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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초등학교 앞, 셔터가 내려간 문구점
 동신초등학교 앞, 셔터가 내려간 문구점
ⓒ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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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4일 오후 1시 동신초등학교 앞 골목. 평소라면 1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텅 빈 학교 앞 골목 횡단보도는 중간에 하얀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고 어린이 보호구역 글자는 흐릿하게 지워져 있다.

골목 안에 보이는 '맛있게 먹고 빵빵하게'라는 이름의 분식점은 에어컨 실외기 위에 음식물 쓰레기통과 김치통 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앞 가득 찬 쓰레기통과 쓰레받기에 뿌연 먼지가 쌓였다. 분식점 옆 빈 가게 문에는 임대를 알리는 흰 종이가 붙여있었다. 색이 바랜 간판으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문구점은 녹슨 철문이 내려져 있었고 7개의 뽑기 기계가 세워져 있었다.

아산 시내 초등학교 중 가장 큰 운동장을 갖고 있는 온양온천초등학교도 운동장은 텅 비어 있고 학교 앞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교문에서 15미터 거리의 온천 분식은 철문이 내려져 있었고 그 밑에 양념 소스 상자들만 쌓여있었다. 근처 온천 튀김도 닫힌 유리창문 너머 가지런히 정리된 테이블과 의자만 보일 뿐 주인도 손님도 없었다.
 
사람 하나 없는 온양온천초등학교 운동장
 사람 하나 없는 온양온천초등학교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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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아산 시내 9개 초중고교가 모두 문을 닫으면서 학교 앞 상점들이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학교 앞 가게 20개 중 14개가 문을 닫았고 문을 연 6개마저도 1개를 제외하고는 매출이 작년보다 95% 이상 줄었다.

"한 명도 없어. 아직도 한 명도 없어. 아예 0명이야. 코로나 이후에는 단 한 명도 없어."

지난 4월 27일 낮 12시, 아산고등학교 주변에서 분식집 '데이트스낵'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씨(50)는 매출이 없어 2개월이나 가게세도 내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들여놓은 식재료의 유통기한도 며칠 남지 않았고 '코로나 특별 소상공인 대출' 신청도 거절당해 이씨의 한숨은 더욱 늘어졌다.

이씨는 "감염된 사람이 왔다 갔거나 내가 감염되는 등 코로나가 가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게 없다고 해서 떨어졌어. 희망 자체가 없네"라고 말했다.

데이트 스낵 옆에서 분식집 '만나김밥'을 운영하는 신 아무개(47)씨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소상공인 지원금을 받지 못해 지인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 신씨는 "카드기도 없고 부가세 신고 밖에 안 했더니 시청에서 혜택이 없다고 하네. 다른 대출을 신청해도 조건이 안 된대. 겨울방학 이후로 장사를 쭉 쉬고 있어"라고 말했다.
 
온양중앙초등학교 앞, 문 닫은 분식 떡볶이
 온양중앙초등학교 앞, 문 닫은 분식 떡볶이
ⓒ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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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낮 12시 아산시 용화동에 있는 온양중학교 앞 '온중문구·슈퍼'에서는 때 아닌 트로트 가락이 흘러 나왔다. TV에서 <미스터 트롯> 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오아무개(60)씨는 인기척에 놀라 급하게 TV볼륨을 줄였다.

오씨는 "코로나 사태 이후 손님이 없어 TV 보는 시간이 늘었다. 채널번호를 외울 정도"라고 말했다. 오씨는 "솔직히 뭔가 억울하고 화가 났다"며 "갑자기 날벼락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가게 앞 50m 거리에 있는 '노벨문구슈퍼'도 상황은 비슷했다.

10년 넘게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유아무개(60)씨는 "코로나 사태 전에 비해 매출이 20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집에서 놀고 있기 싫으니까 문을 열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유씨는 코로나 사태 전에는 손님이 비교적 없는 오전 10시나 오후 1시에만 휴대폰으로 하던 '모바일 맞고' 게임을 지금은 하루 종일 하고 있다. "진짜 이걸로는 돈 잘 벌어"라고 유씨는 말했다.

유씨는 학교 문구점은 3월에 장사를 시작하는데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이 늘어나고 학교가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손님이 없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한 3월 중순 쯤에는 진짜 막막했다. 일단 최대한 돈을 아끼고 최대한 밖에 안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온양온천초 앞에서 유일하게 가게문을 연 온천문구할인매장 맹아무개(59)씨는 "가게 문을 계속 열어놓고 있어도 손님이 전혀 없어서 장사하는 게 재미가 없다"며 "하루라도 빨리 개학했으면 좋겠다. 상황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는데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온양온천초등학교 앞, 손님이 없는데도 문을 활짝 열어둔 온천문구할인매장
 온양온천초등학교 앞, 손님이 없는데도 문을 활짝 열어둔 온천문구할인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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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매출이 거의 없어지면서 가게 주인들의 생활도 빠듯해졌다.

노벨문구슈퍼 유 씨는 가족들이 일주일에 두 번 먹는 치킨은 한 마리 2만 원짜리 프렌차이즈 치킨에서 6천 원짜리 집근처 옛날 통닭으로 바꿨다. 평소에는 집에서 가까운 시장이나 식자재 마트에서 보던 장도 집에서 멀지만 싼 마트로 옮겼다. 은행이나 시내에 갈 때 타던 버스도 이제 장볼 때 말고는 타지 않는다.

한올고 후문 앞 '이모네집' 사장 박아무개(53)씨는 지난 3월과 4월 가게 문을 닫고 집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스마트폰으로 무협지를 보기 위해 가격이 비싸 끊었던 '미스터 블루'를 다시 구독했다. TV는 정액제를 신청해 이전에 봤던 도깨비나 미스터 선샤인 같은 드라마를 다시 봤다.

대학생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전보다 늘어나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대화도 많아졌다. 딸이 듣는 수업이나 친구, 취미 등을 알게 되면서 전보다 사이가 좋아졌다.
 
외부인 출입 통제 현수막이 걸린 한올고등학교 교문
 외부인 출입 통제 현수막이 걸린 한올고등학교 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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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주변에 사는 학생들도 학교가 문을 닫아 일상생활이 바뀌었다.

온양중학교 2학년 주아무개(13)군은 "요즘 너무 갑갑해서 더 자주 나오고 싶다"며 "나가고는 싶은데 엄마가 계속 못 나가게 해요. 그나마 주말에 잠깐 2시간 정도만 나가게 해준다"고 말했다. "주로 PC방 가죠. 물론 마스크 쓰고 해요"라고 주군은 말했다.

일주일에 3~4번은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사 먹었다는 온양온천초등학교 4학년 김 아무개(11)군은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며 고개를 떨궜다. 학교가 단축수업을 하면서 점심식사 후 바로 집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순천향대학교 경영학과 홍성준 교수는 "학교 앞 가게들의 매출이 떨어지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학생 이외의 손님들이 찾을만한 특색 있는 상점이 아니라면 일반인이 방문할 리가 없다. 아이스크림 할인점 같은 가게가 특색이 명확해서 그나마 피해를 덜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0일, 고등학교 3학년을 시작으로 학교들이 단계적으로 개학하면서 상인들은 그나마 숨통이 틔는 모습이었다.

"요것도 좋아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오니까"

가게 문을 열어둔 채로 근처 미용실에 놀러갔던 만나김밥ㅇ 신씨는 가게에 손님이 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달려왔다. 신시는 "학생들이 그나마 나와서 아예 10원도 못 팔 때보다는 좋다"며 웃었다.

온천문구할인매장 맹씨는 "개학 전보다 매출이 20프로 정도 좋아졌지만 여전히 힘든 건 똑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여기는 시내권이라 다른 학교 중학생들이 가끔 오기 시작했다"고 덧붙었다.

온중문구슈퍼 오씨도 "여전히 힘들지만 지금이 전보다는 낫다. 전에는 1명도 안 왔는데 지금은 20명은 온다"고 했다. 오시는 "2학기에는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끝나 괜찮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영택, 유승민, 김영경 기자와 함께 작성했습니다.


태그:#학교 앞 상권, #문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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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이야기' 유승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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