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창승

관련사진보기

 
ⓒ 김창승

관련사진보기

 
ⓒ 김창승

관련사진보기

 
ⓒ 김창승

관련사진보기

 
ⓒ 김창승

관련사진보기

 
ⓒ 김창승

관련사진보기

 
ⓒ 김창승

관련사진보기

 
ⓒ 김창승

관련사진보기

 
ⓒ 김창승

관련사진보기

 
ⓒ 김창승

관련사진보기


책 때문에 희열을 느꼈고 책 때문에 울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책 때문에 즐거웠고 책 때문에 슬픔 가득한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지난 여름 부산의 대표적인 헌책방, '대우서점'을 정리하고 섬진강이 활처럼 흘러가는 전라남도 구례군 섬긴강로 46번지에 책사랑방을 연 김종훈 사장님과 박선희 여사님이 그들입니다.

빠름과 속성 정보를 추구하는 인터넷 시대에서 대형 헌책방을 유지한다는 경영상의 한계 극복과 책과 더불어 사유할 수 있는 자연속의 새로운 공간을 찾기위해 섬진강변을 누비다가 이곳 섬진강로 46번지에서 발길이 머물렀습니다.

처음에는 하동쯤으로 옮기려는 계획으로 그곳에서 1년간 임시거처를 하며 자리를 알아보았으나 이상하리만큼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여관으로 운영중이던 낡은 건물로 본인도 모르게 들어섰고 주인장을 만나 팔 의사가 없느냐? 물었습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주인은 며칠 후 전화로 매매 의사를 밝혀 그들은 아는 사람 하나 없던 구례땅 섬진강변의 책방 주인이 되었습니다.

2020. 5월부터 본격적인 건물 변경작업을 하고 여름 무더위와 씨름하며 30만 권의 책을 옮겨와 정리하면서 9월 초 오픈할 꿈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날 8.8일, 상상할 수도 없이 무섭게 범람했던 물난리로 거의 모든 책이 급류에 떠날라 가거나 젖어버렸고 하동 창고에 저장 중이던 15만 권의 책도 마찬가지로 유실되어 버렸습니다. 총 30만 권의 목숨과도 같은 책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으니 그들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남원 출신인 김종훈 사장님은 중학교 때부터 책에 미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순천시 남교 오거리의 서광, 평화... 등의 책방을 집처럼 들락거렸습니다. 헌책방에 앉아 있으면 너무나 행복했고 배고픈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 지독한 책사랑의 인연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78년에 자신의 책방, 대우서점을 열어 40년 넘게 책을 벗 삼아 지낸 책이 인생의 전부인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남겨진 10만 권의 책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일반 문학 서적, 기술 서적, 원서, 사전, 단행본, 대학교재, 잡지, 고서… 다양한 그 많은 책은 그들의 머릿속에 빠짐없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현대식 서점처럼 자판기를 누르면 어디, 몇 번 위치에 원하는 서적이 있는지 알려주는 전자 방식이 아닌 모든 책이 마음속 저장고에 입력되어 있기에 "어디 있어요?" 물어보면 동행해주는 간단하고 친절한 옛 방식입니다.

사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서점을 돌다가 2층 북카페 한구석에 진열된 대우서적 나무 간판과 각종 공로패, 신문 기사에 눈길이 갔습니다. 부산 시민들의 '지식과 에너지 충전소'였던 전통의 헌책방이 떠나간다는 작별의 인사와 붙잡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기사 내용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자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서점에 간 적이 언제였나, 책은 언제 샀는지… 기억도 까마득합니다. 그런 마음을 알아채셨는지 오늘도 먼 곳에서 한 사람이 부러 찾아와 책 몇 권을 사 갔노라며 부담 없이 찾아오고 마음껏 머물다 가는 섬진강 충전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십니다.

책 이야기에 한없이 맑던 그의 얼굴이 옥상으로 향하면서 점차 굳어졌습니다. 옥상에는 수많은 책이 온기와 호흡을 잃은 채 누워있었습니다. 흙탕물에 잠겼지만,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고서적과 희귀본을 옥상으로 옮겨 그늘에서 말리고 있었습니다. 책을 만져보며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발광을 하고 있다" 하십니다.

어떤 말, 어떤 위로가 필요하겠습니까. 30만 권의 책, 상상이 되지 않는 분량입니다. 돈으로 따져도 수십억, 그의 열정과 가치로 따지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도, 비교할 수도 없는 인생 총량의 가치입니다. 섬진강은 나중에 어떤 좋은 선물을 준비했기에 그들에게 이렇게도 큰 시련을 주고 있는지...?

섬진강로 46로 섬진강 책사랑방은 아픈 사연으로 시작되었지만, 이곳은 앞으로 위로와 영혼의 충전소가 될 것입니다. 책이 가득 꽂힌 창가에 앉아 흘러가는 강을 보는 여유로움, 눈을 돌리면 속삭이듯 말을 걸어오는 책의 숨소리...

#책사랑
#섬진강책사랑방


태그:#모이, #책사랑, #섬진강책사랑방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지리산 아래, 섬진강가 용정마을로 귀농(2014)하여 몇 통의 꿀통, 몇 고랑의 밭을 일구며 산골사람들 애기를 전하고 있는 농부 시인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