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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점에서 어슬렁어슬렁 책 구경을 하다가 한 책 제목에 눈길이 갔다. 책 제목은 <감염된 독서>였다. 요즘처럼 '감염'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 닿았던 적은 없었다. 책을 꺼내보니 현직 감염내과 의사가 쓴 책으로, 문학 속에 소재로 쓰인 감염병과 병에 관한 에세이였다. 때가 때인지라 가슴이 동하여 책을 구입했다.

사실, 병으로 인해 줄거리가 크게 바뀌거나 주인공의 운명이 바뀌지 않는 이상(이를테면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 '제인'의 백혈병 정도?) 대부분의 독자는 소설을 읽고난 뒤, 의사나 전공자가 아닌 이상, 병 자체에 대해 크게 기억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러한데, <감염된 독서>의 지은이는 직업이 직업인 만큼, 한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질병에 대한 역사와 당시 그 병이 사회와 구성원에 미친 영향, 현대 사회에서의 인식, 치료법 등을 전문지식을 동원하여 잘 설명해놓았다. 그렇다고해서 딱딱한 의학서는 아니다. 오히려 정말 의사가 썼나 싶을 만큼 문장력도 뛰어나고 감수성도 풍부하다.
 
 어느 감염내과 의사가 쓴 문학 속 '병' 이야기
 어느 감염내과 의사가 쓴 문학 속 "병" 이야기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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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 아니, 인류 역사 속에 참으로 많고 많은 병이 있구나'고 느꼈다. 이를테면, 폐병, 뇌막염, 매독, 장티푸스, 열사병, 옴, 독감, 말라리야, 천연두, 성홍열, 황달, 결핵... 등등. 누군가는 한번쯤 앓아보았거나 가족이나 지인 중 앓기도 했던 병일 것이다.

많고 많은 병명 중에 '결핵'이나 '폐병'은 과거의 병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말라리아나 열사병, 옴은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이다. 이 책에 나오는 병명 중에 '메르스'와 '사스'까지는 있지만 '코로나19'는 없다. 책이 쓰여진 시기가 2018년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바이러스는 무궁무진하다

이 책에는 지은이가 읽은 문학 작품 약 50편을 소개했다. 그 중 2015년 메르스 사태를 떠올리며 읽은 책도 있다. 책 제목은 <굿모닝 버마>이다. <굿모닝 버마>는 '기 들릴'이라는 유럽 만화가가 국경없는 의사회에 일하는 아내를 따라 미얀마에 머물 때의 경험을 그린 만화다. 그 작품 속에서 당시 '기 들릴'이 있었던 동남아에 조류인플루엔자가 돌았던 상황이 소개된다.

지은이의 전공이 감염내과다 보니, 조류인플루엔자를 소재로 다룬 이 책에 무척 많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굿모닝 버마> 책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 뒤, 지은이는 그 책에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본다.

감염내과로 첫 발을 떼었을 때 주변에 쏟아지던 '감염'의 걱정들과 우려. 나름 바이러스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얼마나 '하늘로 손바닥 가리기'처럼 무모했는지를 깨달았다는 고백이다. 즉, 세상은 넓고 바이러스는 무궁무진하더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감염내과 의사라고 뭐 달리 걱정할 건 없노라 여기고 10여 년을 지냈는데 제가 굴린 잔머리가 얼마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었던지. 2002년 사스가 오고, 2005년 조류인플루엔자가 뜨는 바람에 신종 감염병의 첨병으로 백신도 없을 뿐더러 약은 있을락 말락 한 상황을 남보다 먼저 맞아야 하는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약 없는 사스에 지정의사가 되라는 문서를 받았을 때는 불현 듯 과거 그 완벽해 보였던 검토에서 실은 신종감염병이 빠져있었음을 깨달았고, 제가 수천 쪽의 책장을 넘겼어도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위였음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지요. 운명은 늘 생각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p.80~81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뛰어봤자 벼룩이고 달아나봤자 병원 안임을, 의사 노릇을 그만두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으므로 두 손 들고 항복, 오면 부딪히리라 생각'한다고 적었다.

약도 없고, 아무런 백신도 없이 무작정 앞에 서서 모두를 보호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던 일. 어쩌면 감염내과 의사로서, 한 사람의 의료인으로서 비장하고도 결연한 마음이 앞장섰으리라.

약도 없이, 백신도 없이, 최전방에서 뛰는 의료진들  

이 부분을 읽을 때에는 우리나라의 의료진들이 떠올랐다. 환자도 물론 환자 나름대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지만, '약도 없고 백신도 없이' 오로지 마스크와 방역복에 의지해 일선 최전방을 지키는 의료진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그들이야말로 헌신과 숭고함 그 자체가 아닐까.

지은이가 책의 서문에 인용한, 노벨문학상 작가 '가오싱젠'의  말이 인상깊다. "문학은 인간 곤경의 기록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이 시간 어딘가에서도 '문학적인 순간'은 탄생하고 있을지 모른다. 병과 싸우는 사람, 병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 병을 수긍하는 사람, 또한 병을 이용하는 사람... 그들이 만들어 낸 오늘의 역사가 훗날 또 하나의 문학이 될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가고 나면 더 많은 신종 바이러스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감염병의 시대가 온다는 말이다. 코로나19사태는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서며, 앞으로는 코로나19가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변종 바이러스에 대비해야 한다고도 한다. 신종 바이러스는 계속 출몰하고, 백신은 끊임없이 개발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이 '곤경'들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백신이 발명된다고 해서, 인간은 과연 진화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은 바이러스의 세계를 끝내 알 수 없을 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은 '병' 앞에 겸허하고 겸손해지는 것 아닐까. 인간은 병을 잠시 이길 수는 있지만, 끝내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지은이 최영화 교수는 요즘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작품 속에서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을까. 아마도 책 읽을 엄두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휴식조차 너무 가물가물한 옛 일이 되었을만큼 격무에 시달리지 않을까 싶다.

감염된 독서 -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최영화 (지은이), 글항아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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