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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때 남편을 잃은 황점순(96) 할머니가 11월 20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형사재심사건' 무죄를 선고받은 뒤, 입원해 있는 창원마산 애양원에서 꽃다발을 받았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때 남편을 잃은 황점순(96) 할머니가 11월 20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형사재심사건" 무죄를 선고받은 뒤, 입원해 있는 창원마산 애양원에서 꽃다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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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볼 수 없다 아이가."
 
70년 전 잃은 남편이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황점순(96) 할머니가 한 말이다. 황 할머니는 20일 창원마산 애양원에서 소식을 들었다.
 
황 할머니를 비롯한 15명의 한국전쟁전후 국민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유족들은 이날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제1형사부에서 형사재심사건 무죄를 선고 받았다.
 
국민보도연맹 학살 피해자들은 당시 정당한 재판 절차 없이 국군 등에 의해 죽었다. 유족들이 '국방경비법' 형사재심신청한 지 6~7년 만에 무죄 선고가 났다. 지난 6일 결심공판 때 검사도 '무죄'를 구형했다.
 
▲ 억울하게 떠난 남편... 70년 만에 부인이 대신 '무죄' 받아냈다 황점순 할머니를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 15명이 법원에 낸 '국방경비법 위반' 재심사건과 관련해 20일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제1형사부(류기인·황정언·정수미 판사)가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선고는 학살된 지 70년, 재심신청한 지 6~7년만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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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마산 진전면 곡안리에 살았던 황점순 할머니는 5년 전 건강 악화로 애양원에서 지내고 있다. 황 할머니는 남편(이용순)을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잃었고, 당시 두 아들은 미군 폭격에 의해 하늘로 보냈다.
 
황 할머니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70년을 혼자 살아왔다. 무죄 선고 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과 정부권 창원시 특보가 꽃다발을 들고 황 할머니를 찾아갔다.
 
김 고문은 할머니한테 꽃다발을 전달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정 특보는 허성무 시장을 대신해 꽃다발을 전달했다.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원장 이성미)은 입구에 "황점순님의 남편 고 이용순님 70년만의 무죄 판결"이라고 쓴 펼침막을 걸어두기도 했다.
 
황 할머니는 처음에 '무죄' 판결 소식을 전하자 무표정했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카 등이 귀에 대고 '무죄' 소식을 알리자 알아들은 듯 짧게나마 말을 내뱉었다. 이어 황 할머니 입에서 나온 말은 "(그래도) 볼 수 없다 아이가", "오래 됐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노"였다.
 
김영만 고문은 "1999년으로 기억한다. 황 할머니 댁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밤에 잠을 자다가 마당에 있는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딩구는 소리만 들어도 남편 발자국 소리인가 하고 문을 열어 본다'고 하더라"며 "70년 동안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사셨던 할머니"라고 했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때 남편을 잃은 황점순(96) 할머니가 11월 20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형사재심사건' 무죄를 선고받은 뒤, 입원해 있는 창원마산 애양원에서 꽃다발을 받았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때 남편을 잃은 황점순(96) 할머니가 11월 20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형사재심사건" 무죄를 선고받은 뒤, 입원해 있는 창원마산 애양원에서 꽃다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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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때 남편을 잃은 황점순(96) 할머니가 11월 20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형사재심사건' 무죄를 선고받은 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이 입원해 있는 창원마산 애양원을 찾아 꽃다발을 전달했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때 남편을 잃은 황점순(96) 할머니가 11월 20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형사재심사건" 무죄를 선고받은 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이 입원해 있는 창원마산 애양원을 찾아 꽃다발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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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때 남편을 잃은 황점순(96) 할머니가 11월 20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형사재심사건' 무죄를 선고받은 뒤, 입원해 있는 창원마산 애양원에서 꽃다발을 받았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때 남편을 잃은 황점순(96) 할머니가 11월 20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형사재심사건" 무죄를 선고받은 뒤, 입원해 있는 창원마산 애양원에서 꽃다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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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70년 세월을 기다려"
 
이날 법정에는 많은 유족들이 나왔고, 의자가 모자라 서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재판장 류기인 판사가 '무죄' 선고를 했지만 법정에는 침묵만 흘렀다.
 
선고 이후 창원지법 마산지원 마당에서는 경남유족회, 열린사회희망연대, 민주노총 경남본부, 경남진보연합 등 단체들이 '무죄 판결 환영'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심재규 창원유족회 감사는 "그동안 우리 유족들은 엄청난 애로, 한탄, 슬픔이 있었다. '무죄'라는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70년 세월을 기다렸다. 참 억울하다"며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는 마음이 조금 풀린다. 유족은 다 같이 비참한 생활을 겪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나. 판사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유족을 대신해 변론했던 박미혜 변호사는 "유족께 축하드린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재심신청한 지 6~7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며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지만, 이것을 듣기 위해 모두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재심신청은 당시 재판 기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국가가 저지른 학살에 대해 국가 스스로 풀어야 한다"며 "민간인 학살의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어야 한다.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경남유족회 등 단체들은 "재판 기록이 있는 피해자만이 재심신청이 가능한 현실에 주목한다"며 "당시 대부분의 국민보도연맹원은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산골짜기로 끌려가 학살되거나 바다에서 수장되었다"고 했다.
 
이들은 "이승만 정부의 빨갱이 몰이로 독립운공가에서 젖먹이까지 학살 당한 이들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을 정부가 내놓을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피해자 15명에 대해 11월 20일 창워지방법원 마산지원애서 형사재심 무죄 선고 뒤, 유족인 이귀순(91)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피해자 15명에 대해 11월 20일 창워지방법원 마산지원애서 형사재심 무죄 선고 뒤, 유족인 이귀순(91)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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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피해자 15명에 대해 11월 20일 창워지방법원 마산지원애서 형사재심 무죄 선고 뒤,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피해자 15명에 대해 11월 20일 창워지방법원 마산지원애서 형사재심 무죄 선고 뒤,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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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한을 가슴에 안고 살아오신 어머니"
 
황점순 할머니와 같은 곡안리 출신인 이귀순(91)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왔다. 이 할머니의 딸은 "어머니는 이전에 맨날 하신 말씀이 있다. '소 먹이러 간 양반이 집을 모르나 우리가 이사를 갔나, 왜 안 오노'라고 하시더라"고 했다.
 
아버지를 잃은 김정임(80) 할머니는 아들 딸과 함께 참석했다. 김 할머니의 아들인 최병환(경남유족회)씨는 "평생의 한을 가슴에 안고 살아오신 어머니다"며 "재심을 청구한 지 6년 반 만에, 70년 전 재판을 다시 받을 수 있었다. 현명한 판결을 해주신 재판장과 무죄를 구형한 검사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는 "저는 외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외가 쪽의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고 살아왔다"며 "왜냐하면 물어도 어머니께서 말씀을 해주시지 않고 대충 얼버무리셨다. 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도 너무나 힘들어 하셨다"고 했다.
 
이어 "제 기억으로는 어머니는 젊었을 때 무척 야위고, 몸이 좋지 않아 늘 약을 드시고 힘들어 하셨다. 외할아버지 일이 그렇게 되고 얼마 후 외할머니도 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어머니도 그 충격으로 신체적 성장이 더디고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늘 몸이 좋지 않으셨고, 저는 한참 후 어른이 되어서야 할아버지의 충격적으로 그러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최병환씨는 "늦었지만 이제는 죄책감과 열등감을 다 버리고 남은 여생 그렇게 사셨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한을 풀어드리게 되었고, 저는 장남으로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는 법정에 가시는 날에 집으로 돌아올 때면 옛 고향 동네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칼국수 드시는 걸 좋아하셨다. 고향 땅을 잠시 밟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10살 그때의 소녀로 잠깐 추억 속에 잠기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고 했다.
 
창원지법 마산지원에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재심사건에서 무죄 선고가 나기는 지난 2월, 노치수 경남유족회 회장의 부친을 비롯한 5명에 이어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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