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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빵과 장미> 해마다 3.8세계여성의 날이면 나는 영화 <빵과 장미>를 다시 본다. 노동운동가 샘(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전면에 배치된 포스터가 별로 마음에 안 든다.
▲ 영화 <빵과 장미> 해마다 3.8세계여성의 날이면 나는 영화 <빵과 장미>를 다시 본다. 노동운동가 샘(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전면에 배치된 포스터가 별로 마음에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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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합니다. 이겼습니다. 아무도 거저 장미를 주지 않습니다. 언제 장미를 얻는 줄 아십니까? 구걸을 멈추고 단결할 때입니다. 우리 삶을 휘두르는 회사에 맞설 만큼 강한 노조를 결성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권리를 위해 일어나십시오."

영화 <빵과 장미>(켄 로치, 2000년)에서 노동운동가 샘(에이드리언 브로디)이 시위를 주도하며 한 말이다. 여성노동운동사에 전설이 된 단어 빵과 장미. LA의 대형빌딩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착취당하던 여성노동자들도 외쳤다. 아무리 일해도 건강보험도 기본 생활도 해결 안 되는 조건. 근근이 빵만 얻으려 이런 노동을 하려는가? 빵만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삶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원한다. 구걸을 멈추고 단결해서, 장미를 얻는 싸움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켄 로치 감독을 거장이라 칭하는데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작년에 본<미안해요, 리키>가 오늘의 남성 택배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줬다면, <빵과 장미>는 20여년 전 여성노동자들 이야기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에서 이미 나는 여성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에 주목했다. "앗! 이 감독!" 20년 전 나온 영화 <빵과 장미>를 내가 계속 보는 이유다. 
   
<빵과 장미>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피켓들도 보인다.
▲ <빵과 장미>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피켓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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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매년 3월이면 나는 <빵과 장미>를 다시 본다. 시간 속에 영화가 달리 보이는 건 또 다른 재미다. 처음엔 내 눈이 노동운동가 샘의 시선을 많이 따라다녔던 거 같다. (이 영화 포스터엔 샘이 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다음엔 주인공 마야(필라르 파디아)에 감정이입을 하며 보았다. 카메라는 주로 마야를 따라다니니까. 똑똑하고 씩씩한 마야가 노조를 하게 되고 의식이 깨어나는 '성장 드라마'를 보듯이. 그런데 결국 멕시코로 추방되는 마야는 뭐란 말인가.

"나는 몰랐어" "몰랐어? 장님이야?"

올해 다시 보니 <빵과 장미>에는 언니 로사(엘피디아 카를로)가 있었다. 내 눈에 쑥! 들어온 로사. 그 이름까지 로사(장미)였다. '빵과 장미'의 장미. 인간을 이해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존엄을 지켜내는 감독의 시선과 마음이 느껴졌다. 로사를 통해 여성 노동자의 삶을 이면까지 깊이 보여주는구나. 로사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나는 전율하며 텍스트로 옮겨 보았다.

영화 후반의 한 장면, 두 자매가 눈물범벅 속에 주고받은 긴 대화의 일부다.
 
<빵과 장미> 마야와 로사가 눈물범벅으로 대화하며 서로를 새로 알게 된다.
▲ <빵과 장미> 마야와 로사가 눈물범벅으로 대화하며 서로를 새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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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 정말? 내가 배신자라고? 그렇게 생각해? 내가 식구들 먹여살렸는데? 엄마랑 너한테 돈 보내줬는데? 그렇게 생각해? 네 배를 채워줬는데 어떻게 번 돈인지 생각해본 적 있어? 내가 고향 떠난 게 몇 살 때야? 어린애 때였어. 아무도 신경 안 쓰지. 배부르게 해주면 그만이니까. 내가 뭘 했는지 알아? 몸을 팔았어. 창녀였다고. ​

마야: 몰랐어.

로사: 네 언니는 창녀였어. 식구들 굶어죽지 않게 하려고 5년 동안 매일 밤마다 로사! 남자들 물건을 빨아. 어서!

마야: 난 전혀 몰랐어!

로사: 어서 해! 식구들이 쫄쫄 굶고 있잖아. 어서 핥아 어서 해 어서. 더럽지? 토할 것 같니? 어때? 알려고 하지 않았어. 아버지가 집 나가고 누가 먹여 살려? 누가 해. 로사가 나가 몸 팔아야지.

마야: 몰랐어 언니.

로사: 흑인 백인 기름에 전 놈 똥내 나는 놈 세상 남자를 다 붙여줘야지. 남편이 아프니 또 그 짓 해야지. 누구 차례야? 또 로사야. 멍청한 로사가 항상 또 해야 돼. 모두를 먹여 살리게 또 그 짓 해야지. 난 모두가 미워! 평생을 참고 살았어. 내 속에 다 담아두고 말이야. 어때? 이리 와!

마야: 난 몰랐어.

로사: 잘 들어. 네 일자리 어떻게 구한 줄 알아? 여기서 일하고 싶어 했지? 뭐든 할 테니 일 좀 구해 줘. 어떻게 구한 줄 알아? 그래 페레즈랑 잤어.

마야: 말도 안 돼.

로사: 같이 잤다고. 널 위해 말이야! 난 지쳤어! 남편이 아파서 아버지가 집 나가서 네가 일자리 원해서 나는 몸을 팔아.

마야: 난 몰랐어 로사.

로사: 몰랐어? 장님이야?

그랬다. 마야가 자유롭고 생기발랄한 말괄량이 소녀라면 로사는 일찌감치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 큰 딸이다. 불법 이민자로 들어오던 날 성폭행의 희생자가 될 뻔한 상황을 빠져나오는 장면은 마야의 지혜와 용기를 잘 보여줬다. 언니 도움을 받아 빌딩 청소 일자리를 얻어 일하며 노조에 참여한 마야. 가장으로서 밥벌이에 전전긍긍하느라 마야와 동료들을 '배신한' 로사. 자매는 서로를 다시 알게 된다.

"#EachforEqual" 3.8세계 여성의 날에

​"나는 몰랐어."
"몰랐어? 장님이야?"

<빵과 장미>의 시선은 깊고 따뜻하다. 이데올로기적 이분법을 부끄럽게 하고 인간을 넓게 품어낸다. 마야의 입장, 로사의 마음, 그리고 감독의 시선이 담긴 대사다. 영화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지 싶다.

예수가 생각나게 하는 켄 로치라면 과장일까. 당대의 종교권력과 부딪치며 예수가 했던 비유 하나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나가 일하라 한다. "예"라고 한 뒤 행동은 안 하는 큰아들과 "싫어요"라고 하고 나중에 일하는 둘째 아들.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한 거냐? 예수의 질문에 둘째 아들이라고 사람들이 답한다. 이에 예수가 일갈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하나님 나라'와 '창녀'는 예수 정신을 이해하는 열쇳말이다. 로사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면 예수의 하나님 나라가 보인다. 마야는 로사를 몰랐다. 로사가 왜 그런 선택과 행동을 하는지. 이 사회가 로사를 어떻게 내몰았는지. 가족도 사회도 회사도 로사를 몰랐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용감하고 똑똑하게 노조에 가입한 마야에 비해 로사는 '답답하고 무지해' 보인다. 로사는 '배신자' 같았다. 조금 더 나가면 '계몽의 대상'이요 '진보의 걸림돌'이라 할지도 모른다. 마야는 로사에게 화가 나 있었다. 같은 여성노동자들이지만 조금씩 또 다른 입장이 있는 거다. 이분법은 얼마나 허망한가. 지식은 늘 부분적이고 시야엔 사각지대가 있는 거다.
 
#EachforEqual  올해 3.8세계여성의 날엔 전 세계 여성들과 함께 평등을 의미하는 팔동작 인증사진으로 연대해 보자.
▲ #EachforEqual  올해 3.8세계여성의 날엔 전 세계 여성들과 함께 평등을 의미하는 팔동작 인증사진으로 연대해 보자.
ⓒ 김화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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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몰랐다. 몰랐어? 장님이야? 연대 말고 어떤 대안이 있단 말인가.

"#EachforEqual" 3.8세계 여성의 날,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볼까. 용감하게 단결해서 싸운 마야들을 보아야 하리. 가려지고 잊힌 로사들을 기억해야 하리. 여성의 삶엔 마야들이 있었고 로사들이 있었다. 마야와 로사는 지금 여기 우리들이다. 나는 로사를 아는가? 모른다면? 장님이냐? 로사가 묻는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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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운동하고, 보고 듣고, 웃고, 분노하고, 춤추고, 감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읽고, 쓰고 싶은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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