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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병원에선 좀 그렇죠."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A(30)씨는 덤덤했다. 전공의 지원과정에서의 성차별 문제를 취재하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보인 반응이었다. 서울 주요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A씨는 "우리 병원에선 결코 그런 일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지난 2018년 한국여자의사회가 남녀의사 11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 평등 현황 조사 결과, 여의사 747명 중 47.3%가 '전공의 지원과정에서 성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말하자, A씨는 "그거 지방 병원에서나 겪는 일 아니에요?"라고 반문했다.

전공의 지원과정뿐 아니라 병원 내 당직실과 같이 편의시설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없냐는 물음에도 그는 "지방으로 가보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전공의 특별법' 이유로 이비인후과 지원 거절당한 B씨
  
 전공의 특별법은 의사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전공의 특별법은 의사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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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던 B(30)씨의 사정은 달랐다. 2017년부터 부산 모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B씨는 이비인후과 전공의를 꿈꿨다. 대학시절 보았던 청각장애 아동의 고충을 진심으로 보듬는 의료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B씨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2018년 7월, B씨는 이비인후과 진료과장 C씨에게 '지원 거절 통보'를 받았다. C씨는 '전공의 특별법'을 근거로 들었다.

전공의 특별법은 수련의 주당 근무시간을 88시간(법정 근무시간 80시간+교육적 목적 8시간)으로 제한하며 연속근무의 경우 36시간 초과를 금지한 법안이다. 특히 '여성 전공의에 대한 출산 전후 휴가와 유산·사산 휴가'에 관해서는 근로기준법을 따르도록 했다. 문제는 임신 전공의의 근무 단축으로 인한 대안과 세부 수련 지침이 없어 '임신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자 전공의보다 남자 전공의를 선호하는 역차별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B씨 또한 다르지 않았다. C씨는 B씨에게 "여자는 수련과정 중 임신 및 출산, 생리휴가 등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특별법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던 B씨는 결국 지원을 포기했다.

정식으로 항의한 끝에 병원 윤리위원회까지 열렸지만 돌아온 건 '미안하다'는 C씨의 짤막한 편지 한 장뿐이었다.

갈수록 심화되는 전공의 '서울 쏠림' 현상
  
C씨는 왜 전공의 특별법을 근거로 들었을까. 여기엔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가 있다. 2015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2014년 전공의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전공의 1700명 중 30.8%가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 수련병원 대다수가 2020년도 전공의(레지던트) 모집 당시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지방 수련병원 대다수가 2020년도 전공의(레지던트) 모집 당시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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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특별법이 제정된 후 'BIG 5'로 불리는 서울 주요 대학 병원은 정원보다 많은 의사가 몰렸다. 하지만 지방 병원의 사정은 다르다. 전공의 지원 단계에서부터 '서울 쏠림' 현상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11월 27일 청년의사가 2020년도 전공의(레지던트)를 모집한 수련병원 55곳을 조사해 분석한 결과, 29곳이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그중 18곳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 수련병원으로 확인됐다.

지방 병원일수록 여자 전공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공백이 병원의 심각한 인력난을 더욱 가중하기 때문이다. 한국여자의사회의 조사 결과, 전공의 선발 면접에서 임신 및 출산 계획을 물었다는 비율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원 전부터 '여자는 뽑지 않겠다'고 못 박으며 자격을 박탈시킨 사례도 있었다.

대구 경북대병원의 레지던트 1년 차 김아무개(27)씨는 "지원을 기피하는 과는 상관없겠지만 몇몇 인기 과에서는 '여성'이라는 신분이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라며 "업무량이 집중되는 레지던트 저연차에는 임신과 출산을 하지 말자는 게 암묵적인 약속"이라고 말했다.

"중앙-지방 간 의료 정책 탄력적으로 해야"

보건복지부는 수도권과 지방병원 간의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지난 2018년 11월 발표한 '지역의료 강화대책'이 그 결과물이다. 복지부는 지방병원의 경우 의사 채용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지방 국립대병원에서 지역의료기관으로 파견 오는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료계 곳곳에선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지방 전공의들은 수도권 전문의에 비해 많게는 2배에 가까운 인건비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울산 전공의의 1인당 인건비는 2억6300만 원으로 서울 종합병원 전문의(1억3200만 원)에 비해 2배가량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인센티브가 실질적인 인력 확충을 유인하긴 힘들다는 지적이다.

조선대병원과 전남대병원은 "지방병원의 인력 부족은 환자의 의료서비스와 연결된 심각한 문제"라며 "중앙과 지방의 의료 정책을 구분하는 탄력적인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아 중환자실 근무 의사가 소아 환자를 수술할 수 없거나, 권역센터의 의사들이 여유로울 때도 일반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규제는 중앙에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손호준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올해 상반기 발표를 목표로 보건의료인력 지원 종합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종합계획에는 인력 처우와 근무환경 정책 등이 담길 것"이라고 밝혔다. 지방병원 인력 보충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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