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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취생 생일상
 자취생 생일상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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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 혼영.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이 어색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표 1장을 예매할 때 괜히 남의 눈치를 보게 되고, 식당에 들어가 "1명이요"를 외치면 뻘쭘하던 때를 기억한다. 괜히 초라해 보이고, 남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에 주눅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로운 영혼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혼자 생일을 맞이하는 것. '혼생'은 아직도 괜히 초라한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혼자 사는 자취생의 '혼생' 스토리를 담아본다.

"그래도 자기 생일상을 스스로 차리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내가 이번 생일에 미역국을 스스로 끓여서 먹겠다고 선포하자, 엄마는 망설이며 얘기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 기회 아니면 언제 스스로 대접해보겠냐고 대답했다. 실제로 생일을 혼자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태까지는 친구들과 파티를 하거나, 가족 여행을 가곤 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번 나의 생일은 시끄러운 파티가 아니라,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되었다. 부모님은 어릴 적부터 얘기했다. 생일을 잘 챙겨야 복을 많이 받는다. 그럼 나는 무엇을 나에게 선물해 줄까. 결심했다. 미역보다 고기가 더 많은 미역국을 끓여주겠다.

미역 한번 볶고, 카톡 한번 보내고 
 
 미역국
 미역국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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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가서 국거리용 한우를 샀다. 300g에 약 2만2000원. 자취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비싸게 산 고기다. 엄마가 먹을 거에는 아끼지 말라 했는데, 확실히 냄새가 다르다. 휴대폰으로 레시피를 한번 봤다가, 고기를 한번 볶았다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처음 끓여보는 미역국이다 보니 쉴 새 없이 문자로 엄마에게 SOS를 쳤다.

'미역 불린 물은 버려?'
'아니 그것도 육수로 써.'

'이정도면 다 끓인 거야?'
'물 한 컵 더 넣고 푹 끓여.'


혼자 멋있게 미역국을 끓여서 보여주려 했는데, 이건 무슨 엄마의 지시에 따르는 아바타나 다름없다.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의 생쥐에 조종 당하는 주인공 요리사가 생각났다. 어느 정도 지나니 아주 구수한 냄새가 났다. 혼자 부엌에 서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미역국을 바라보니 기분이 묘하다. 매년 엄마는 이렇게 나의 생일상을 차려주었겠지. 엄마가 20년 동안 바라본 시선을 오늘은 같은 곳에서 바라보고 있다.

오곡밥과 삼색나물까지 예쁘게 세팅하여 미역국과 함께 식탁에 올렸다. 한술 떠먹으니 그 맛이 아주 깊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생일을 축하해주는 친구들에게 생일상 사진을 찍어 자랑했다. '어르신 밥상 같다', '직접 차려 먹다니 역시 너답다'며 장난 어린 축하를 보내주었다.

직접 끓인 미역국만큼 성장한 것 같은 이 기분 
 
 생일
 생일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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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기분 좋게 채우고 평소와 같이 출근했다. 말씀도 안 드렸는데 과장님이 생일을 축하해 주셨다.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축하문자가 왔다. 직접 전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택배로 작은 선물을 보내주었다. 과분한 사랑이다. 거리가 멀다고 마음이 멀어진 게 아니었다.

사실 나는 여태껏 생일이 부담스러웠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점수를 매긴 성적표를 받는 날 같았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갈 일상을 무언가로 채워야 할 것 같았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든지, 여행을 가든지. 그리고 조금만 그 기대에 어긋나면 실망이 배로 커지는 날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남에게 축하받을 줄만 알았지, 나 자신을 축하해준 적은 없었다. 이번 생일은 직접 끓인 미역국 한 그릇을 다 비운 탓일까, 배가 찬 만큼 마음도 든든하다. 미역국은 끓일수록 맛이 좋아진다는데, 나도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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