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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한창인 지난주 금요일 퇴근 길, 도로 위로 차들이 가득했다. 초행길이라 생소했지만 생각보다 여유롭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시 기다려. 나 OO이 데리고 올게."

부전시장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육점, 건어물 가게를 따라 쭉 내려가다보니 'O마트'라고 적힌 낡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기웃거리며 안을 살폈다. 코에 안경을 걸친 할머니가 계산대에서 신문을 보고 계셨고, 식자재 코너에서 목장갑을 낀 남자 직원이 물건의 개수를 파악하고 있었다.

'어! 저기 있다.'

시계를 보니 퇴근까지 1분 정도 남았다. 동생은 빠른 걸음으로 마트에 진열된 공간을 한바 퀴 빙 둘러보더니 주류 코너 옆 후미진 공간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수첩에 적고 있었다.

"뭐하냐?"

갑작스런 누나의 인기척에 동생은 화들짝 놀랐다. 얼른 여기서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반듯하게 착용한 마트 조끼를 보며 나는 괜히 동생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오랜만에 만난 매형에게 인사를 하고 차 안에서 나는 동생의 새로운 일자리에 관한 질문들을 마구 쏟아냈다.

그 곳은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으며, 직원은 시간제로 3명이 일하고, 유통업계에 일하다 오신 점장님 한 분이 실질적으로 마트 관리의 총 책임을 맡고 있었다.

동생은 직원이 작아 계산, 재고 개수 파악, 손님 상대, 시장에서 배달되는 물건 정리 등 여러 가지 업무를 본인이 직접 다 소화해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화가 오가는 동안 차가 고속도로 진입로에 접어들었다. 그때,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는 동생의 목소리가 점점 심각해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근데 저 지금 차로 고향 가는 중이라서, 내일 오후에 반납하면 안 될까요?"

쩔쩔대는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사정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상대방 쪽에서는 지금 당장 오라는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형님, 누나 정말 미안한데 내가 실수로 창고 열쇠 키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와버렸다. 한 번 더 확인했어야 했는데. 왜 그랬지, 당일 입고된 상품하고 재고물품 보관하는 킨데... 점장님께 사정 말씀드렸는데도 오늘 꼭 반납하고 가라네…."

두말 않고 차를 돌렸다. 평소 같았으면 한 소리 했을 법한 나지만 우리 눈치를 살피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동생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되돌아가는 차 안에서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라고 점장님께 공손하게 말씀드리라며 동생에게 신신당부했다. '그거 하나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책임감 가지고 일하라는 꼰대스런(?) 잔소리도 덧붙였다. 굳어 있던 동생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헐레벌떡 열쇠 키를 반납하러 마트로 뛰어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백미러로 훔쳐보았다.

이제 겨우 2달, 사회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실수,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동생이 기특하고 짠했다.

긴 시간 공무원 수험생활을 접고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정착한 부산. 두 발로 뛰어다니며 일을 구하고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는 내 동생이 나는 참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태그:#사회초년생, #실수, #동생,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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