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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지역언론연대는 준엄하게 다시 한 번 말하고자 한다. ABC협회를 과감히 해체하고 비영리적인 새로운 부수인증위원회를 재건하라. 그리고 이에 의거해 엉망인 지자체 광고예산 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하라."

한국ABC협회가 신문 부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파문이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풀뿌리 지역언론들의 모임인 바른지역언론연대는 지난 2일부터 각 회원사별로 돌아가면서 릴레이 성명을 게재하면서 ABC협회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부수조작 의혹, ABC협회 해체하라" 
 
 바른지역언론연대 홈페이지(캡쳐)
  바른지역언론연대 홈페이지(캡쳐)
ⓒ 바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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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언론들은 "광고영업사원과 다름없는 사이비 기자들을 없애고 숙주처럼 빨아먹는 사이비 언론들을 사장시키는 시작점은 새로운 부수인증위원회가 작동되고 이에 걸맞게 지자체 광고예산 배정이 새로운 시스템을 갖출 때에 비로소 첫걸음을 뗄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 당국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이들이 주장하는 대안은 무엇인지 짚어 보았다.

ABC는 Audit Bureau of Certification, 즉 신문·잡지·웹사이트 등 매체량 공사 기구의 줄임말이다. 신문, 잡지, 뉴미디어 등 언론사에서 자발적으로 제출한 부수 및 수용자 크기를 표준화된 기준 위에서 객관적인 방법으로 실사하고 확인해서 이를 1년 단위로 공개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다시 말하면, 인쇄와 인터넷 등 광고 매체의 수용자 크기와 분포 상황 등을 소정의 절차에 따라 공시하여 회원사들에게 보고서를 배포함으로써 광고 거래의 합리화에 기여하는 곳이다.

광고를 하는 국내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회원사들의 공동 관심사에 대해 조사 연구를 목적으로 1989년 5월 31일 설립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이다.

ABC협회 발표 자료, 언론사 광고비 집행 근거
 
한국ABC협회 홈페이지(캡쳐)
 한국ABC협회 홈페이지(캡쳐)
ⓒ ABC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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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의 부수 및 수용자 크기는 매체사의 주요 재원인 광고 수입과 깊은 관계가 있다. 신뢰성·공정성을 전제로 하는 중요한 자료를 취합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광고주의 매체에 대한 광고비 집행 근거가 되기 때문에 신문 부수에 대한 정보는 매체사, 광고주, 광고회사의 경영과 광고의 과학화, 합리화를 위한 기본 자료로 중요하다.

특히 매체의 공개 부수는 광고주들이 광고료를 책정하고 계약할 때 가장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 광고주들이 매체에 대한 광고비 집행 근거가 바로 ABC협회 자료이기 때문에 그만큼 신뢰도가 높았고 객관성을 인정 받아왔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런데 그동안 이러한 믿음은 잘못된 것이었음이 내부 고발로 알려졌다. 이처럼 중요한 자료, 즉 신문 부수와 관련된 기초 데이터가 그동안 조작돼 발표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거세다.

지난해 11월 ABC협회 내부 관계자들이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미디어 정책과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협회 관계자들은 "ABC협회가 현실에서 발생할 수 없는 유료부수 공사결과를 버젓이 발표하고 있어 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폭로하면서 충격을 주었다.

<미디어오늘>은 2월 15일 문체부의 조사결과, 부수 부풀리기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국내 최대 신문사인 조선일보의 경우 표본지국 9곳의 보고부수는 15만 7,730부, 실사부수는 7만 8,541부로 신문사가 밝힌 자료와의 격차를 나타내는 성실률이 평균 49.8%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문제는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한겨레도 3곳의 평균 성실률이 46.9%, 동아일보는 2곳의 평균 성실률이 40.2%로 밝혀졌다. 그동안 믿어 왔던 유료부수가 ABC협회가 발표한 자료의 절반 수준이라는 점에서 언론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조·중·동이 특별 대접 받은 이유

한국ABC협회가 발표한 2019년(2018년도 분) 일간신문 172개사에 대한 유료부수 인증결과를 보면 조선일보 119만 3971부, 동아일보 73만 7342부, 중앙일보 71만 2695부로 3개 신문의 유료부수 합계는 무려 264만 4008부로 나타났다.

그동안 수십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들 3개 신문의 발행 부수는 이러한 데이터를 토대로 전체 신문 부수의 거의 절반을 차지해 왔다고 믿어 왔다. 영향력이 가장 큰 신문이라는 이유로 광고금액이 다르고 기업·기관에서 또는 관공서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특혜'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 이들 신문과 광고주들은 ABC협회 자료를 내밀곤 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유료 부수를 판매하는 신문이기 때문에 당연히 광고료를 많이 챙기며, 전국 관공서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또 국민의 혈세를 가장 많이 지원 받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ABC협회 내부 증언은 가히 충격적이다. 신문 부수 인증이 신문사들의 셀프로 이뤄지는 '뻥튀기'라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내용을 공익 제보한 박용학 전 ABC협회 사무국장은 지난 2월 25일 진행된 'ABC협회 부수조작 의혹' 토론회에 참석해 "내부 구성원으로서 사실 부끄럽다"고 먼저 반성하며 사과했다. 

박 전 국장은 이날 "ABC협회가 역량과 적격에 맞는 공사원을 배정하지 않아 결과의 왜곡을 초래하고, 표집지국의 교체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관리하지 못했으며 , 보정자료 역시 상세하게 관리하지 못해 최근 보정자료 제출을 ABC협회가 신문사에 요청하고, 공사 결과가 바뀌는 비상식적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ABC협회, 스스로 문제 의식 없는 게 가장 큰 문제"

그러면서 그는 "ABC협회 스스로 문제 의식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나온 것도 오래된 '조직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ABC협회가 발표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정부와 공공기관, 지자체들이 언론사에 대한 지원 규모를 결정해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광고비 단가 산정, 우편 비용 지원 등이 모두 ABC협회의 자료를 바탕으로 결정된다. 즉 유료부수를 부풀린 만큼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인데, 일부는 국민들의 세금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와 관련, 지역 주간신문들로 이루어진 모임체 바른지역언론연대(바지연)는 지난 3월 1일 성명을 내고 "ABC협회의 해체"를 촉구했다. 이들은 "진보-보수를 떠나 전국을 아우른다는 전국지들의 횡포 아니던가?"라고 반문한 뒤 "지역에서 어렵게 자생하고 있는 풀뿌리 신문들의 피 같은 돈을 착취하며 그들은 서로 협잡하여 광고비를 챙긴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담양곡성타임스 3월 2일 성명 기사(홈페이지캡쳐)
 담양곡성타임스 3월 2일 성명 기사(홈페이지캡쳐)
ⓒ 담양곡성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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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또한 "국내 유일 독점 유료부수 인증기관인 ABC협회의 부수 조작 문제가 또 다시 불거진 것은 통탄하고 경악할 일"라며 "ABC협회 이사회가 신문사 판매국장 중심으로 꾸려져 있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로 예견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 공모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광고를 받기 위해서는 ABC협회 가입이 필수요건이라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가입비를 낸 풀뿌리신문들은 분노한다"며 "더욱이 다른 일간지와 달리 지역주간신문은 대부분 우편발송을 하고 있어 부수가 투명하게 이미 공개돼 있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생돈'을 내왔다"고 주장했다.

바지연은 성명에서 "유가부수만 제대로 파악해서 이에 맞게 광고가 원칙대로 집행된다면 풀뿌리 신문의 상황은 지금만큼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역에서 전국지와 광역일간지보다 부수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ABC협회 부수와 전혀 상관없이 광고비 차별을 받는 것은 정부가 ABC협회 감사는 물론 광고예산 집행을 그동안 방임하며 조장했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 뒤 해체를 요구했다.

지역의 풀뿌리 언론들은 이처럼 ABC협회 해체 요구와 함께 "정부가 중심이 돼 시민단체·노동조합 등 각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부수인증 위원회' 재건과  엉망이 돼버린 지자체 광고예산 시스템 재정비"를 촉구했다.

전북민언련, "전북지역 일부 신문 부풀려진 의혹 제기,,,전면 검증 필요" 

이처럼 ABC협회 발표 자료마저 조작이라는 내부 고발과 보도가 나오자 실망의 목소리와 함께 협회해체 요구가 전국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ABC협회 발표 자료의 신뢰성이 낮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ABC협회에 가입한 지역 일간지들의 유료부수도 부풀리기 의혹이 나오고 있다. 
전북민언련 3월 11일 뉴스피클(홈페이지 캡쳐)
 전북민언련 3월 11일 뉴스피클(홈페이지 캡쳐)
ⓒ 전북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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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난해 "전북지역에서 ABC협회에 제출되는 일부 신문사의 부수가 부풀려져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전북민언련)은 "지자체의 홍보비도 과다 지급되었던 것이 아닌지 검증이 필요하다"며 "건강한 언론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믿을 수 있는 신문사 부수인증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사 당국, 즉각 관계 신문사들 수사하여 사실 밝혀야"

한편 11일 더불어민주당 미디어TF 소속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ABC협회 의혹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조사 근거와 환수 방안 등을 담은 관련 입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류와 기득권을 주장하는 메이저 언론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 국내 메이저 일간지들의 세무조사와 관공서 기자실의 브리핑 전환 정책이 불발로 그친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풀뿌리 지역언론들의 ABC협회 해체 주장과 운동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무엇보다 ABC협회와 신문사의 유착과 이로 인한 부수 조작 행위는 명백한 대국민 사기이며 우리 언론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점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정부와 국회, 관계 당국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당장 수사 당국은 신속히 수사에 착수해 부수 조작의 근거가 된 신문사들부터 수사하여 명명백백히 사실을 밝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전북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ABC협회, #신문부수,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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