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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가 올해 창간 20주년을 맞아 '나의 스무살' 기사 공모를 진행합니다. 청춘이라지만 마냥 빛날 수는 없었던, 희망과 좌절이 뒤섞인 여러분의 스무살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제법 고단하다 싶은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울 때면, 곧잘 드는 생각이 있다. 지금 내 나이 스무살만 되었으면,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자사자 공부만 했을테다. 내 나이 어느새 마흔일곱이다. 앞으로 회사를 얼마나 더 오래 다닐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내일이라도 당장 갱년기로 인해 식은땀을 줄줄 흘려댄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인데, 아이 둘 뒤치다꺼리가 아직 남아있고, 남편의 정년퇴직이 일 년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통장의 무게는 새털만큼이나 가볍다.

살고 싶은 삶의 목록보다 살아내야 하는 의무감의 무게가 훨씬 더 큰 지금, 나는 자꾸만 기운 넘쳐나던 스무살, 그때 그 시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나의 스무살이라고 해서 결코 녹록지 않았을 텐데, 그때의 나 역시도 치열하게 고민하느라 머리를 쥐어 뜯었을텐데, 당장 눈앞에 닥친 삶이 아니라고 그때 그 시절이 함부로 그립다.

그땐, 시간이 마냥 많을 줄 알았다
 
 tvn 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에서 이선심 (이혜리 분)은 회사의 경리에서 대표이사가 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tvn 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에서 이선심 (이혜리 분)은 회사의 경리에서 대표이사가 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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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무살, 고등학교 졸업장 달랑 들고서 취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다. 연탄공장 총무부 사환 자리가 있었고, 의류공장 재봉틀 시다 자리가 있었고, 설계사무소 경리 자리, 그리고 스포츠용품점 판매원 자리가 있었다.

대학 진학을 한 친구들보다 4년 먼저 일을 시작하였으니, '4년 후 나는 당연히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득 안고 어디든 골라잡아 직장인이 되고자 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부양가족이 단출했다. 엄마 한 분만 책임지면 됐다.

엄마는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어디든 취직만 되면 그날로 계를 부어 목돈을 만들어 전세방으로 이사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오래 전부터 세워두신 분이다. 그래서 스무살 성인이 되었다고 하여 단 하루라도 허투루 허비하면 안 되었다. 어디든 취직을 해두고 일요일 집안일 모두 다 끝내두고 놀아야, 엄마 손바닥이 나의 등짝을 후려치는 아픔을 겪지 않을 수가 있었다. 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나를 스무살로 키운 엄마의 척박한 삶에, 나의 월급들이 촉촉한 단비가 되어 갈라진 틈틈을 메워드려야 했다.

연탄공장 총무부 사환 자리나, 설계사무소 경리 자리나, 스무살짜리 여직원이 하는 일은 매우 비슷했다.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서 사무실 청소를 하고, 커피잔을 씻고, 금전출납장 장부정리를 하고, 커피를 타고 담배 심부름을 하고, 불리는 호칭도 회사마다 똑같았다. "김양아, 커피 한 잔" "김양, 담배 사왔어?" "김양아 내 구두는?"

아직은, 82년생 김지영들이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한창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묵묵히 상급자들의 지시를 따라 움직였고, 월급을 받았고 엄마의 곗돈을 부었다.

4년 먼저 시작했다고 해서, 4년 후 내가 친구들보다 월등한 가진 자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은 일찌감치 깨달았다. 매일같이 출근하고 성실하게 커피만 타서는 월급봉투의 두께는 결코 두툼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만의 특화된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느새 깨달았다. 이래서 공부를 더 해야 했다는 것도.

출퇴근 시각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중심 잡으려 이리저리 쏠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광고판 하나, '법무사 독학으로 취득 가능' 가방끈은 짧고 부양가족은 있고 언제까지 공장장님 구두 수발을 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 뭔가 획기적인 돌파구는 있어야 하는데, 광고에서 나를 유혹하는 것처럼 정말 책만으로 법무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고민만 계속하다 결국 몇십 만 원짜리 책을 사지는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아직은 스무살이니까... 싶었던 모양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스무살은 적당히 게을렀고, 다소 태평스러웠던 듯하다.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월급쟁이 노릇만 하면 엄마가 밥은 먹여주고 잠은 재워주었으니, 입으로는 부양가족이 있고 나는 가장이라 떠들고 다녔지만 뼛속 깊이까지 절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도 아주 많을 줄 알았던듯 하다.

정말 스무살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서점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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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스무살, 이런 나에게도 이 다음에 이루고 싶은 꿈 하나는 있었다. '동네 서점 주인'이다.

살림이 가능한 안채가 작게 딸린 가게를 얻어 책을 한가득 쌓아두고 팔며 살고 싶었다. 베스트셀러 소설들을 진열하고, 등하굣길 학생들에겐 참고서를 팔고, 오래 묵힌 책들은 먼지 털이로 탈탈 털어 청소라도 하고 있으면 '저녁 먹고 해라' 엄마가 불러주고, 엄마와 함께 보글거리는 뚝배기를 사이에 두고 밥을 지어 함께 먹을 수 있는 삶. 일요일 하루정도는 서점 문을 닫고 엄마랑 목욕탕을 다녀올 수 있는 삶. 내 나이 마흔 정도면 이룰 수 있는 꿈이라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온라인 서점들이 대거 출격하기 전이었다. 그리고 내 나이 스무살 일 때는, 엄마가 나의 곁에 껌딱지 마냥 딱 붙어 계실 때였다.

마흔 정도면 이룰 수 있으리라던 나의 꿈은 마흔일곱이 된 지금까지도 이루지 못한 한낱 꿈이 되어버렸다. 스무살답지 않게 너무나 빠르게 사는 일에 안주해버린 값을 나는 지금까지도 톡톡히 치르고 있다. 뭔가 한 가지에 몰두하여 죽자사자 열심히 해보았더라면, 그래서 단 한 가지라도 이루어냈더라면 마흔일곱인 지금, 어쩌면 나는 게으름 부리지 않고 계속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 스무살 때, 어쩌면 나는 지레 겁을 먹었던 건지도 모른다. 대학도 안 가본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공무원 시험은 아무나 보나, 오라는 회사가 작다고 따지지 말고 오라는 곳이 있을 때 취직하자, 하고 싶은 것? 조금 더 있다 시작해도 늦지 않다, 이제 겨우 스무살인데 뭐가 문제야.

그때그때 보다 쉬운 길을 택하고 나와 타협하며 진땀 한번 흘리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다. 다음으로 미루면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버릴지 알지 못하고, 하루가 다르게 흰머리가 늘어나는 삶이 도래할지 상상도 못 하면서, 스무살에 써야 하는 힘을 아끼고 미뤄두었다. 서른 되면 해야지, 마흔 넘으면 시작해야지. 그러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고 아끼고 아끼다 똥이 되어 버렸다.

지난 일은 후회하는 것도 그리워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음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나의 후회와 그리움을 굳이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마흔일곱의 내가, 지나간 스무살의 나를 두고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척만 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만약 지금 내 나이가 진짜 스무살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스무살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제일 빨리 알아차릴 테다. 그래서 단 한 번 인생에서 아등바등 살아볼 것이다. 잠도 설쳐가며 땀도 흘려가며 서른에도 살아갈 나를 위해, 마흔일곱에도 살아갈 나를 위해, 스무살의 내가 딱 한 번은 열정적으로 살아볼 것이다.

스무살에 읽은 책을 한평생 우려 먹으며 살게 될 줄 알았더라면 아주 많은 책을 아주 신나게 읽었을 것이다. 스무살이 앞으로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점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보다 더 신중하게 다소 능력 밖의 선택이 되더라도 무리하기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스무살'을 되돌아보며
 
 스무살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스무살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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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의 나는 오늘이 영원할 줄로만 알았다. 무엇을 해도 지치지 않고 신나고 설레는, 영원히 지속되는 오늘을 살았다. 서른과 마흔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굳이 상상조차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무살을 마음껏 살았다. 수많은 오늘을 더하여 늘 오늘처럼만 살았다. 오늘이 다인 것처럼.

마흔일곱이 된 지금, 나의 스무살을 찬찬히 되돌아본다. 지금부터는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있음을 준비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예순일곱일 때의 나도 여전히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예순일곱의 내 삶에서 20년 전의 내 모습을 지금과 같이 되돌아보게 된다면 그건 정말 실패한 삶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잠도 설쳐가고 땀도 흘려가며 스무살에는 설레느라 할 필요가 없었던 일들을 해보며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마흔일곱인 지금, 나의 스무살 때보다 부양가족도 훨씬 많아졌다. 당연히 웃을 일도 훨씬 많아졌다.

그러니 거꾸로 살아보기로 하자. 스무살 마음껏 게을렀고 태평하였고 오늘에 충실하였으니, 마흔일곱 지금부터는 좀 부지런하자. 스무살에 아껴두고 미뤄두느라 못 썼던 힘들을 모아 모아서 다시 한 번 살아보자. 모든 면에서 미천하기만 했던 나의 스무살을 거울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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