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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의 그림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는 님빈 공원.
 원주민의 그림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는 님빈 공원.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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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산속에서 새소리에 잠을 깬다. 어젯밤 내리던 비는 아직도 간간이 떨어지고 있다. 여름이지만 서늘한 기운이 몸을 파고든다. 깊은 계곡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얼굴을 씻는다. 상쾌하다. 상추를 곁들인 빵과 잼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오늘은 이곳저곳을 혼자 돌아볼 생각이다.

일단 관광객이 찾는 국립공원을 목적지로 정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이다. 도로를 관리하지 않아 웅덩이가 많이 패어 있는 비포장도로를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관광객이 이용하는 국도를 만났다. 도로를 따라 산으로 들어가니 나이트캡 국립공원(Nightcap National Park)이라는 팻말이 있다. 도로 주변은 오래된 고목으로 넘쳐나기 시작한다.

경사가 심한 도로를 운전해 정상에 올랐다. 비가 제법 오고 있다. 구름이 얕게 깔려 있다. 주위 경치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넓은 주차장에는 두 대의 자동차만 썰렁하게 주차해 있다. 혼자서 관광할 기분이 들지 않는 분위기다.

그래도 일부러 찾아온 관광지다. 주차장 가까운 곳에 있는 송신탑으로 걸어가 보았다. 입구는 굳게 닫혀 있다. 입구 옆에 있는 동판이 시선을 끈다. 동판에는 나디산(Nardi Mount)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산 이름은 님빈(Nimbin)에 오래 거주했던 나디라는 사람의 이름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비가 제법 내리고 있지만, 산책로를 걷기로 마음먹었다. 산책로 입구에 경고문이 있다. 경사가 심한 3등급 산책로라고 한다. 위험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문구도 있다. 경고문에 쓰인 3등급 산책로가 얼마나 험한 산책로인지 가늠할 수 없다. 일단 걸어 보기로 한다.

산책로에 들어서니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린다. 우산 없이도 걸을 만하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스럽게 걷는다. 주위에는 검게 탄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고목이 많이 보인다. 작년에 호주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산불 흔적이다. 

입구에는 안내판이 없었다. 따라서 얼마나 걸어야 할지 몰라 조금 망설이며 걷는데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 산책로는 18km, 왼쪽 산책로는 폴리스 갭(Pholis Gap)이라는 곳까지 1km라고 쓰여 있다. 가까운 왼쪽으로 난 산책로에 들어선다.

비가 내리고 숲이 울창해 주위 풍경은 즐길 수 없다. 그러나 비에 젖은 산 내음이 온몸으로 파고들어 좋다. 산책로는 계속 가파른 경사를 타고 내려간다. 호주는 한국과 달리 산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많다. 호주의 대표적인 관광지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도 주로 산 정상에 주차하고 산에서 내려가며 산을 즐긴다.

경사가 심한 산길이라 조심해서 걷는다. 따라서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도 1km를 가면 있다는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사람 소리가 들린다. 겨우 걸을 만한 아이와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젊은 부부가 산책로를 걷고 있다. 호주 남자와 함께 있는 아시안 여자는 한국 사람 같아 보인다. 어린아이는 안고, 큰아이는 손을 잡고 험한 산속을 걷는 부부다.

폴리스 갭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떨어져 있어서일까, 구름이 많이 걷혀 있다. 경치가 보인다. 정상에서 많이 내려왔지만, 발아래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다. 물안개가 숲 사이에서 피어오른다. 흡사 산불이 난 것 같다. 이정표에는 계속 내려가면 또 다른 목적지가 있다고 알려준다. 충분히 걸었다.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간다.

다시 올라가면서 조금 전에 만났던 부부를 만났다. 조금은 지친 모습이다. 목적지가 가깝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갈 길을 간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비구름이 산 정상에 걸려 있는 모양이다.
 
물안개가 산불처럼 피어 오르는 나이트캡 국립공원
 물안개가 산불처럼 피어 오르는 나이트캡 국립공원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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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정상에서 1시간 정도 내려와 바라본 전경
 국립공원 정상에서 1시간 정도 내려와 바라본 전경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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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을 떠나 님빈 동네 중심가로 향한다. 중심가는 어제와 다름없이 관광객이 오가고, 거리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공중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 팻말 아래 노상 방뇨를 하지 말라는 문구가 시선을 끈다. 호주에서 이러한 문구를 본 기억이 없다. 님빈에서는 화장실까지도 화려한 색으로 치장하고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님빈 스타일 색이다. 

점심시간이다. 동네 중심가에 있는 음식점을 기웃거리며 걷는다. 피자집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기다리면서까지 피자를 먹고 싶지 않다. 호주 사람이 운영하는 타이 음식점이 보인다. 그러나 호주 사람이 운영하는 타이 식당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계속 식당을 기웃거리며 걷는데 서너 명의 젊은이가 한국말을 하며 가게 앞을 기웃거린다. 히피 모습은 아니다. 평범한 관광객이다. 님빈이라는 동네가 한국 사람에게도 알려져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식당이 시선을 끈다. 일식 냄새가 풍기는 아담한 식당이다. 메뉴를 보니 유부초밥도 있다. 오래전 이곳에 들렀을 때 만났던 일본 여자가 생각난다. 일본에서 방송인으로 생활하다가 호주 사람과 함께 님빈에 정착한 여자다. 문명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 이곳에서 산다고 하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식당에 앉아 관광지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가볼 만한 곳으로 잔붕 정원 (Djanbung Garden)을 추천한다. 환경친화적인 정원이라고 한다. 정원에는 카페도 있다. 커피도 마실 겸 정원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오늘은 문을 열지 않는다. 입구에 주차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연꽃이 만발한 정원이 보인다.
 
인공적인 냄새가 전혀 없는 잔봉 정원 입구. 친 환경적인 정원이다.
 인공적인 냄새가 전혀 없는 잔봉 정원 입구. 친 환경적인 정원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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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 하고 자동차를 타고 주위를 둘러본다. 초등학교를 지나 조금 들어가니 작은 물줄기가 흐른다. 물가에는 히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여자 혼자서 애완견과 함께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개가 걷는 것을 보니 한 발을 절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발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한다. 여인은 꽤 나이가 들어 보인다. 노년을 애완견과 함께 보내고 있는 히피 여인,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실례가 될 것 같아 물어보는 것을 포기한다.

특별히 할 일이 없다. 그러나 하루를 끝내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문득, 님빈을 상징하는 바위가 생각났다. 흔히 님빈 바위라고 부른다. 따라서 님빈을 소개하는 그림이나 사진에 자주 나오는 바위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상점에도 바위 그림이 걸려있었다. 대충 방향만 잡고 바위를 찾아 나선다.

얼마 가지 않아 멀리 바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좁은 도로를 따라 바위 근처로 계속 운전한다. 그러나 도로는 끊기고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앞을 막고 있다. 집 입구에 안내문이 크게 적혀 있다. 이곳에서는 바위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안내문이다. 바위를 찾아 이곳에서 멈춘 사람이 나뿐만이 아님을 확인한다.
 
님빈을 대표하는 바위, 흔히 님빈 바위라고 불린다.
 님빈을 대표하는 바위, 흔히 님빈 바위라고 불린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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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 보면 길을 잃을 때가 많다. 그러나 길을 잃었기에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후에는 길을 잃었던 기억이 오래 남는다.

삶을 여행이라고 한다. 나의 삶도 길을 잃어 고생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꼭 부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이 아니다. 길을 잃었기에 더 나아진 삶이 꾸려지기도 했다.

요즈음 퇴직한 삶을 보내고 있다. 직장 생활과 달리 하루하루를 내가 설계하고 일궈 나가야 한다. 길을 잃을 가능성이 한결 높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길을 잃는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님빈에는 화장실도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다.
 님빈에는 화장실도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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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호주, #님빈, #NIM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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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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