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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제대로 된 정부의 대비책 없이 확진자 간호와 구호물품 전달 등 생존에 꼭 필요한 조치들을 직접 해야만 했다.

이 모든 활동을 활발히 하였던 민간단체 중 하나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단체로서 대구지역 및 장애인 복지 전반에 걸쳐 연대활동과 정책제안활동, 장애인 자립지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당시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기도 했던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권익옹호팀장 김시형 활동가와 지난 1월 7일 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기자말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맞이 대구지역 정책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재난의 일상화, 일상의 재난화! 장애인은 살고 싶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맞이 대구지역 정책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재난의 일상화, 일상의 재난화! 장애인은 살고 싶다!"
ⓒ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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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형 활동가 : "감염병 상황에서 장애인의 기본권은 아주 쉽게 없어지거나 후순위로 밀려나게 됩니다. 정부의 지원도 당연히 없거나 뒤로 밀려나게 되는 상황이 발생을 하는 것이고, 그 공백은 오롯이 장애인 개인과 가족 그리고 시민단체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실제로 저는 2월에 자가격리됐고, 그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김시형 활동가는 자가격리 당시의 열악한 상황들을 회상했다.

"센터 내 장애인 동료분의 활동지원사분께서 확진판정을 받아서, 센터 내에서 같은 층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자가격리 통보가 왔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지원인력 없이 홀로 집에서 자가격리 생활을 해야만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죠. 저에게는 조리된 음식이 필요한데, 시청이나 구청에서 오는 구호물품도 사실상 혼자서 해먹을 수 없는 생쌀이나 라면, 생배추 같은 것들이 배송돼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활동지원사가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씻고 옷 입는 데에만 2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보통 활동지원사가 있으면 20분만에 다 끝나요. 그런데 혼자 하다보니까 2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죠. 그리고 설거지나 빨래, 쓰레기 배출 같은 것들이 좀 안됐죠.

평소에 지원을 받았던 활동지원사분들이 자가격리가 됐다면 대체인력을 구해서 파견해야 하는데, 그때 대구의 상황은 그런 게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가격리는 예비 코로나 확진자나 마찬가지잖아요. 내가 코로나 확진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인데 활동지원사로 들어올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리고 방호물품이나 방호복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위험수당 등에 관한 예산을 집행해 활동지원사를 파견하고, 이런 지원을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사실상 전혀 없었던 거예요."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널리 쓰일 정도로 코로나19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울함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거동이 어렵거나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에게는 단순한 우울감 이상의 심각한 스트레스다.

"시설이라는 곳 자체가 한 방에 스무 명, 다섯 명, 이렇게 돼 있는 곳이기 때문에. 코호트 격리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롯이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 혹은 시설에 있는 생활재활교사, 시설종사자에게 그 스트레스를 푸는 거죠.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도저히 중재가 안 되는 상황에 이르다보니 방 배치나 룸메이트, 생활재활교사를 바꾸는 일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정부는 작년 1월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인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통합심리지원단 24시간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 핫라인을 직접 이용해본 김시형 활동가는 이렇게 밝혔다.

"솔직히 그 전화가 저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어요. 그 상담자분이 어떤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장애인지적 관점이 없는 거죠.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없이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장애인을 더욱 불쌍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할 수 있거든요.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고 얘기를 하는 게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코로나19 시대, 장애인권과 관련해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바로 '탈시설'이다. 우리 정부는 장애인 복지에서 탈시설을 기조로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감염방지를 이유로 '예방적 코호트 격리'가 시행됐다.

UN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장애인 권리와 코로나19'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사망자의 절반이 시설 거주인이라는 발표가 있었을 정도로, 집단 거주시설은 감염병 확산의 위험성이 크다. 감염에 취약한 시설 거주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지역사회로의 탈시설은 현재 중지됐다. 김시형 활동가는 이에 더해 확진자 발생시를 대비한 장애인 맞춤형 생활치료시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원래 '대체적 지원정책'이라고 해서 자립생활지원 시스템을 운영했었고, 자립생활센터에서는 장애인거주시설과의 교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호트 격리가 이뤄지면서 면회나 외출·외박이 금지되니까 (시설 거주자들이) 자립생활센터와 자립지원주택을 체험하거나 이용할 수가 없었던 거죠. 즉, 시설과 자립생활센터의 교류가 막힌 거예요.

시설 거주인만 코호트 격리가 되는 상황도 차별입니다. 이미 사실상 코호트 격리된 상황인 거주인들에게 다시 한 번 격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시설 내에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이 일어났을 때, 확진자는 당연히 병원으로 가겠죠.

동시에 시설을 폐쇄하고 자립생활지원정책을 통해서 순차적으로 긴급하게 시설 안에 계신 분들이 지역사회로 정착할 수 있게끔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시설에 남아 있는 사람들부터 먼저 지역 사회로 나오고, 치료가 다 끝난 확진자분들은 차례대로 지역사회로 퇴원을 하시면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에 오듯이.

확진자 발생 시에 정말 필요한 것이 장애인 맞춤형 생활치료시설입니다. 각 권역마다 장애인 맞춤형 연수 시설을 미리 마련해 뒀다가 코로나 상황처럼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여기로 긴급하게 옮기고, 잘 준비돼 있는 활동지원인력을 투입해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립재활원에 장애인 특수병상을 마련하여 생활치료시설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많은 단체들과 활동가들이 지적하듯 장애인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들은 항상 문제가 발생하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만들어진다.

활동가의 말에 따르면 민간단체와 관변단체의 교류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현장 일선에서 권익 옹호를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와 정부기관이 긴밀하게 소통하는 구조가 절실하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해 2월, 3월부터 지금까지는 그런 조치가 전혀 없었다는 거죠.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시행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많이 늦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고요. 또 국립재활원은 서울에 있죠. 그러면 대구나 지역에 있는 장애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대구나 다른 지역에도 생활치료시설은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장애인들이 접근할 수 있고,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 같은 것들이 갖추어져 있느냐고 보았을 때, 그렇지 않다는 거죠.

코로나19 시대에 새로 생긴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이미 예견되었던 상황들이 벌어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2015년도 메르스 때부터 장애인 단체에서 감염병 상황에 대비한 정책들을 이야기했음에도 이제야 체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의 조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전달의 측면에서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코로나 시대의 장애인권과 관련한 지원책이 당사자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냐는 물음에 김시형 활동가는 난색을 표했다.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거나 자조모임을 하는 경우에는 조금이나마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센터 역시 소셜미디어나 메신저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장애 대중들은 코로나 감염 위험에 대한 공포로 떨고 있습니다. 정보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감염병 상황에서의 매뉴얼과 지침에 수어통역, 알기 쉬운 그림 자료, 영상 자료 등이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는 센터 소식지 등을 통해서 자가격리 수기를 포함한 코로나 관련 소식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시형 활동가는 발달장애인, 글을 모르거나 거주시설에 있어 소식지를 받아보지 못하는 장애인 등 정보전달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조치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재난 상황에서의 증언들과 경험, 체험들, 혹은 마주치는 순간들에 대해 기록하고 이후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 해당 자료들을 분석하고 정책에 반영하여 매뉴얼화시키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들에게 쉽고 빠르게 전달하는 일들이 수반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람 사이의 교류가 끊기는 이러한 재난상황에도 서로가 단절되지 않기를 당부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가 사람들에게 '모이지 말라'고 하면서 단절시키잖아요. 그런데 이 '단절'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 대신에 우리가 얘기하는 것이 '신중한 만남'입니다. 마스크 끼고, 방역수칙 지키고, 소규모로 만나고, 줌이나 전화, 온라인 등의 수단을 통해서 서로 단절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위 인터뷰는 사단법인 두루의 '코로나 시대의 공익인권활동, 공익소송 및 연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위 인터뷰가 담긴 연구 보고서(「코로나 시대의 장애인권 현황과 장애인권운동 아카이빙」)는 2021년 3월 말 발간될 예정입니다.


태그:#코로나19, #인터뷰,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 #장애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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