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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시 천년고찰 '왕방산 왕산사'

축축하게 젖은 대기 속에 메케한 향 내음이 짙게 배어 있었다. 왕방산에서는 계속해서 거센 바람이 불었지만 한번 공기 중에 밴 향내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모든 것에는 인연이 있다고 했던가. 시절 인연, 사람 인연… 왕산사와의 인연은 오늘이었나보다. 근처를 지나며 '왕산사' 이정표를 보았던 것이 몇 번인데 드디어 오늘 예정에도 없이 왕산사를 밟게 되었으니 과연 시절 인연은 있는가 보다.
  
미륵전에서 바라본 왕산사 모습
▲ 포천 천년고찰 "왕방산 왕산사" 미륵전에서 바라본 왕산사 모습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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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 내린 가을비로 하늘은 짙은 잿빛이고 시멘트 바닥에는 축축한 낙엽이 두텁게 깔려 있다. 인적도 끊긴 왕방사 계곡을 오른다. 계곡이 꽤 깊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처럼 여름 장사와 단풍 장사가 끝난 식당들도 문을 걸어 잠근 계곡은 더욱 스산하다. 꼬불꼬불 S자를 그리며 고꾸라질 듯 헉헉대며 가파란 호병골계곡을 올라선 방문객의 눈에 비친 왕장사는 처연하리만큼 무심하고 평온했다.
  
 왕산사 경내에 소복히 쌓여 있는 낙엽
▲ 왕산사 늦가을 풍경  왕산사 경내에 소복히 쌓여 있는 낙엽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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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전에서 내려다 본 전각들
▲ 왕방산 왕산사 미륵전에서 내려다 본 전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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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사의 유래

포천의 진산이라 일컬어지는 높이 737.2m의 왕방산 중턱에 자리잡은 왕장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천년고찰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전하지 않지만 이름에 대한 유래가 전해져 온다. 신라 헌강왕 3년(877)경에 도선국사가 절을 창건하고 기거하니 헌강왕이 격려 차 방문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 후 이 산은 왕방산, 절은 왕방사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조선 태조와 관련이 있다. 태조는 방원이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함흥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후 태종이 보낸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한양으로 돌아 오던 중 발길을 돌려 이 절에 들어와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후 한양으로 들어갔다고 하여 '왕방사'라 불렀다는 설도 전한다.

그후 조선 선조 때 청암과 백운 스님이 중창했고, 1627년 인조 7년에 청산과 무영 스님이 중창하고 '왕산사'로 고쳤다. 백운산 내원사 사적기에 따르면 1638년과 1648년에 청산과 무영스님이 내원사를 크게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어 두 스님이 왕산사를 중창했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지금의 왕산사는 해방 직후 이후 시작된다. 금강산에서 중생구도의 뜻을 품고 수도하던 청매화상이 현재의 왕산사 일대를 돌아본 후 고색창연한 절터에 천년석불이 묻혀 있는 꿈을 꾸고 백일 기도를 드린다.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미륵불이 현신하는 꿈을 꾸니 이를 계시로 여겨 1947년 이 터에 보덕사라는 절을 짓고 34년간 수행과 포교에 힘쓰며 왕산사의 기틀을 잡았다. 그 뒤를 이어 화정화상이 20년간 불사에 힘써 지금의 왕산사의 모습으로 일구었으며 현재는 법해스님이 주지로 봉직하여 불사를 진행 중이다.

이토록 온화한 미소라니
  
왕산사 미륵불은 천년을 땅에 묻혀 있었던 듯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 있다.
▲ 왕산사 미륵불 왕산사 미륵불은 천년을 땅에 묻혀 있었던 듯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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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도량을 정리하던 중 용트림 무늬를 한 막새기와 2매, 왕산사라 새겨진 암기와 1매, 무쇠솥 문고리 장식, 돌 거북, 법화경, 천수경 외 2권의 불경과 부처님의 사리 등 여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특히 왕실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기와나 부처님 사리 두 점은 왕산사의 위상을 보여주는 유물이 아닐 수 없다.

높은 축대 위에 새로 건립된 대웅전이 잿빛 하늘 아래 위용을 뽐내며 서 있었다. 전체적인 절의 구조가 서울 삼성동 봉은사를 연상시켰다. 대웅전 뒤편으로 돌계단이 두 갈래로 나뉘어 삼성각과 미륵전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흥미로웠다. 미륵전으로 난 긴 계단을 오르다 멈춰 서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그지없이 시원하다. 풍수의 문외한에게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멀리 중생들의 세계를 굽어 보는 미륵불
▲ 왕산사 미륵불 멀리 중생들의 세계를 굽어 보는 미륵불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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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륵전으로 향한다. 미륵불을 본 순간 얼음처럼 굳어져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토록 투박한 미륵불이라니. 또 이토록 온화한 미소라니. 마치 땅 속에서 천년의 세월을 묻혀 지낸 듯 돌미륵은 여기저기 얼룩이 져 있었다.

몸의 비율도 어색하고 유려한 곡선도 없이 거친 모습이다. 돌무더기 속에 처연하게 서 있는 미륵불은 수십 년 전 청매화상이 백일 기도를 마치고 현신한 미륵불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중생들의 기도를 들어준다는 왕산사 소원돌
▲ 왕산사 소원돌  중생들의 기도를 들어준다는 왕산사 소원돌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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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를 띠고 산 아래 중생들의 세계를 굽어보고 있는 미륵불을 마주 보니 괜스레 울컥했다. '모든 것이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거친 바람이 지나는 소나무 숲이 바로 불국정토였다.

미륵불 옆 작은 투명 유리함 속에 보관된 소원돌이 눈길을 끌었다. 이 돌에 기도한 중생들이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다는 신묘한 돌이다. 가만히 서서 마음속 작은 소망을 빌었다. 대웅전 처마 아래서는 그지없이 청량한 풍경 소리가 불국정토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태조가 환생한다면 다시 왕산사를 찾을 만큼 세상이 시끄럽다. 이 풍경소리에 세상을 어지럽히는 '난'이 조속히 잠재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포천소식에도 실립니다.


태그:#왕방산 왕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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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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