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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채소 가게에서 이만삼천 원을 주고 쪽파 한 단을 샀다. 가격이 세서 망설이는 내게 반 단만 사서 담그라며 주저 없이 반을 가른다.

"나머지 반은 우리 아들 파김치 담가주지 뭐."

사실 나 역시 엊그제 통화에서 파김치가 먹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겸사겸사 나왔던 길인데, 너무 많아 망설이고 있었다. 헌데 가게 사장님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다급한 마음을 던지고 말았다. 파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 무슨 심보냐.

"그냥 한 단 주세요."

아들을 향한 사장님의 말에 질세라 저지른 일이 아닌가 싶게 의아한 나를 보고 말았다.

"지난 설에는 육만 원 했어. 지금은 말도 안 되게 내린 가격이라니까."

아들 주려고 파김치를 담그다
 
쪽파김치
 쪽파김치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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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 값이 오르니 덩달아 쪽파값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올 초부터 대파 값이 예전 가격보다 세 배 이상 올랐다. 비싸고 없으면 안 먹으면 되는데 음식 맛과 모양을 내기에 그만인 대파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조금씩 아껴서 먹더라도 대파만큼은 꼭 있어야 하는 게 요리하는 사람의 바람이다.

대파가 비싼 이유는 여러 가지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밥 해 먹는 일이 늘었고, 작년 오십여 일이 넘었던 긴 장마와 남도 지방의 이래(以來) 없는 폭설로 인한 농작물의 자연재해가 한몫했다. 대파를 심는 면적도 줄어 평년보다 출하량이 줄었다니 대파값이 오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긴 하다.

집에서 대파를 길러 먹는 집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삼겹살과 함께 늘 파무침을 챙겨주던 동네 정육점에서는 워낙 파가 비싸니 무쌈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쪽파 손질하는 동안 나는 왜 이 많은 파를 샀을까 후회하면서 양념을 해 숨을 죽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그런다.

"아들 말 한마디에 파김치 담그느라 애쓰네! 흐흐."

별것 아닌 김치 아닌가. 내 손 움직여 완성된 김치를 보면 누군가에게 자꾸 주고 싶게 만드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파김치 아닌가. 나는 파김치를 좋아하지만 사실 파김치를 잘 담그지 않는다. 왜냐하면 밥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젓갈을 좋아하나 젓갈을 잘 사지 않는 것과 같다.

텃밭에는 겨우내 자란 어린 쪽파가
 
겨울을 견뎌낸 쪽파
 겨울을 견뎌낸 쪽파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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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담그기엔 아직 어린 쪽파가 밭에 있다. 겨우내 뒤집어쓰고 있던 검불 같았던 마른 줄기를 벗겨 내고 며칠 전부터 초록색을 띠며 제대로 파 꼴을 보이기 시작한 작은 파밭이다. 양념 간장에나 쓸 정도의 크기다. 그것만도 어디냐 싶은 게 겨울을 나는 동안 파가 거기 있는 줄도 모르게 파밭은 형편없었다. 저것이 과연 파 구실이나 할까 싶게 존재감 없이 겨울 밭 한쪽에 쭈그러져 주눅 든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삼월 초에 가보니 마른 잎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파릇파릇한 쪽파 줄기가 휑한 밭에서 여봐란듯이 쭉쭉 키를 높이고 있었다. 놀라운 생명력이다. 쭈글쭈글한 파 머리를 쿡쿡 빈 땅에 박아 놓았던 쪽파였다.

온갖 풍파 딛고 겨울을 견뎌낸 모습이 그렇게 당당할 수 없다. 먹기도 아깝게 애틋하다. 지난 시간이 어땠는지 다 아니까. 고생을 함께 견뎌낸 것들만이 아는 안쓰러움과 고마움이 어떤 것인지 아는 일은 함께 보낸 시간이 주는 특권이기도 하다.

파릇하니 훌쩍 커 성장을 다 하면 그때는 쑥 뽑아 파김치도 담고, 파말이(파숙회), 김을 넣은 파무침도 할 것이다. 몇몇 지인들과 나눔을 할 것이나, 지금 쪽파의 모습은 꽃보다 예쁘다. 키우는 일은 그렇다. 때로 식물도 피붙이 같다.

아들은 왜 파김치가 먹고 싶었을까
 
양념으로 버무린 파말이
 양념으로 버무린 파말이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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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릴 적 엄마는 도시락에 꼭 파를 무쳐 넣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양푼 가득 파를 데쳐 간장 양념에 뚝딱 버무린 파를 돌돌 말아 감아 내 도시락과 동생들 도시락 반찬통에 넣었다. 가지런해야 먹기 좋았기 때문에 흩어지지 않게 일렬로 늘어선 도시락 안의 파는 엄마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파는 데쳤어도 톡 쏘는 맛이 있었는데, 엄마의 삶도 파처럼 맵기도 정갈하기도 했던 것 같다.

빨갛게 버무려 완성한 파김치를 포장해 아들에게 보내고 남동생한테도 가져가라 문자를 보냈다. 나만큼이나 파김치를 좋아하는 근처 사는 여동생을 부른다. 파김치에 밥 먹게 오라고. 매운 내 펄펄 풍기는 파김치, 먹고 나면 입안이 얼얼하지만, 어릴 적 맛인가. 파김치 맛을 잊지 못하고 산다. 아들한테 파김치를 보내놓고 앉으니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다.
 
파김치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아직도 파김치 올라온다
고속버스 트렁크를 열 때마다
비닐봉지에 싼 파김치 냄새

텃밭에서 자라 우북하였지만
소금 몇 줌에 기죽은 파들이
고춧가루를 벌겋게 뒤집어쓰고
가끔 국물을 흘린다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대처에 사는 자식들을 못 잊어
젓국에 절여진 뻣뻣한 파들이
파김치 되어 오늘도 올라온다
우리들 어머니와 함께

- 강형철 <야트막한 사랑>(푸른숲) 중에 시 '사랑을 위한 각서8'
 
언제부터 파김치를 좋아했냐고 아들한테 물으니 '그냥 언젠가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혹여 아들도 다 말하지 못하는 서울살이의 애환이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다른 음식보다 파김치가 먹고 싶다는 아들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한 하루였다.

"생으로 먹다 보면 서서히 익을 테니까 그냥 보내줘요."

내색 않는 아이가 힘든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먹다 보면, 아니 살다 보면 매운맛도 다 가라앉아 잘 익은 파김치가 되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누구라도 매운맛에 질렸던 시간을 잊는다. 또다시 매운 내 펄펄 나는 파김치를 앞에 놓고 앉을지라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 실립니다.


태그:#쪽파김치, #파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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