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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을 결심했다. 마당 안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 먹고 가장 자주 쓰던 '돈' 대신 '시간'과 '노동력'을 더 많이 쓰는 삶을 살기로 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리기로 마음먹었고 텃밭 다음으로 꼭 배우고 싶은 것이 옷 만드는 것과 머리 자르는 기술이었다.

먹거리를 기르는 것과 함께 입는 것도 직접 만들고 집에서 어느 정도 머리 손질을 하고 싶었다. 대도시에서 삶을 정리하고 작은 도시로 이사를 한 뒤 집과 가까운 복지관에서 하는 옷 만들기 수업을 신청했다.

옷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정교했다. 대부분의 복지관은 수선 과정을 가르친다. 재취업을 목적으로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복지관은 의상학과를 나온 강사님이라 정식으로 옷을 만드는 '의상 수업'을 했다. 제도부터 재단, 봉재, 부자재 달기 등을 기초부터 배웠다.

바느질이라고는 학교 다닐 때 가정 숙제로 꿰맸다가 뜯어내기를 반복하며 손때가 묻어 까매진 완성품을 제출했던 경험뿐인데 4분의 허리둘레, 2분의 엉덩이둘레 등 필요한 수치를 계산하고 오래전 건축 설계 사무소에서나 볼 법한 큰 테이블 위에 종이를 펼치고 모양이 다양한 자들을 이용해 패턴을 그렸다.

재봉틀 쓰는 방법을 배운 뒤 입던 옷 고쳐 입고 천이 있으면 간단하게 박아 입는 정도가 나의 목표였는데 '이게 뭐지' 싶었다. 하지만 옷을 다 만들고 난 뒤 나에게 잘 맞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의 그 뿌듯함이 생각보다 컸다.

대도시에 살면서 한두 해 입을 요량으로 패스트패션 회사가 쏟아내는 옷을 별생각 없이 사던 것에서 꼭 필요한 옷을 내 몸에 맞게,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과정은 옷을 대하는 나의 생각까지 바꿔놓았다.

나에게는 옷 하면 떠오르는 오래된 경험들이 있다. 하나는 고3 때 원서를 쓸 무렵의 일이다. 나는 종교가 있는 학교를 다녔다. 당시 매일 내가 갈 수 있는 대학들 중에 어느 학교를 선택하면 좋은지 알게 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글귀가 바로 옷에 대한 내용, 즉 의복을 위해 왜 걱정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글을 읽고 결심했다. 겉모습인 의복같이 이름만 보고 대학을 결정하지 말고 내 맘이 가는 곳을 선택하기로. 선택의 과정은 지금 봐도 옳았지만 결과는 내가 원하는 방향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다. 왜냐하면 나는 남의 시선(대학의 이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남들 시선에 비틀거리던 나는 왜 삶이 힘든지 이유를 알지 못한 체 마음고생을 했다. 다행히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남의 판단에 갈팡 질팡 하던 옛 모습에서 서서히 벗어나 편안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또 하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옷에 대한 생각이 바뀐 적이 있었다. 바로 구제 옷을 사 입는 것이다. 몇 년 전 필리핀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 광장에서 열리는 시장에는 필리핀에서 살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들이 내놓은 옷들을 파는 일명 '보따리 장사'들이 있었다.

우리 돈으로 몇 백 원이면 질 좋은 면 잠옷이나 시원한 아사 원피스, 거의 새것 같은 편한 가죽 샌들 등을 살 수 있었다. 나 또한 파견근무로 나갔기 때문에 꼭 있어야 하는 물건들만 가져갔고 필요하면 그곳에서 사면 된다던 동료들의 손에 이끌리어 가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가 본 적도 없던 구제 시장에 눈 뜬 나는 그 뒤로도 종종 지금 사는 곳 오일장이 서는 날 구제 옷과 가방, 장식품 등을 파는 곳에서 어슬렁거리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옷을 만들면서 갖게 된 생각과 옷을 살 때 고르는 기준이 달라진 것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학을 선택할 때 의복의 의미가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체 결정을 했고 그 뒤로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며 그 선택을 후회했다.

내 인생이 바로 그 옷 때문에 꼬였다고 생각했고 어떻게든 남들보다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지나고 보면 그때 그 의복의 의미는 내게 꼭 필요했던, 나를 이만큼 성장하게 해 준 가장 아름다운 옷이었는데도 말이다. 

옷을 만드는 방법도 배웠고 옷을 어떻게 고르고 입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옷을 선택할 때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노력 끝에 다른 사람이 내 옷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는 자유로워졌지만 정작 내가 나를 볼 때는 철저한 자기 검열을 하며 나 자신을 괴롭힐 때가 가끔씩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는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연습을 했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옷을 입은 내 모습에 좀 더 후한 점수를 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태그:##옷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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