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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을 우리는 보통 "광복절"이라 부른다. 광복절은 '빛을 되찾은 날'이라는 뜻의 매우 비유적 이름이다. 대한민국 역사에 해가 없어져 오랫동안 암흑천지였던 시대가 있었던가? 과학적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이름붙임이다.
 
2007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密陽)〉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서양에서 〈밀양〉은 〈Secret Sunshin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당시 서양인들은 〈Secret Sunshine〉이라는 제목에 상당한 호기심을 느낀 것으로 알려진다. "광복절"이라는 이름도 〈Secret Sunshine〉만큼이나 외국인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Korean independence Day라는 광복절의 영어 표기에는 '빛을 되찾는다'라는 의미가 전혀 없다.
 
서양인들은 密陽을 Secret Sunshine으로 알았다
 
경남 밀양의 삼국 시대 이름은 추화였다. <삼국사기>에는 757년에 경덕왕이 추화를 밀성으로 바꾼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밀성이 뒤에 밀양으로 또 바뀌었다.
 
추화(推火)는 우리말로 '밀벌'이다. 推는 '밀 추'다. 경덕왕은 밀다의 '밀'을 한자 推로 바꿔 적었다. 火는 벌판의 '벌'이다. 대구의 옛날 이름 "달구벌"는 한자 표기로 "達句火"였다. 즉 밀양의 密은 Secret과 전혀 무관하다. 그러나 밀양의 지명 유래를 알 리 없는 서양인들은 密陽을 Secret Sunshine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 이하 참석자들이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청와대 누리집 사진)
 문재인 대통령 이하 참석자들이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청와대 누리집 사진)
ⓒ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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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은 〈Secret Sunshine〉과도 경우가 다르다. 영화 〈Secret Sunshine〉은 예술이다. 비유와 상징은 예술이 가진 속성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감상자의 마음속에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에 비해 광복절은 후대인들이 그날을 기념하는 까닭을 간결하게 설명해주어야 마땅한 사회과학 용어다. 빛을 되찾을 날? 외국인만이 아니라 후대 젊은이들과 어린이들도 무슨 날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광복절과 'Korean independence Day'는 그 뜻이 다르다
 
필자는 여러 이유에서 광복절을 '독립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문학적 표현인 광복절은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난해한 이름이다. 둘째, '절'은 문화적 사대주의가 낳은 개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거의 매주 국가 기념일이 있다. 2·28민주운동 기념일, 4·3희생자 추념일, 4월 5일 식목일,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 4·19혁명 기념일, 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5월 5일 어린이날, 5월 8일 어버이날, 5월 11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5월 21일 부부의 날, 6월 1일 의병의 날, 6월 6일 현충일, 6·10민주항쟁 기념일, 6·25전쟁일….
 
광복절과 달리 이들 기념일 중에는 '절'이 붙은 이름이 없다. '날' 아니면 '일'이다. 3·1절, 7월 17일 제헌절, 8월 15일 광복절, 10월 3일 개천절… 절은 기념일보다 윗길인 국경일에만 사용되는 날짜 개념이다(한글날만 예외로 '날'이다).
 
매우 대단한 날은 '절(節)', 그보다 못한 날은 '일' 또는 '날'
 
'절(節)'은 대략 기념일을 뜻하는 한자다. 그런데 일반 기념일에는 붙이지 않고 국경일에만 사용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필자는 그것을 문화적 사대주의의 사례로 본다. 순수 한국말 "알몸"은 가장 낮은 수준의, 한자어 "나체"는 보통 수준의, 서양어 "누드"는 예술 수준의 벗은 몸을 가리키는 한국말의 삼중구조, 즉 문화적 사대주의의 발로가 일반 기념일에는 '날'이나 '일'을 붙이고 국경일에는 '절'을 붙인 결과로 나타났다고 본다. 그런 이유에서도 광복절은 독립일로 바뀌어야 한다.
 
셋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을 소위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역사 왜곡론자들의 잘못을 물리치기 위해서도 광복절은 이름이 바뀌어야 한다. 건국절 주장자들은 마음속에 1945년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일 뿐 아직 정부가 세워지지 못했으므로 진정한 독립을 맞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1948년 8월 15일의 이승만 대통령 취임일을 나라를 세운 기념일로 옹립하고 싶을 뿐이다.
 
2014년 7월 4일 대구 미군부대에서 하늘로 쏘아올린 '미국 독립일 축포"
 2014년 7월 4일 대구 미군부대에서 하늘로 쏘아올린 "미국 독립일 축포"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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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8년 전쟁 끝에 1783년 9월 3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미국은 9월 3일이 아니라 독립선언서 발표일인 1776년 7월 4일을 "Independence day", 즉 '독립일'로 기린다. 이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지정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이들도 번연히 아는 사실이다. 다만 자신들의 주장과 배치되는 까닭에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물론 미국의 경우와 한국은 다르다. 미국 독립군은 국내에서 전투했다. 한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공식 군대인 '광복군'을 1940년 9월 7일에야 창군했다. 그동안 광복회, 의열단, 한인 애국단 등이 일제에 맞서 무장 투쟁을 했다. 한국이 미국처럼 1919년 3월 1일이나 같은 해 4월 11일을 독립일로 지정하기에는 무리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은 더더욱 아니다. 결론을 말하면, 3월 1일 또는 4월 11일을 독립일로 정하기는 어려우니 1945년 8월 15일을 독립일로 기려야 한다. 같은 뜻에서, 1919년 4월 11일을 계속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로 둔다면,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 부르면 무난하다.
 
그들이 바랐던 건 독립... 그러니 '독립일'로 바꿔야 바람직하다
 
이제 '독립일'과 '독립 기념일' 중 어느 이름이 타당한가를 논의할 차례다. 일반 기념일들을 보면 일관성이 없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6·25전쟁일에는 '기념'이 없는 반면, 4·19혁명 기념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6·10민주항쟁 기념일에는 '기념'이 있다.
 
6·25전쟁일에 '기념'이 없는 것은 전쟁은 '기념'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의 결과로 보인다. 즉 기념을 하고, 하지 않고는 특정 시기 후대인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판단된다. 하지만 6·25전쟁만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의 기념비적 사건들은 특정 시기 후대인들의 판단 결과와 상관없이 엄연히 역사로 존재해 왔다. 후대인들이 주체가 되는 '독립 기념일'보다 '독립일'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그날이 3월 1일이든, 4월 11일이든, 8월 15일이든 독립의 역사를 만들어낸 주체는 일제에 맞서 목숨을 버리고 재산을 빼앗긴 당대 사람들이다. 그들이 혹독한 희생 끝에 맞이하고자 했던 것은 '독립'이지 '독립 기념일'이 아니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4·19혁명 기념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6·10민주항쟁 기념일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6·25전쟁일처럼 4·19혁명일, 동학농민혁명일, 5·18민주화운동일, 6·10민주항쟁일로 바뀌어야 한다.

태그:#광복절, #독립일, #밀양, #SECRET SUNSHINE, #8월15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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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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