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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다들 자기가 원하는 것만 얘기하면, 나라가 어쩌라는 거니?"

아빠가 가끔 하시던 말씀이다. 아빠는 1944년에 태어나서 2014년에 돌아가셨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광복이었으니 당연히 일제 강점기는 기억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6.25전쟁을 겪었으나 직접적인 전투에선 벗어난 마을에 사셨다.

중학교 역사 수업에 항의하며 시험 거부 투쟁을 주도한 청년이었으나 가난으로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셨고, 가족을 부양하느라 평생을 힘들게 버티셔야 했다. 그런 아빠가 맞이한 대한민국의 독재 정권은 젊음의 패기를 버리도록 종용했고, 간신히 맞이한 2000년대 초반 민주 정부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권리에 대한 주장과 존중에 대한 욕망은 시끄럽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아빠의 혼란은 당시 우리나라의 혼란이었다. 하루아침에 민주주의를 맞은 대한민국의 국민은 여전히, 타인과의 '다름'을 마주칠 때마다 혼란스러워진다. 언제쯤 우리는 '다름'을 자연스럽게 대하게 될까?
 
 <태도가 작품이 될 때>앞표지
 <태도가 작품이 될 때>앞표지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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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박보나 작가의 <태도가 작품이 될 때>를 읽어보고 싶다. 현대의 예술작품을 통해 세상의 다양성에 접근한 책이다. '서로 다름을 더 시끄럽게 얘기할 때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라는 주제가 반가웠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60년대 미국 항공 우주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청소부 일라이자와 실험 대상으로 잡혀온 괴생물체가 교감한다는 내용의 판타지 영화다. 전체적인 전개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다소 심심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이 흥미로웠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다양한 차이를 가지고 서로를 두려워한다. (…) 영화가 말하는 것은 명료해 보인다. 모든 사람은 각각 다르다는 게 유일한 공통점이라는 것. 따라서 그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같이 살 수 있다는 것. 그래야 사랑할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 pp. 26~27

'휴먼에러'라는 개념이 불편하다

지금 내가 사는 경북 포항이라는 지역을 살펴보자. 지금껏 이 도시를 대표해온 정체성은 도시 전체를 주도하고 있는 산업 기반이다. 1970년대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경제개발은, 포항을 철강이라는 하나의 산업으로 대변되는 거대한 도시로 변모시켰다. 도시는 개인의 이름보다는 산업의 특징으로 대표됐다. 개개인의 차이보다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산업의 목적이 우선됐다.

책에서 언급한 작품 중 하나인 윤석남 작가의 <1025-사람과 사람 없이>(2008)에서 지금껏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작품은 혼자서 천 마리가 넘는 유기견을 돌보는 이애신 할머니가 모티프다. 작가는 할머니와 유기견들을 하나하나 나무로 깎아서 설치했다.
 
"공장에 맡겨 더 빠르고 더 매끈하게 뽑아내지 않고, 손으로 긴 시간 동안 하나씩 나무를 깎아, 1000마리가 넘는 유기견을 조각하는 것은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늙은 나이에 혼자서 1025마리의 유기견을 돌보는 것도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식용 슈퍼 돼지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상품 가치가 없어서 버려진 고양이랑 가족으로 사는 것 역시 순진하고 미련한 짓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게 실용과 이성의 관점으로 볼 때, 그저 불필요한 감상주의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고 동물과 인간 모두를 외롭게 만든 것은, 바로 자연을 문명의 대척점에 놓고 생명을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 여겼던 인간 중심의 이성주의, 실용주의가 아니었던가.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명을 수단이 아닌 교감의 대상으로 경험하고 같이 어울려 사는 것은 그 어떤 똑똑한 생각보다 훨씬 위로가 된다. 분명히 우리가 이 지구에서 지속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줄 유일한 방법이 된다." - pp.88~89

우리가 지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효율의 극대화였다. 산업은 빠른 시간 안에 성장해야 했고 국제적인 경쟁에서 승리해야 했으니, 가장 빨리, 가장 효과적인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

시스템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은 관리돼야 했고, 사람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어쩌면 산업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인간을 포기하고 '시스템의 뜻대로 움직이는 도구'가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어느 한 도시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일이었다.

산업 현장에서 품질관리에 대해 논할 때면 빠지지 않는 용어가 있다. 시스템의 품질관리를 통해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경우, 제어하기 가장 어려운 요인이 바로 '인간'이라는 의미의 '휴먼에러 (Human Error)'라는 개념이다.

인간이 심리적,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아무리 철저하게 관리한다 하더라도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인데, 들을 때마다 꽤나 불편하다. 어쩌면 이 사회가 원했던 것은 '인간'이 아니라, 지시된 프로그램대로 실수 없이 움직이는 '기계'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니 말이다.

'선진국'이라는 목표에 매몰된 국가에서 우리에게 요구된 건 '말 잘 듣는 로봇'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남과 다른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들의 세상'으로, 현명하게 바꿔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미국의 사회운동가인 조이 레너드의 '나는 대통령을 원한다'라는 작품의 원본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대변하는 대통령을 가질 수 있겠죠?
 미국의 사회운동가인 조이 레너드의 "나는 대통령을 원한다"라는 작품의 원본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대변하는 대통령을 가질 수 있겠죠?
ⓒ Worl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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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동성애자 부통령을 원한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 가스를 내뿜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곳에서 성장하여 백혈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을 원한다. 에어컨이 없는 대통령을 원한다. 병원에서 교통국에서 복지부 사무실에서 줄 서본 경험이 있는 사람. 실직자, 명예퇴직자가 되고, 성희롱을 당해본 경험이나 동성애자로서 학대를 받고 추방당한 경험이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사랑하고 상처를 입어본 사람, 섹스를 존중하는 사람, 실수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은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일들이 불가능한지 궁금하다. 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선가 대통령은 항상 광대여야 한다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왜 대통령은 창녀가 아니라 창녀를 사는 남자여야 하는지, 항상 노동자가 아니라 간부여야 하는지, 항상 도둑질하면서도 결코 처벌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두 명 중 덜 악랄한 자가 아닌 다른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 pp.31~35

1980~1990년대 미국의 미술가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조이 레너드의 '나는 대통령을 원한다'를 옮기면서, 잠시 멈칫했다.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이 글을 옮겨 적는 행위만으로도 '욕을 먹을까 봐' 두려워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이 글이 쓰인 미국에서는 이미 '백인 남성 대통령'의 불문율이 깨졌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도 동성애자 총리가 임명됐다. 인간을 기계로 여겼던 시대를 당당히 벗어나자. 우리 함께, 용기를 내자.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박보나 (지은이), 바다출판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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