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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겁니다."

지난 2015년 EBS 지식 채널 e <사랑해 지선아>에서 희극인 박지선은 위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5년 후 그녀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로 희망과 웃음을 주었던 그녀였기에 동료 연예인은 물론 많은 이들이 그녀의 부고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김없이 그녀의 부고 기사에도 악플이 달렸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댓글은 '자살은 남겨질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비난이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을 떠난 자의 고통보다는 이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의 고통에 마음을 쓰는 걸까. 

부고 기사 후에는 어김없이 자살 생존자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자살 생존자(Suicide Survival)란, 자살에 실패해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닌 사회적 관계 안에서 자살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자살 생존자다.

'하지 않아야' 겨우 살 수 있던 시간 

지난 2009년 나는 직접 쇼핑몰을 운영하며 모델일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외모가 곧 자산이었던 시절이었기에, 관리를 위해 피부과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강남의 유명한 피부과 병원장이었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왜 하필 내 앞에서 떨어져야만 했는지 나는 하느님에게 묻고 또 물어야 했다.

레이저가 닿은 얼굴에는 다음날부터 진물이 흘러 붓기 시작했다. 병원 측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을 부정했다. 법적 다툼 속에서 의료진의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파렴치한 태도를 접하며 나는 사지가 떨리는 증오와 분노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잘못한 것은 내가 아닌 저들인데, 그로 인한 고통과 피해는 왜 내가 겪어야 하는지 억울했다. 무엇보다 신앙인으로서 내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때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일이 죽기보다 싫었는데, 온종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경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탓에 차라리 전쟁이 나서 다 같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밤 떠올렸다. 그렇게 나는 꼬박 1년의 세월 동안 극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빛과 어둠을 활용하여 지은 일본 아키바라현에 위치한 '빛의 성당'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빛과 어둠을 활용하여 지은 일본 아키바라현에 위치한 "빛의 성당"
ⓒ 이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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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만 해도 흔히 문학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을 통한 '부활 체험' 또는 '구원 사건'이 무엇인지 나는 몰랐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내 슬픔을 끌어안고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린 채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는 것뿐이다.

나는 먹고, 자고, 씻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일조차 힘겹게 아주 간신히 해낼 수 있었다. 마음이 무너지면 그동안 쉽게 해내던 기본 행위조차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그 시절에 깨달았다. 

김금희 장편 소설 <경애의 마음>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그때 상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야' 겨우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p.43)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 우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경애 엄마는 경애가 씻는 것,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는, 누구나 하루에 한 번쯤은 귀찮아도 후다닥 해내는 그런 일마저도 너무 무거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남들에게는 자신을 방치하는 일이고 자신에게는 최선인 그런. (p.104)

"한 블록도 사람 살다 보면 한 블록이 아닐 수 있는 거예요. 일어나서 문밖으로 나오는 일이 무동력 에베레스트 등반 못지않게 힘든 일일 수가 있고요." (p.266)

그날도 어김없이 버려진 짐승처럼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이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은영아. 뭐해?" 친오빠가 방문을 열고 말을 걸어왔다. 그 순간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 짐승처럼 꺽꺽 소리 내며 오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발... 다가오지 마. 그냥 지금은 문 닫고 모른 척해줘.' 문틈 사이로 나를 바라보는 오빠를 등진 채 나는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까? 닫히는 문소리에도 내 마음이 부서질까 싶었는지 오빠는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실컷 슬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그의 태도에 나는 어둠 속에 슬픔을 게워냈다. 때론 다정한 무관심이 차가운 위로의 말보다 따뜻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마음껏 슬퍼할 시간이 필요했다.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의 <아무 말도 더하지 않고> 노래 가사처럼 그 순간에는 불을 밝혀 어둠을 헤쳐서는 안 된다. 환한 불빛만이 모든 슬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하며 건강한 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둠 속에서 마음껏 슬퍼할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애도의 시간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큰 용서와 자비는 내가 무엇보다 힘들게 괴롭힌 나에게 베푸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나의 어둠 속 고통까지도 사랑한다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랑의 지혜는 자신의 어둠 속에서 움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랑의 지혜는 자신의 어둠 속에서 움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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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 따르면 '온기'란 따뜻한 기운을 말한다. 사람들의 말처럼 이 세상에 온기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온기라는 것이 불을 켜거나, 곁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어둠이 겹쳐 짙어지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힘내지 않아도 된다고, 아직은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은 마음껏 울고 분노하고 슬퍼해도 된다고 말해줄 수 있는 이는 어둠을 겪어 본 자다.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랑의 지혜는 자신의 어둠 속에서 움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아픔을 통해서 타인의 아픔을 겨우 가늠할 수 있다.

나 역시 직접 자살 충동을 겪기 전까지는 자살하는 사람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 탓에 이전엔 가슴 아픈 선택을 한 망자를 향해 날 선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산 자들의 말처럼 자살을 미화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자살 생존자인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어루만지고자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마음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단지, 그 괴리감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괴로움에 죽음의 문을 여는 것뿐이다.

가톨릭 성경에는 이런 금언이 적혀있다. "그분의 자비가 모든 피조물에게 나타나고 그분께서 당신의 빛과 어둠을 아담에게 나누어 주셨다." (집회서, 16, 16)

어둠이 어둡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에 빛이 있어야 얼마나 어두운지 알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밝은지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물을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빛과 어둠이 함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삶에도 빛과 어둠이 필요하다. 자기 발끝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굳이 감추며 없애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그림자가 없는 인간은 귀신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빛과 어둠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때 인간은 비로소 성숙해진다. 자신의 슬픔을 방치하지 않고 보듬어 안아 다시 세상에 꺼내어 놓는 용기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과 비례한다.

나는 서로가 끌어안은 어둠이 겹쳐져 더 짙은 어둠이 되는 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으로 겨우 성장하고 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슬픔의 몫은 깊이 사랑하기 위한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드러내는 나의 그림자 이야기가 누군가의 어둠에 가닿아 짙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때 비로소 빛이 얼마나 밝은지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자기 자신으로 태어나고 싶다던 박지선씨의 평온한 안식을 위해 기도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은영 기자 브런치에도 함께 올라갈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yoconis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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