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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3일 4.13 총선 입후보자중 낙선 대상 후보 명단 발표를 마친 총선연대 회원 2백여명이 명동성당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2000년 4월 3일 4.13 총선 입후보자중 낙선 대상 후보 명단 발표를 마친 총선연대 회원 2백여명이 명동성당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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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12일 오후 9시, 약 1500개의 촛불이 명동성당을 밝혔다.

"우리에겐 꿈이 있습니다. 더 이상 정치인이 국민의 환멸과 절망이 되지 않는 날이 오는 꿈."

총선시민연대를 이끌어온 박원순 변호사가 준비해온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딱 3개월 전 깃발을 올린 16대 총선 낙선운동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시민사회는 선거마다 주요 의제를 내세우며 낙선운동을 이어갔다. 2004년 총선 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2010년 지방선거에선 무상급식, 2012년 총선에선 4대강 사업 등을 기준 삼아 '○○만 빼고'를 외쳤다.

'○○만 빼고'의 역사는 20년 동안 순탄치 않았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 지도부는 결국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2004년 벌금형이 확정됐다. 2010년 무상급식 정책 공약화를 요구하며 지지·반대활동을 한 활동가 역시 2011년 벌금형이 확정됐다. 법원은 또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낙선후보자 명단을 발표한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아래 총선넷) 기자회견을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회'로 해석(선거법 103조), 1심과 2심에서 잇달아 유죄로 판단했다.

낙선운동을 둘러싼 질문은 2020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고 주장한 임미리 고려대학교 연구교수와 그의 글을 실은 <경향신문>을 검찰에 고발했다가 취하했다. 그러나 언론중재위원회 산하 선거심의위원회는 이 글이 선거법 8조(언론기관의 공정보도의무)를 어겼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마 선거법'이 꼬아버린 현실
 
제19대 총선을 하루앞둔 2012년 4월 10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역 부근에서 열린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 유세에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 동료인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가 참석해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19대 총선을 하루앞둔 2012년 4월 10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역 부근에서 열린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 유세에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 동료인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가 참석해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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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빼고'의 복잡한 상황은 복잡한 공직선거법 때문이다. 현재 선거법은 '무엇을 할 수 없다'를 복잡하게 정해놨다. 유권자의 정치의사표현도 마찬가지다.

선거법 58조는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정의한다. 또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면서도 정해진 선거운동기간에, 정해진 방식으로만 가능하도록 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는 이 조항이 너무 폭넓다며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만장일치로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선거운동기간 제한 역시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다.

헌법재판소가 공직선거법에서 유권자의 정치의사표현을 더욱 확대하는 결정을 내린 사례는 드물다. 그나마 2011년 12월 29일에는 인터넷상 정치활동공간을 조금 열어줬다.

당시 헌재는 선거 180일 전부터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반대 표시를 할 수 없게 한 선거법 93조 1항 등에서 '기타 이와 유사한 것'에 온라인 활동을 포함하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인터넷이 정치표현 기회의 균형성, 투명성 등을 높이므로 유권자의 인터넷 정치활동을 장기간 제한하면 안 된다는 취지였다.

선거운동의 주체도 살짝 넓어졌다. 2012년 총선 당시 선거유세 현장에서 찬조연설을 한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방송인 김어준씨는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다. 이들은 1심 때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조항을 두고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고, 재판부는 받아들였다. 사건을 넘겨받은 헌재는 해당 조항이 언론인 개인의 선거운동까지 전면 금지하는 것은 선거운동의 자유 침해라며 2016년 6월 30일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2000년 낙선운동, 2020년 경향 칼럼  
 
안진걸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넷) 공동운영위원장이 4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선관위와 경찰의 유권자단체 고발 및 수사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에 참석해 총선넷 현장에서 선관위로부터 제지를 당한 적이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9곳 10여 차례 낙선기자회견을 했지만 한 번도 제지 당한 적 없었다"고 답하고 있다.
 안진걸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넷) 공동운영위원장이 4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선관위와 경찰의 유권자단체 고발 및 수사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에 참석해 총선넷 현장에서 선관위로부터 제지를 당한 적이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9곳 10여 차례 낙선기자회견을 했지만 한 번도 제지 당한 적 없었다"고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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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을 넘어 '○○만 빼고'를 말하려면 조심해야 한다. 현수막도 안 되고, 1인 시위도, 확성기 사용도 함부로 할 수 없다.

2016년 3월 춘천시민연대는 춘천시 민주당 당사 앞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산업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현수막을 걸었다가 선거법 90조(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형이 확정됐다. 총선넷은 정당과 후보를 명시하지 않은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집회 아닌 기자회견을 열었는데도 유죄 판결이 나왔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20대 총선 공천 반대 1인 시위를 벌였던 활동가 역시 벌금형이 확정됐다. 헌재 결정 후 확성기·자동차 사용금지 조항(91조) 등을 이유로 1심 유죄가 나오자 김어준씨 등은 다시 한번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헌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시민사회가 '독소조항'으로 꼽아온 선거법 90조, 91조, 103조 관련 사안이다.

참여연대 등은 이미 2016년 8월 유권자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한 선거법 입법청원안도 냈다. 그러나 국회 논의가 감감무소식인 사이에 다음 선거가 다가왔고, '○○만 빼고'로 시끌벅적하다. 누군가는 임미리 교수 글이 선거법 위반, 또 누군가는 표현의 자유라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번 논란으로 한국 사회는 20년 전으로 회귀할 것인가, 20년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태그:#공직선거법, #낙선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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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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