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건강한 몸을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조국에 충실한 자가 되기 어렵고, 좋은 아버지, 좋은 아들, 좋은 이웃이 되기 어렵다. - 페스탈로찌 

나는 늘 아프다. 내 몸이 감옥 같다. 나는 내 몸에서 징역살이를 하고 있다. 가석방도 없는 종신형의 형벌이다. 이 몸뚱이에서 석방될 방법이 없다. 처음부터 타고난 약골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병원 투어의 시작은 두 번째 직장 즈음일까.

학원 강사였는데 천성이 말소리가 크고 목 관리에 소홀하니 목감기를 달고 다녔다. 그 후로도 꾸준히 성실하게 아픈 덕에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저체질에 저체력의 아이콘이 돼 있었다. 게다가 코로나가 창궐하여 생명과 생존에 집중하는 정도가 더 예민해졌다. 우리들에겐 전쟁이다. 

봄과 가을은 환절기라서, 여름은 에어컨 때문에, 겨울은 찬 공기 때문에 다 각각 합리적인 원인으로 감기를 달고 산다. 내 조국은 아름다운 금수강산, 사계절이 뚜렷한 살기 좋은 대한민국. 금수강산이 아름다운 건 동의하나 사계절이 살기 좋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 동의하기 힘들다.
 
꾸준히 성실하게 아픈 덕에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저체질에 저체력의 아이콘이 돼 있었다.
▲ 나의 비상약상자 꾸준히 성실하게 아픈 덕에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저체질에 저체력의 아이콘이 돼 있었다.
ⓒ 황승희

관련사진보기

 
내 사전에 제일 싫은 말 세 가지를 꼽으라면 첫째 '감기', 둘째 '야근', 셋째 '감기 걸린 날 야근'이다. 자발적 조기 은퇴와 함께 '야근'은 내 사전에서 동반 퇴사했고 이제 감기를 강퇴시키자. 내 감기의 의학적 명칭은 아마 '상열하한증을 동반한 환절기성 찬 공기 알레르기에 따른 만성 비염 갱년기 감기' 정도 되시겠다. 나만 아는 병. 나니까 아는 병. 신상 몸을 쿠팡에서 부위별로 구매하여 교체하고 그런 거, 하고 싶다.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새 몸 새 세상. 아 생각만 해도 이두박근, 삼두박근, 승모근이 돌림 노래하듯이 돌아가며 불끈불끈한다. 아픈 데가 싹 고쳐져서 나오는 캡슐인가 머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아이고,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게야. 좌우지간, 불가능한 꿈을 상상해본다. 

그래, 어르고 달래서 잘 고쳐 써야지. 나름 건강했을 때는 버킷리스트 마지막 번호에 장기 기증과 시체 기증을 적었다. 아직 실천한 것도 아니지만 보람되고 뿌듯했다. 지금 마음도 변함은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아팠다가는 머 하나 남겠나 노파심이 안 들 수가 없다. 왜냐면 내 병에는 관성과 가속도의 법칙이 작동하니까. 필요한 사람에게 머라도 꼭 주고 싶은데 쓸 만한 게 마땅히 없으면 어쩐다? 죽는 날에는 민망해서 눈감고 죽은 척하고 있어야겠다. 

사실은 이 사회가 허락한다면 기증보다는 풍장이 더 내 취향이다. 생의 마침표로 그만한 세리머니가 없지. 아름다운 에코시스템, 대자연의 착한 순환. 어쨌거나 바람 끝에 벚꽃 묻어나는 어느 날에, 나는 풍장이 하고 싶다. 이 글을 마치고 어제처럼 불면증이 찾아오면 난 국민청원을 하리다. '나에게 풍장을 허하라'

직장 생활에서도 아프다는 건 여간 눈치 보이는 게 아니었다. 자기 관리 못하는 직원으로 찍힐까 봐 신경이 쓰였다. 직장이란 곳이 본래 업무평가라고 쓰고 이미지 평가라고 읽는 곳이 아닌가.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는 군사정권 경제 개발하듯이 야근했고 내 한몫 이상의 일 처리를 해냈다.

마치 '한강의 기적' 같은 내 병의 눈부신 발전과 성장에는 야근의 공로가 지대하다. 밤에도 일을 하게 해 주신 에디슨 형님은 후손 야근인들의 원망을 그 어찌 다 감당하고 계실꼬? "또 야근?" 보다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또 아파?" "아직도 아파?" 였다. 대체 이 감기는 지난주 그 감기인가 아니면 다 낫고 다시 걸린 새 감기인가? 됐고 제발 신경 꺼주길 바란다.

입사 후 첫 연차 휴가를 쓸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얼마나 분위기를 봐가며 알아서 미루다 미뤘겠나. 아,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시길. 결코 아플 때마다 휴가를 그렇게 노상 쓰지 않는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지 않는다는 것과 하루 쉰다고 결코 낫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학습효과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출근하는 것이 더 효용이 있다. 하지만 그날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죽겠는 날이었다.

 "낼 쉰다고?"
 "넵. 대리님"
 "왜?"
 "넵. 제가 몸이 안좋아서요"
 "덩치는 소도 때려잡겠는데"
 "넵. 그게…… 그러니까……"


대리님의 마지막 말씀은 혼자말인 듯 혼자말 아닌 혼자말 같은 말씀이셨다. 이 언어폭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직장 갑질인가? 외모 비하인가? 성희롱인가? 동물 비하인가? 나한테 때려 잡힐 운명의 그 소는 또 무슨 죄란 말인가? 그냥 잡는 게 아니라 '때려' 잡는다는 그 친절한 디테일에 나는 그만 사무실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아래로 한없이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4대 중증 질환이라던가 불치병이라던가 하는 분들이 보기엔 내 끙끙거림이 얼마나 엄살로 보일까도 알겠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 친구는 회사 다니면서 남편 건사하며 자식 키우고 가사노동 전담에 불편한 친정 엄마 병시중, 그러면서 야간대학교도 졸업했다. 게다가 블로그도 열심히 한다. 미스테리한 것은 이 친구는 살아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란 사실이다.

나는 고작 내 한 몸 고되기만으로도 시시포스의 형벌인데 친구는 대체 그 많은 걸 어떻게 해내는 걸까? 그 바쁜 와중에 손오공의 분신술까지 터득하다니. 대체 그 학원은 어디 있는 거지? 출근할 직장에다 딸린 식솔도 없는 내가 어지간히도 한심해 보일 것이다. 허나 어쩌랴, 남의 중병보다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더 아픈 것을.

밖을 나와도 아프고 들어가도 아프다. 집에서 노상 누워 있자면 드는 생각이 "이래저래 아프긴 마찬가지이니 어차피 아픈 거 돌아다니기라도 하자" 하고 적극 외출도 해본다. 시동 걸고 출발해서 첫 신호등 아래 쯤이면 어김없이 홍수나는 땀에 바로 후회한다. 본디 갱년기란 스스로 그런 것. 에효, 집 놔두고 왜 나와서 고생이람. 그래도 엑셀은 밟으라고 있는 법, 렛츠 고~.

외출해서 만나게 되는 내 조국 대한민국 시민들은 내 옷차림으로 인사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렇게 춰요?" "얼어 죽네" 내 몸이 '나'이고 내가 곧 '내 몸'이라는 명제를 나 자신도 인정하기 껄적지근하지만 타인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다. 나는 입 앙 다물고 각양각색의 톤으로 하는 같은 말을 들어야 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생'生은 반 세기 전에 완벽하게 모친의 죽을 힘 덕분에 임무 완수했고, 지금 나는 '사'死로 내달리는 '노병老病열차'에 타고 있다. 멈추지 않는 열차이고 내가 좀 이르게 승차했나 보다. 괜찮다. 생명의 이유는 그저, 살려고 왔고 살았으면 지는 것이니까.

행복하려는 계획이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듯이 건강하려는 내 욕망이 내 병을 돋는 거라며 맥락 없이 갖다 붙여보기도 해 본다. 그냥 이 생에선 애쓰지 말자라고도 해본다. 혹시 알아? 포기하면 선물처럼 건강이란 택배가 문 앞에 와 있을지. '내려놓음'이라는 놈에게 과하게 바라보는 것도 굳이 안 할 필요가 없다.

오늘도 으슬으슬한 몸과 더 말똥말똥해지는 정신이 서로 화해하지 못하는 새벽이다. 이불을 끌어 잡아당기고 나는 티벳 싱잉 볼 연주를 들으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해보련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환절기, #감기, #비염, #갱년기, #코로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산에서 두 마리 고양이 집사입니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부모님과 밭농사일을 하고 글쓰기를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