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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 지났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작곡가 손석우 선생 말씀을 듣는 방송 프로그램에 대담자로 참여했던 때가 2011년 가을이었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손석우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것은 물론, 프로그램은 종방되었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10년 전 그때 만난 기이한 인연은 여전히 눈앞에서 당시 상황을 되살려주고 있다. 지금도 네 조각이 난 채로.

원로 작곡가 손석우 선생 말씀을 듣는 자리이다 보니, 당시 촬영 현장에는 분위기를 살릴 만한 다양한 소품이 준비되었다. 그 중 하나가 큰 나팔이 달리 예스런 축음기였는데, 아무래도 모조품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확인한 결과는 역시나 실망스럽게도 모조품. 하지만 그 위에 놓인 낡은 음반을 가만히 들여다본 순간,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1937년 일간지에 실린 시스터레코드 광고
 1937년 일간지에 실린 시스터레코드 광고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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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된 글자가 아예 지워지거나 흐릿해져서 알아보기 쉽지는 않았지만, 확실했다. 시스터레코드 음반이었다. 오래 전 음악이나 음반에 관심이 많지 않은 이들에게는 바로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희귀한 정도로는 윤심덕 <사의 찬미>를 능가하는 것이 시스터레코드 음반이다. 현재 공개된 실물은 단 하나에 불과하고, 1930년대 신문이나 잡지에도 자료가 거의 보이지 않는 편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실물은 처음 보는 음반을 앞에 두고, 심장은 일단 다잡았으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견물이면 생심. 정말 꼭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촬영을 다 마친 뒤 담당 피디에게 조심스럽게, 실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여차저차로 저 음반을 꼭 들어 보고 싶은데, 모조 축음기로는 제대로 재생이 안 되니, 기기가 있는 집에 잠시 가져가서 녹음을 해도 되겠느냐고.

어렵게 청한 부탁 치고는 피디의 답이 그야말로 수월했다. 방송사 소품은 아니고 대여업체에서 빌려온 것이긴 한데, 뭐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그러면서 지금 얘기를 해 놓겠다며 음반을 들고 전화를 하러 갔다. 아, 들어 볼 수 있겠구나. 손석우 선생 말씀을 직접 들은 것만도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인데, 이런 기가 막힌 인연으로 시스터레코드 음반을 다 듣게 되는구나.
 
네 조각이 난 시스터레코드 음반
 네 조각이 난 시스터레코드 음반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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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돌아온 피디의 표정이 좀 묘했다. 업체에 전화했더니, 번거롭게 빌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가져가도 된다고 했단다. 다시 한 번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다만, 통화 중 음반을 떨어뜨려서 이렇게, 말끝이 흐렸다. 많이 낡기는 했지만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온전했던 시스터레코드 음반이 네 조각이 나 있었다. 이번엔 머릿속이 그냥 하얘졌다. 

생각지도 않게 희귀 음반을 받아 올 수는 있었지만, 당초 바랐던 듣기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도 귀한 자료를 확보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가도, 이렇게 가지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때 안 깨지고 들을 수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깨진 음반 하나로 세상사 이치, 인생의 아이러니 등을 다 맛본 느낌이다.

이제 두 번째 공개가 될 네 조각 시스터레코드 음반은 대중가요 가수 문일화와 장농주의 노래다. 문일화 노래는 제목 글자가 지워져 확실히 알 수 없고, 장농주가 부른 곡은 <수부의 노래>다. 아마도 1935년 럭키레코드에서 발매된 것을 이후 시스터레코드에서 다시 찍어 낸 것으로 추정된다. 들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시스터레코드에 대한 이해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그나저나 기이하게 만난 이 네 조각 음반,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태그:#시스터레코드, #럭키레코드, #손석우, #문일화, #장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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