에 농어민을 포함시키고 농가당 100만원씩 지급하는 보편 재난지원금 예산 1조 70억원이 포함된 추경 증액안이 국회 농해수위를 통과됐습니다. 이미 지난 10일 "4차 재난지원금 대상에 농민을 추가하는 것은 국회에도 공감대가 있다고 들었다. 여야간 공감대가 있다면 정부에 받아들이도록 지시하겠다"는 청와대의 발표가 있었으니, 4월이면 농업경영체등록을 한 공무원, 교사, 공공기관 임직원, 군인들이 농민을 위한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참고로 19일 정부는 농가당 100만원 보편 지급에서 피해 입은 농민 선별지원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기 전에 공무원, 교사, 공공기관 임직원, 군인들의 명단을 농업경영체등록부와 대조해 부재지주와 가짜농사꾼을 처벌하기를 촉구합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에 출마한 각 당의 후보들에게도 해당 지역의 농업경영체등록자 전수조사와 가짜농사꾼 처벌을 공약할 것을 촉구합니다.

통계청의 2019년 농림어업조사결과 서울과 부산에는 각각 2851가구와 7314가구의 농가가 등록되어 있지만, 농산물품질관리원의 2019년 연보에는 각각 6.8배와 2.6배가 넘는 1만 9618명과 1만 9722명이 농업경영체등록을 했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 
- 진짜 농사꾼이 문 대통령께 드리는 두 가지 고언 (http://omn.kr/1sexq ) 
- LH 직원만 문제? 국회의원 농지 소유 명단을 공개합니다  (http://omn.kr/1sdoe) 

태그:#부동산 투기, #LH직원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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