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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새학기 개학을 앞두고 지난 2월 25일 오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책상 가림막과 함께 입학 환영 현수막이 설치돼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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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님.

길고 긴 터널과도 같았던 겨울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새 학기가 됐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건만 워킹맘인 제게 3월은 악몽과도 같은 달입니다. 각종 서류작성은 기본에, 쉴 새 없이 울리는 e-알리미도 수시로 확인해야죠, 아이들 준비물도 챙겨야죠, 거기에 하나하나 이름표까지 붙여야죠... 그야말로 정말 혼이 쏙 빠집니다. 그중 난도 최상 미션은 바로 아이의 '스케줄 세팅'인데 첫 단추는 바로 돌봄교실 신청입니다.

기본적으로 오후 4시에서 5시까지도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과는 달리 초등 저학년은 낮 12시에서 오후 1시 사이면 모든 공식 일과가 끝납니다. 그 시간 학교 교문 앞에서는 보호자들이 모여 우리 아이는 언제 나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는 진풍경들이 매일 연출됩니다. 하지만 저는 첫아이 때도 둘째 아이 때도 그곳에 낄 수 없었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 제가 매일 그 시간에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당시는 제가 경력단절 상태에서 막 벗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아이가 주5일 운영하는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에 매일 간다고 해도 오후 돌봄 공백을 때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두어 시간밖에 되지 않기에 맞벌이인 저희 가정에 돌봄은 그야말로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돌봄 추첨 현장이 눈물바다 된 사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저희 아이가 다니게 될 학교에 돌봄교실은 고작 두 반뿐이었습니다. 경쟁률은 2:1, 확률은 50%. 돌봄교실 추첨날 저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습니다. 엄마, 아빠, 아이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총출동한 집까지 있어 교실 안팎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추첨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미리 번호표를 나눠준 다음 상자에서 공을 뽑아 오렌지색 공이 나오면 '당첨'이고 흰 공이 나오면 '꽝'입니다. 돌봄교실을 주관하는 선생님조차도 워킹맘인지라 저희와 동등한 조건에서 함께 추첨을 해야 했습니다. 추첨이 진행될수록 교실 안은 숨 막히는 긴장감이 점점 더해갔습니다. 오렌지색 공이 나올 때는 환호가, 흰 공이 나올 때는 안타까운 한숨소리가 온 교실을 채웠고 행운의 주인공들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교실 안은 왠지 모르게 너 나 할 거 없이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요? 원래 뽑기 운이랑은 거리가 멀었던 저이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혹시나' 하고 기대해봤는데 결과는 '역시나'였습니다. 저도 똑 떨어졌고 같이 추첨하러 온 아이 친구 엄마도 함께 떨어졌습니다.

저는 그래도 돈은 더 들지언정 유치원 때부터 아이를 봐주시던 시터 이모님의 도움을 조금 더 받기로 이야기해둬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만 그간 아무 도움 없이 유치원 종일반+학원 시스템에만 의지해오던 그 엄마는 믿고 있던 돌봄 추첨에 떨어지자 그 자리에서 그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달래주던 저도 결국은 함께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침 '똥손' 2명의 비보를 들은 동네 다른 엄마가 저희 둘을 데리고 집으로 데려갔고 그날 저희는 늦게까지 한잔 기울였습니다. 그간의 직장에서 이 악물고 버텨온 시간들이 주마등같이 스쳐지나가더군요.

'육아휴직 남겨뒀다가 초등학교 입학 때 써'라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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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2021학년도 신학기 첫 등교가 시작된 지난 2일 오전 대전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입학식이 열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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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항상 묻습니다. '넌 꿈이 뭐니?' 제게도 꿈이 있었고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도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인생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개인별 차이는 있겠지만 통상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기 전까지 '엄마들'이 겪는 인생역정은 대개 이러할 것입니다.

처음 사회에 나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나름 똑 부러진다는 소리 들으며 열심히 일하다가 주변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합니다. 여기까지는 사실 괜찮습니다. 결혼 그 자체는 여자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거든요. 진짜 본 게임은 바로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임신 기간을 거치는 동안 1차로 유·무언의 퇴사의 압박을 받습니다. 아이 낳고 나서도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인지, 아니면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만둘 것인지 계속해서 집요하게 '선택'하라고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다 복직 시기가 되면 또다시 고뇌하게 됩니다. 바로 복직할지 아니면 내 자리가 위태로워질 것을 알면서도 미친 척 육아휴직을 할지. 육아휴직 후 복귀 시점에도 이 고민과 선택은 매 순간 엄마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하지만 더 냉정한 현실은 이와 같은 고민을 할 수 있는 사람조차도 대한민국에는 공무원, 교사, 대기업 직원 등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극소수의 선택받은 집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이 단계에서 아이를 키워줄 사람이 없거나 아직 어린아이를 기관에 두고 복직하는 게 망설여지는 엄마들이 대거 이 단계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시 자신의 '꿈'을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시점만 이를 악물고 버티면 어린이집 종일반과 유치원 방과 후 수업 및 학원 뺑뺑이의 힘으로 어느 정도 '세팅'이 가능해집니다. 갓난아기 때와는 달리 이제 아이도 예전보다 손이 덜 가고 이쯤 되면 직장에서 연차가 어느 정도 쌓여 커리어 면에서도 인정받고 직장에서는 나름 중간관리자 위치에 오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름 요령도 붙어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 시점에 바로 마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육아휴직 쓰려고 할 때 선배들이 항상 육아휴직 다 쓰지 말고 좀 남겨뒀다가 아이 초등학교 입학 때 쓰라고 했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이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돌봄교실이 초등학생 가정에 끼치는 영향

돌봄교실은 정규 수업을 끝낸 초등 저학년 아이가 본격적으로 학원 뺑뺑이를 돌기 전 그나마 '안전하게' 머물며 간식이라도 챙겨 먹을 수 있고, 다른 엄마들과의 교제가 어려운 워킹맘의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을 만나 어울릴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돌봄교실의 진가는 사실 학기 중보다도 방학 중에 드러납니다. 방학기간 중에도 학원은 여전히 오후부터 엽니다. 수업이 없는 방학기간 아이들은 오전에 어디 마땅히 있을 곳이 없습니다. 점심 한 끼 맘 편하게 먹을 곳이 없습니다. 푹푹 찌는 여름에도 손발이 시린 겨울에도 집에 혼자 두기 힘든, 아직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학기 중엔 돌봄교실에 떨어져도 방과후 수업 일정을 최대한 빽빽하게 채우고 도서관 등의 교내 공간을 활용하면 학원 뺑뺑이 시간까지 근근이 버티는 게 가능합니다. 균형 잡힌 점심식사도 가능하지요. 하지만 방학이 되면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오전 시간 방학 특강 프로그램이 있는 곳을 찾아서 등록을 했더라도 점심식사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맞벌이 가정의 경우 아직은 어린아이들을 혼자 집에 있으라고 하고 미리 준비해놓은 점심을 데워먹으라고 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하지만 최근 보호자 없이 아이들만 집에 있는 사이에 일어난 화재 등 각종 사건사고들을 보면 선뜻 내키지 않습니다. 게다가 여아를 두고 있는 가정이라면 더더욱 어렵죠.

출산 이후 어린이집과 유치원 종일반을 거쳐 학원을 전전하며 수년을 직장에서 아등바등 버텨왔는데 이렇게 돌봄교실에서 허무하게 떨어져 방학기간의 돌봄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하나 고민하다 보면 인생에 회의가 듭니다.

이쯤 되면 이제 내가 과연 아이들을 길바닥에 내몰면서까지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렇게 힘들게 지켜낸 나의 일이 우리 아이와 가족을 위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 단계에서 대부분의 엄마들이 '경력단절'이라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진정한 의미의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엄마, 그 일 꼭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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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거면 학창시절 꿈이 뭐냐고 왜 물으셨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엄마의 꿈을 가지는 것은 엄마의 욕심이자 아이의 죄책감을 먹는 것을 형상화 한 강미정활동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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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대한민국에서 애를 낳아 기르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이지만 그래도 내 일 하나를 갖는다는 것이 대체 왜 엄마의 죄책감과 맞바꿔야 하는 일인지 저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생각만으로도 스멀스멀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럴 거면 어릴 때부터 저한테 꿈이 뭐냐고 묻지 마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히려 '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선택을 하는 순간 너는 이런 현실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야'라고 학교에서부터 가르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저도 미리 알고 대비를 하죠. 저는 순진하게 꿈만 꾸면 저는 뭐든지 다 될 수 있을 줄 알았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엄마'라는 신분의 소유자에게 이미 '꿈'은 사치품이자 아이의 희생과 엄마의 죄책감을 먹고 자라는 괴물입니다.

'욕망'에 충실한 매정한 엄마를 둔 덕에 저희 첫째는 어린 시절 참으로 많은 기관을 전전하며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키워졌습니다. 교문 앞에 다닥다닥 붙어 서 있는 사람들 틈에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는 새 학기 교과서를 받아온 날에도 무거운 짐을 혼자 낑낑 들고 와, 혼자 학원차를 타고, 혼자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가 우산을 깜빡해 울면서 전화했을 때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하루 걸러 한 번씩 아이가 묻습니다.

"엄마, 오늘은 데리러 나와주면 안 돼? 와서 나 가방 좀 들어주면 안 돼?"
"엄마, 그 일 꼭 해야 해? 안 하면 안 돼?"

아직 초등 저학년인 아이에게 한 번씩 이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당시의 저는 뭐라 할 말이 없어 그냥 말없이 웃기만 했지요. 몇 년이 지나 아이가 조금 컸을 무렵 저는 아이와 이 주제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너도 커서 뭐가 되고 싶다 이런 꿈이 있지? 엄마도 있었어. 근데 생각해 봐.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엄마이기도 한 거야. 근데 네 아이가 엄마 그 일 안 하면 안 되냐고 물으면 넌 네 꿈을 네 아이를 위해 포기할 수 있겠어?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아이는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고는 대답했습니다.

"너무 어려운 선택이야.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나는 아직 선택하고 싶지 않아."

"맞아. 그 질문은 엄마한테도 너무 어려운 질문이야. 근데 엄마는 최소한 네가 커서 엄마가 되고 싶은데 하고 싶은 일도 있다면 엄마처럼 이렇게 고민하지 않고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지금 이렇게 노력해서 버티면 최소한 너희들이 엄마가 됐을 때는 이런 고민을 안 해도 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매일 일하고 있어. 혹시 이런 엄마 마음 이해갈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아, 딸아이와 이런 잔인한 대화를 나누는 저는 대체 얼마나 매정한 엄마인지요.

아이들이 돌봄교실에서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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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기 첫 등교가 시작된 지난 2일 오전 부산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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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대통령님이 당선하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하지만 당시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것은 고백하건대 대통령님의 따님도 소위 '경단녀'(경력단절여성)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지인들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 대한민국은 대통령 딸도 경단녀구나. 참 평등하다 평등해' 하고 이야기했었더랬죠. 하지만 그만큼 저희 같은 평범한 엄마들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보고 계셨기에 잘 이해하시리라는 기대감도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당시 엄마의 손길을 애타게 갈구하던 첫째는 이제 어느 정도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고 이젠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됐습니다. 첫째 때 이미 한번 겪어봤기에 그래도 좀 수월하리라 생각했건만 그건 철저하게 오산이었습니다. 더 절망적인 건 그때와 비교해서 바뀐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대통령님, 저는 아이에게 약속했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노력하면 딸인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은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요. 하지만 이런 저의 약속은 공수표가 됐고 저는 여전히 '시간 거지'에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반쪽짜리 엄마입니다. 너무나도 절망스럽습니다. 정녕 우리 아이들도 저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희 아이들이 학교 안 돌봄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머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제 돌봄은 복지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돌봄은 대한민국 수많은 엄마들의 꿈의 사다리이자, 생계유지를 위한 생명유지 장치이자, 코로나 시국과 같은 비상상황을 버티게 해주는 최후의 사회안전망입니다.

저출산이 어쩌고 하며 괜히 몇 조 원씩 쏟아붓지 마시고 그 예산으로 딱 한 가지만 한다면 바로 믿고 맡길 수 있는 학교 안 돌봄망만 갖춰주십시오. 그 안에서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들이 꿈과 아이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당하거나 '매정한 엄마'가 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한 진정한 의미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