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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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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겼다. 디 오차드 티 가든(The Orchard Tea Garden)은 전통적인 영국식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겉으로 보기엔 수수하고 조그만 건물이지만,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었다. 이곳은 영국의 내로라는 작가와 학자들이 즐겨찾아 이야기를 나눴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과거 영국에서 이름 꽤나 날렸던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이야기하던 곳"이라고 말했다.

조그만 통로를 지나 내부로 들어가보니, 한쪽 벽면에 주요 인사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해 소설가인 애드워드 포스터, 디에치 로렌스, 철학자인 버렌트 러셀, 아일랜드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조지 버나드쇼,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이다. 우리는 창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창 밖을 가리키면서 "날씨만 좋았다면, 저 가든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 좀전에 '이번 기회에 새로운 사회체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네요.
"어쩌면요. 우리나라가 가만 보면 엄청난 민족이거든요. 정말 자랑스러워할 것도 많고, 창피스러운 것도 많고…(웃음) <나쁜 사마리안>이라는 책 서문에도 썼지만, 제가 1963년에 태어났는데, 당시 우리 기대 수명이 52세였어요. 우리가 그대로 정체해 있었으면, 난 지금쯤 죽었어야죠.(다시 웃음)"

-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보면, 현대차가 처음 자동차를 만든 양이 2000대예요. 그나마 미국 포드에서 반완성품 형태로 수입해서 조립해 만들었던 것이 1968, 69년쯤이었을 겁니다. 그때 당시 누군가가 '앞으로 45년 후 (현대차가) 미국 제너럴모터스보다 차를 더 많이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면, 아마 정신병자 취급 당했을 거에요. 당시 지엠은 1년에 450만 대를 만들던 시대였으니까. 당시 한국 현대차는 회사도 아니었죠. 근데 45년만에 뒤집었잖아요. 영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텔레비전 값이 일본 소니가 가장 비싸고 좋았지만, 지금은 삼성과 엘지 가전이 가장 비싸고 품질도 좋잖아요."

- 창피스러운 것들은요.
"(웃으면서) 그것도 많죠.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남녀 임금격차는 30% 정도인가요? OECD 국가중 단연 1등이에요. 자살률 최고, 출산률 사상 최저… 젊은이들은 '헬(Hell) 조선'이라고 하잖아요. 전쟁을 거쳐서 고도성장,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한마디로 국가 디자인을 잘못한 거죠. 정말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있는 민족이거든요. 그런데 왜 '지옥'이라는 말이 나오게 됐냐는 거예요."

15년동안 복지국가를 떠들고 다니다

그는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이어 장 교수는 "그래서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사실 복지분야는 제 전공도 아니지만, 지난 15년동안 복지 이야기를 줄기차게 하고 다녔다"고 덧붙였다. 정말 그랬다. 기자가 장 교수를 처음 만났던 지난 2003년 이후 그와의 대화에서 '복지'라는 단어가 빠졌던 적은 거의 없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 가운데 "복지의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면서 복지 지출이 단순히 부담이나 비용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을 줄여주는 것"(관련기사 : "무상급식은 공짜가 아니라 보험 '공동구매'" - 2012년 인터뷰),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 무슨 대단한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관련 기사 : "복지 좀 누리자는 게 대단한 혁명인가? 기업들, 세금 안내려면 아프리카에 가라" - 2011년 인터뷰) 등이 떠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내놓은 복지공약을 두고는 "당선인 복지공약 뒤흔드는 사람들은 반역자"(2013년 인터뷰)라고도 했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정부는 출범 후 제대로 된 정책을 펴지도 못한 채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더 좌파적으로, 복지 획기적으로 늘려서 국민들 느끼게 해야한다"(2019년 인터뷰)고도 했다.

- 그동안 정권도 몇번 바뀌면서도 나름 복지예산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곧장) 아직도 멀었어요. 우리 복지지출이 국민소득 대비 10% 수준이에요. 신자유주의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남미의 칠레보다 낮아요. 정부가 세금을 걷고 복지로 지출하기 전에 국민 지니계수(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높을수록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가 0.34인데, 복지지출 이후에도 (지니계수가) 0.33으로 거의 그대로예요. 대부분 선진국들은 정부 지출 후 지니계수가 크게 떨어지는데…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소득재분배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거죠."

- 정부의 복지지출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군요.
"이게 문제가 뭐냐면, 소득 불평등을 시장 규제로만 (불평등) 정도를 낮게 유지해온 거예요. 물론 최근 10년 사이에 절대적인 소득 불평등은 낮은 편이지만, 불평등의 상승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아요. 얼마 전에 아카데미상 받은 영화 <기생충>이 딱 보여주잖아요. 그 가족 이야기가 우리 사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번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사회가 중요한 거고…"

"결국 시민권에 기반한 보편적 복지국가 밖에 없다"
 
 지난 18일 영국 런던 지하철 내부의 한 모습. 영국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발표이후 런던 시내의 유동 인구가 크게 줄었다.
 지난 18일 영국 런던 지하철 내부의 한 모습. 영국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발표 이후 런던 시내의 유동 인구가 크게 줄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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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전에 식당에서도 잠깐 말씀하셨는데요.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에 대해서.
"이번 코로나19로 우리 사회의 숨겨있는 것이 드러나는 계기가 될 거예요. 물론 정치적으로 한국이 과거보다 성숙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해요. 방역 과정에서의 통제능력이나 정보의 투명성, 모든 국민에 대한 검사와 치료 등 민주적 방식 등은 A학점 짜리죠. 반면에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사회경제지원 대책 등에선 비정규직이나 소상공인, 단기 파견노동자 등에 대해선 부족한 것도 사실이죠."

- 사회안전망, 복지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 등…
"결국 시민권에 기반한 보편적인 복지국가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일 공평해요. 약자로 규정된 사람들만 지원하게 되면, 그 규정된 사람들만 보호를 받고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은 소외되거나 또 어려워질 수도 있거든요. 좀더 사람답게 사는 사회, 공동체적인 사회를 만들어가야죠. 특히 바이러스나 재해 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기가 닥쳤을때, (복지국가 모델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훨씬 낫죠."

그는 미국의 비효율적 복지지출의 예를 들며 "한국이 이같은 미국 모델을 따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시 그의 말을 옮겨본다.

"미국이 공공복지 지출이 GDP 대비 19% 정도예요. OECD 평균 이하로 (지출이) 작은 나라인데, 개인들이 지출하는 복지, 예를 들어 의료나 사보험 등을 다 합치면 GDP 대비 (복지지출이) 33%나 돼요. 복지지출이 가장 높은 핀란드에 이어 두번째예요. 미국이 복지에 돈 안쓰는게 아니에요. 비효율적으로 쓰다 보니까 효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그대로 따라가고 있고…"

장 교수는 "그냥 개인 각자가 민간보험 등에 돈 들여가며 사느냐, 아니면 정부의 제도를 통해 함께 저축을 해서 의료서비스 등을 공동구매를 하느냐의 차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선 아직도 복지지출이라면 미국처럼 돈 많은 사람이 가난한 사람 도와주는 형식으로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민들이 사회복지 서비스를 공동구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부의 코로나 진단과 무상 치료가 의료보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죠.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가 국민의료보험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그동안 건강보험료를 꾸준히 저축을 하면서 공동구매로 이번처럼 의료비용을 낮춘 거죠. 무엇보다 모든 사람에게 검사와 치료를 해주잖아요. 특히 감염병은 빈부를 가려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니까, 결국 이것이 부자들에게도 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이에요. 모든 사람이 치료가 돼야 병이 퍼질 확률도 낮아지고 사망률도 줄고…"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도 기본소득 지지한다, 왜냐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소비심리를 금융위기 때 수준으로 추락시켰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2020년 3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한 달 전보다 18.5포인트 급락한 78.4를 나타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컸던 2009년 3월(72.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락폭 역시 소비심리를 매달 조사하기 시작한 2008년 7월 이후 최대다. 사진은 27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 2020.3.27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소비심리를 금융위기 때 수준으로 추락시켰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2020년 3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한 달 전보다 18.5포인트 급락한 78.4를 나타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컸던 2009년 3월(72.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락폭 역시 소비심리를 매달 조사하기 시작한 2008년 7월 이후 최대다. 사진은 27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 2020.3.27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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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위기 대응 과정에서 경기도 등 지자체 등에선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해서 국민들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원해주기로 했는데요. (정부도 최근 긴급재난지원금을 가구소득 70% 이하를 대상으로 4인 가구 기준으로 100만 원씩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기본소득은 다양하고, 방식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죠. 예를 들면 신자유주의의 대부라는 하이에크나 프리드먼이 기본소득 지지자에요. 이들 이야기는 일단 1만불이든 나눠주고, 그 돈에서 개인이 의료 등을 다 알아서 하라는 거예요. 별도의 복지 등은 없어요. 그런 기본소득은 반대예요."

- 우리나라 기본소득 이야기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미국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절대 좌파적인 기본소득이 아니예요. '그래, 너희도 사람이니까, 굶어죽지 않고 살 권리는 있는데, 그냥 얼마 줄테니까 자꾸 우리한테 더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는 메시지예요. 우리나라는 아직 기본적인 복지제도가 안돼 있기 때문에 자칫 섣불리 도입하면 사실상 그런(하이에크 등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 교수는 "기본소득을 아예 엄청 높게 책정해서 1억원씩이나 주면 모를까, 액수도 크지 않고, 젊은이들의 생활을 얼마나 향상시킬지 의문"이라며 "더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이) 자칫 복지제도 확대의 반대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가 우선 순위를 정해줘야 한다"면서 "과연 사회가 인간적인 삶을 살 만큼 돈을 줄 수 있을까?"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 곧 새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도 있는데요. 어떻게 보세요.
"(웃으면서) 정치평론가도 아니고…"

"새로운 세상 준비 위해, 복지국가 10년 계획 세우자"

- 코로나19로 이번 선거도 영향을 받을 것 같은데요.
"이번에 바이러스 대응하는 모습에서 민주주의 힘을 보여줬잖아요. 이미 우리는 세계 유례 없는 경제발전도 이뤘고, 수많은 시민들이 길거리에 나와 정권을 바꾸기도 했죠. 성숙된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그러한 국회를 만들어야겠죠. 국민들에게 희망, 비전을 줬으면 해요."

- 예를 들면?
"각 정당마다 이런 저런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복지국가계획 10년 플랜이라든지. 어떤 큰 그림을 국민에게 제시해주고, 이를 토대로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겠다는 비전과 실행계획 등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줬으면 해요."

그는 지난해 연말 영국 총선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도 했다. 야당인 노동당이 내놓은 개별 공약 자체는 국민들에게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텃밭인 영국 북부지역까지 내주며 사상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의 보수당은 오로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이슈로 노동당의 정책선거에 맞대응 했다.

장 교수는 "보수 여당의 브렉시트 선거 프레임과 가짜뉴스 등이 선거판을 좌우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은 진보성향의 <가디언>을 빼고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이 보수적 성향을 보였다"면서 "야당인 노동당 역시 많은 정책을 산발적으로 내놓다보니까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와의 이야기는 금세 3시간을 훌쩍 넘었다. 창밖의 분위기도 어느새 어둑해져 있었다. 그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어느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적인 감염병 대유행과 경제사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희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그의 소형차로 옮겼다. 퇴근 시간에 맞물려 케임브리지 주변도로는 차들로 붐볐다. '조만간 날씨가 따뜻해지면 다시 오차드 가든에서 차를 마시자'는 약속과 함께 우리는 헤어졌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영국 런던의 로크다운(봉쇄)은 아직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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