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처음이야."
여기 저기에서 들려온다. IMF 시절보다 더 장사가 안 되고, 학교는 3월 말에도 문을 열지 못했다. 미세먼지를 막기위해 착용하던 마스크를, 지금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사야한다. 신분증을 챙겨서 약국 앞에 줄을 선다.
이런 상황이 너무나 낯설다. 이토록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를 만나본 적이 없으니 모든 대책은 새로울 수밖에.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사람과 2m 이상 떨어지라고 한다. 마주 보고 밥 먹지 말고, 가능한 모임은 자제해야 한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우리는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
사람을 멀리 하니 우리의 일상이 피폐해져 간다. 개학이 연기되고, 학원마저 휴원 상태이니 아이들이 갈 곳을 잃었다.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기도 꺼림직하다. 초등학생 아들 녀석은 가끔식 개방된 공간인 놀이터에서 친구를 만나 놀기도 한다.
중학교 입학 예정인 딸은 요즘 시체놀이 중이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기에는 너무 커버렸고, 집에서 친구와 놀기도 금지되고, 떡볶이 가게에 몰려갈 수도 없으니 아예 놀기를 포기했다. 며칠째 잠옷을 입고 문밖 세상 구경을 못하고 있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자리 앉기는 고사하고, 그나마 사람이 없는 공간을 찾아 눈동자가 바쁘다. 마주보고 서면 안 되니, 빈 자리가 나도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KF94 마스크의 훌륭한 성능으로 인해 숨이 차오르고, 눈 앞은 안경에 서린 습기로 흐려진다.
문제는 '마음의 메마름'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저녁 모임이 모두 사라졌다. 주말에 가족과 편하게 외식을 하거나, 나들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오롯이 가족의 안전을 위해 물리적 활동 반경과 사회적 접촉면을 가능한 축소시켰다. 그랬더니 이제 마음이 움츠러든다.
사람의 마음을 낫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람의 마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발생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인간적 거리 좁히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몸이 가까우면서도 마음이 먼 관계를 많이 만들어 왔다. 이제는 몸이 멀어도 마음이 가까운, 몸도 가깝고 마음도 가까운 그런 관계로 우리 삶을 채워나갈 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났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대면대면하고 건조한 가족 관계가 있다. 부부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형제자매 사이에 오늘은 따뜻한 마음의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
한동안 보지 못한 친구나 동료에게 전화를 해보면 어떨까. 메신저보다는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전화 통화가 좋을 것이다. 잘 있는지, 주변은 모두 평안한지 물어주고, 평안을 빌어주며 상황이 나아지면 꼭 만나자고 한 마디 덧붙이면 좋을 것이다. 시간 때우기에 좋은 영화나 책을 서로 소개한다면 고마움은 배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뒤틀어 놓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든지 있다. 하루 속히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그 뒤에 남겨진 것이 상처만이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