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최근의 일화를 함께 나누고 싶다. 짜진 계획 없이 시작된 일이었는데 겨우내 얼어있던 연못 얼음장이 봄을 맞아 갈라지듯 파죽지세로 진행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고구마 무려 100 상자를

손정희씨 부부가 '코로나19'로 고생하는 대구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고구마 100상자를 무료로 나눠주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부인 손정희씨는 지난 1월에 일을 하다가 왼팔에 큰 골절상을 입고 철심을 4개나 박아야 했다. 아무리 본업이 고구마 농사라지만 고구마를 100상자나 무료로 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고구마 포장 작업을 하는 이웃 주민들.
 고구마 포장 작업을 하는 이웃 주민들.
ⓒ 전희식

관련사진보기


2월 중순 충남 아산시에 강의가 있어 갔을 때 홍성에 사는 손정희씨는 왼팔에 섬뜩한 흉터를 달고 강의장에 왔었다. 얼마나 큰 사고였는지 짐작이 되는 상처였다. 식사까지 같이 한 그녀가 홍성역까지 태워다 줘서 기차를 타고 전주로 해서 장수 집까지 잘 돌아온 게 최근 일이었다.

놀람과 함께 살짝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한국 사회에 걷잡을 수없이 번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별 영양가 없는 걱정만 늘어놓으며 뉴스나 뒤지고 있던 터라 더 그랬다. 정부 당국의 긴급한 조치들과 담당 공무원의 조그마한 말실수까지 꼬투리를 잡아 언론에서 증폭시키고 있는 모습이 딱할 때도 있었지만, 정작 나는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고구마 포장 작업을 하는 이웃 주민들. 출출해서 고구마 한입씩 하고 있다.
 고구마 포장 작업을 하는 이웃 주민들. 출출해서 고구마 한입씩 하고 있다.
ⓒ 전희식

관련사진보기


손정희씨 부부가 5킬로씩 포장한 고구마 100상자를 대구에 사는 분들에게 보내겠다며, 대구 사는 지인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모아 달라는 글이 올라온 곳은 함께 명상 수련을 하고 있는 '아난다마르가' 단톡 방이었다.

그 글에는 고구마를 대구에 보내기로 한 취지와 함께 코로나가 우리를 연대의 길로 안내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연고도 없는 대구 지역 사람들의 힘든 모습에서 연대의 고리를 찾아낸 그 시선이 신선하고 고마웠다.

이후에 내가 아는 대구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주소를 알아내면서도 나는 '선착순'이라는 글귀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마감이 되기 전에 한 명이라도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고구마를 얻어먹게 하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택배비는? 
 
대구에 발송할 고구마 택배 상자.
 대구에 발송할 고구마 택배 상자.
ⓒ 전희식

관련사진보기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 있었다. 대구에 사는 지인들에게 두루 문자를 보내던 중 한 분의 답글을 보고서다. 고구마를 보내줄 테니까 주소를 달라고 했더니 너무도 고마워하면서 택배비는 자기가 내고 싶다면서 계좌를 달라는 것이었다.

택배비! 그렇다. 고구마는 농사 지은 것이라 치자. 100상자나 되는 택배비도 만만찮을 텐데 그 돈까지 농부가 다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참 새삼스럽다. 택배비 없이 어찌 고구마 상자가 그냥 대구로 가겠는가.

나는 앞뒤 생각 않고 100상자 택배비 25만 원을 보냈다. 택배회사의 홍성 지사에서 손정희씨의 고구마 후원의 의미를 알고는 상자 당 택배비 3000원 중 지사 몫 500원을 할인해 주기로 해서 총액이 25만 원이었다.

한두 시간 뒤에 택배비 25만원 보냈다는 내 문자를 본 손정희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랑 의논했는데, 내 돈을 돌려보내자는 말이 오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손씨는 대구 지역 고구마 신청자가 며칠 사이에 100명 넘게 들어왔는데 초과된 신청자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내 돈을 돌려주지 말고 초과된 신청자들에게 고구마를 보내면 되지 않겠냐고 했고, 결국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렇게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1만 원씩 택배비 모으기

기적 같은 일은 그 다음 일어났다.

대구시민에게 고구마 보내기 운동이 더 알려지고 후원자가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씨의 고구마 택배비 보태기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내가 회원인 동학 천도교의 환경단체인 '한울연대'와 유튜브 영상 명상단체인 '가이아 TV' 회원 방에 글을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함께 해 주었다. '아난다마르가'도 같이 했다.
 
달러와 유로가 페이팔로 들어왔다.
▲ 영수증 달러와 유로가 페이팔로 들어왔다.
ⓒ 전희식

관련사진보기

    
1만 원 후원 택배비에다 고구마 2상자 값을 더 보낸 사람이 있었고 5만 원이나 보낸 사람도 몇 분 되었다. 두 차례에 걸쳐 14만 원이나 되는 고액을 보낸 사람도 있었다. '가이아 TV' 회원 중에 독일에서 그림 그리는 분은 유로화를 보냈고, 미국 뉴욕에서 디자이너 일을 하는 분은 달러를 보냈다.

이 때문에 나는 모바일 송금 방식 중 하나인 '페이팔'이라는 핀테크 계정을 만들기까지 했다. 신이 난 나는 손정희씨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그랬더니 그렇잖아도 일꾼을 사서 고구마 선별 작업과 포장을 하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손씨는 고구마 신청자들이 더 늘어났으니 아예 고구마 발송을 200상자까지 늘이겠다고 했다. 사정을 알게 된 택배회사 쪽에서 택배비를 전액 면제해 주겠다는 연락도 왔단다.

그렇게 고구마 100상자가 두 배인 200상자로 늘어나니 나는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택배비 보탠다며 모금을 한 게 화근이 된 것 같아서다. 그런데 이후에도 모금이 의외로 많이 됐다.

결국 200 상자로 늘어나... 100만 원 넘은 모금액

그렇게 해서 결국 사흘 만에 100만 원 넘게 '대구시민에게 고구마 택배 보내기' 모금이 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전액을 고구마 농부 손정희씨에게 송금했다. 손정희씨는 3월 2일에 대구로 고구마를 보냈다. 

고구마 값을 따지면 반의반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농부의 선의에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했으리라. 좋은 뜻에서 시작한 일도 하다 보면 생각 못한 어려움이 첩첩이 생긴다. 이럴 때 곁에서 거들어 주면 좋은 뜻으로 시작했다 낙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네 일꾼들이 고구마 분류 작업을 하면서 함께 밥 먹는 모습
 동네 일꾼들이 고구마 분류 작업을 하면서 함께 밥 먹는 모습
ⓒ 손정희

관련사진보기

 
코로나19 확산을 두고 득실을 따져 정치권에서 무리한 비난과 공격을 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독화살에 맞았으면 서둘러 화살을 뽑기부터 해야지 누가 쏘았는지, 어디서 날아왔는지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부처님이 전유경(箭喩經)에서 일찍이 일렀다.

'신천지'가 어떠네, 이번 총선에 어느 당의 유불리가 어떠네 말들이 많다. 하지만 사람들 가슴 속에는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애써 농사 지은 고구마를 선뜻 1톤이나 내놓은 손정희씨 부부에게 감사드린다. 선한 농부에게서 시작된 사랑의 바이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백신이 되리라 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불신과, 원망, 걱정을 이겨내고.

태그:#코로나바이러스, #코로나19, #바이러스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