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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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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교사는 새봄과 함께 학교생활을 시작한 신입생들에게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눌 수 있습니까? 무지개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첫 만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4살 새내기들은 대답했다.

"선생님, 시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당연히 나눌 수 있습니다. 무지개 또한 7가지 색깔로 구분할 수 있죠. 그리고 저는 몇 살이며 몇째 아들이며 나이는 14살입니다."

그들의 답을 듣고 난 K교사는 다음과 같이 칠판에다 글을 썼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I am think therefore I am / Gogito ergo sum)'

혹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학생 있습니까? 조금 전의 용기 있게 대답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혹 다른 사고, 엉뚱한 생각이라는 말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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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핸드폰 사용하고 있죠? 이 핸드폰이 바로 엉뚱한 생각에서 나온 물품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전화기에 컴퓨터를 넣을 수 있지요. 신기하지 않나요. 여러분은 오늘부터 엉뚱한 학생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물었던 첫 번째 질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볼까요.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로 나눌 수 없습니다. 원래 시간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당연히 시간을 쪼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요?

혹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언제나 현재일 뿐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있는 것처럼 착각하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제도 내일도 없습니다. 오직 지금 그리고 여기만 있을 뿐입니다. 시간을 어렵게 정의하면 지금 이 순간이요 지금 이 찰나뿐이죠.

자, 보세요. 있지도 않은 어제를 생각하며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또 오지도 않은 내일을 앞당겨서 걱정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지나가 버린 것은 보내는 것이요 다가오는 것은 맞이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만 충실하면 됩니다. 아니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됩니다.

다음으로 여러분은 무지개를 7가지 색깔로 구분할 수 있다고 답하셨죠. 무지개는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어디까지가 빨강이고 어디까지가 주황입니까? 여러분, 어디까지가 머리이며 어디까지가 목입니까? 어디까지가 귀이며 어디까지가 코입니까? 우린 모든 것을 다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 사람들이 무지개라는 단어를 먼저 개념화했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약속만 한다면 얼마든지 개념을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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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대다수가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저는요 홍길동이구요, 나이는 14살, 사는 곳은 여수, 장남이며 공무원을 꿈꾸는 학생입니다.' 물론 이게 틀리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말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진정한 답이 아닙니다.

개성(個性)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개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 말입니다. 우린 그 누구하고도 같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나'일 뿐입니다. 말이 어렵겠지만 부처는 나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온 세상을 다 찾아보아도 오직 나는 존엄한 존재이다. (天上天下唯我獨尊)'

석가모니는 왜 나를 이렇게 정의했을까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그 무언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그 무언가를 찾아보세요.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어떤 감정을 지녔지,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나는 왜 동물을 좋아하지, 나는 왜 게임을 잘하지, 나는 왜 할머니를 존경하지, 나는 왜 정치인이 싫지, 나는 왜 촛불시위에 참여했지' 등등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답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의 아들과 딸이 분명 맞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부모님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또 다른 생명입니다. 그 생명에는 새로운 생각과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 말이 어렵죠. 지금까지 여러분하고 나누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잘 정리해 보세요. 끝으로 저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처럼 엉뚱한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니체처럼 신보다 인간이 위대하다고 주장해보시기 바랍니다. 카스텔리오처럼 폭력에 대항한 양심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 때 여러분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K교사는 종이 울릴 즈음에 준비한 자료를 나누어 주고 학생들 곁을 떠나갔다. 교실에 남겨진 Q양이 K교사가 남긴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WHO AM I?(당신은 누구입니까?)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세요.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세상으로 나오세요. 많은 고통이 따르겠지만 스스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비가 온 다음에 세상이 맑아지듯, 자신과의 거대한 싸움이 있은 다음에 참다운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고뇌를 해야 할 것이고 발칙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로 잘못이 아닙니다. 아무도 어떤 신념을 갖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됩니다. 신념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태그:#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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