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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미투' 운동을 통해 여성들은 일상이었던 성차별·성폭력 경험들을 공론의 장에서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말하기'를 통해 성폭력은 '일부' 여성들이 겪는 남의 일이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것, 그 원인은 성차별과 성폭력이 용인되는 현실에 있다는 것을 수면 위로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폭력을 정당화는 시선들과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2차 피해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미투 이후, 현재 여성들의 현실과 일상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리고자 <2019년 함께 쓰는 성폭력사전(아래 함께사전)>을 기획했습니다. 여성들이 직접 적어준 892개의 경험과 생각으로 엮은 내용과 더불어 미투 이후의 이슈를 담은 기획기사를 앞으로 4번에 걸쳐 다뤄 볼 예정입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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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인 관계에는 위력이 작동하지 않는가?
ⓒ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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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다룬 기사에서 인상적인 댓글을 보았다. "억지로 회식에 참석하는 것과 성관계가 같냐?" 댓글 작성자의 생각에 성적인 관계만큼은 위력이 작동하지 않는 순수한 욕정의 산물인 듯했다.

상사의 눈밖에 날까봐 원치 않는 회식에 참여하는 일은 직장인들의 일상적 애환으로 꼽힌다. 그런데 바로 그 회식 자리에서 어떤 여성 직장인들은 임원진 옆자리에 배치되고, 성희롱 발언을 듣거나 블루스를 강요받는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다 마주친 상사로부터 추행을 당하거나 만취한 상태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 상담사례에서 약 26%를 차지하는 직장 내 성폭력, 이 또한 누군가의 '일상'인 것이다(2018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

조직문화의 구조적 병폐, 미투운동으로 드러나다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3일 오전 서울 노원구 북부교육지원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쿨미투 운동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 학생들은 교사 성폭력을 공론화하기 위해 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미투, 위드유' 문구를 만들었다.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2018년 5월 3일 오전 서울 노원구 북부교육지원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쿨미투 운동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2018년 4월 6일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 학생들은 교사 성폭력을 공론화하기 위해 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미투, 위드유" 문구를 만들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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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성폭력 말하기의 해였다.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미투가 새롭게 이어졌다. 2019년 1월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이어 전 유도선수의 코치에 의한 성폭력이 드러났다.

하반기에는 정종선 전 언남고 축구부 감독이 학부모에게 행사했던 소위 '갑질'과 각종 횡령·비리, 성폭력 가해가 세상에 알려졌다. 2년간 여러 부문에서 이루어진 미투운동은 가해자가 이미 조직 내에서 어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는지, 조직이 얼마나 곪아 있었는지를 함께 드러냈다.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유·무형적인 힘으로, 폭행 협박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을 이른다. MBC PD수첩의 보도에 따르면, 평소 정종선 전 감독은 학생의 대회 출전 여부를 좌우하는 위치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유명 축구감독과의 친분을 학부모에게 과시해 오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장래에 해가 되지 않도록 정 전 감독 별장의 환경미화에 동원되는 일까지 감내했다고 알려졌다. 그런 이유로 <함께사전>의 내용을 채워준 한 여성은 위력이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스스로 상대의 비위에 맞춰 행동하도록 하는 힘"이라고 정의했다.

위력이란 무엇인가?

소위 '갑질'이라는 권력남용에 저항하기 어려운 것과 직장 내 성폭력의 문제제기가 어려운 이유는 다르지 않다. 위력이 발휘되는 핵심은 상급자가 해고나 업무 배제 등 업무상 불이익을 준다거나 동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 등 고립과 생계 불안정 같이 예측 가능한 불이익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위력은 어떻게 떠돌아다닐지 모르는 악성 소문과 평판 조회, 그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만 같은 불이익의 '가능성'을 통해서도 발휘된다.
 
"상사 가까이에 여직원이 앉는 것을 마치 여성의 특권처럼 여기게 하고 그 자리에서 제외되었을 때 열등감이나 분노를 느끼게 만드는 회사분위기였습니다. 저 혼자 안한다고 하면 분위기 깬다고 욕먹을까봐 겁도 났습니다.

상사와 관계가 나빠지면 업무 정보를 들을 수 없게 될 수도 있고 저의 결과물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드세다는 소리만 들을 수 있으니까요. 

'이 바닥 좁은 거 알지?'라는 말을 달고 사는 상사였습니다. 관련 업계 취업이 처음이었고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한데, 상사에게 찍히면 회사생활 뿐만 아니라 이 업계에서 이직조차 어려울 걸 알았어요."(<함께사전> 답변내용 중)

따라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은 업무상 보호 감독을 받는 하급자가 권력적 지위를 휘두를 수 있는 상급자에 의해 성적 침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한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9년 1월 14일 '위력에 의한 성폭력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관심과 예방 처벌 의지는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한 바 있다.

독일에서는 2016년 비동의간음죄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명시적 거부의사 형성을 표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이용한 경우'를 열거하여 위력 성폭력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모순된 시선: 갑질에는 분노, 위력 성폭력에는 의심?
 
서부지법앞 항의시위 '안희정이 무죄면, 법원은 공모자' 14일 오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성폭행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가운데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당 등 여성단체 회원과 시민들이 오후 7시부터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앞에 모여 '안희정이 무죄면, 법원은 공모자다' '한국남성들은 오늘 성폭행 면허를 발부 받았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2018년 8월 14일 오전, 당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성폭행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가운데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당 등 여성단체 회원과 시민들이 오후 7시부터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앞에 모여 "안희정이 무죄면, 법원은 공모자다" "한국남성들은 오늘 성폭행 면허를 발부 받았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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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력에 대한 판단이 시급히 요구되는 현실과 달리 이중 잣대는 여전하다. 소위 '갑질' 폭력의 희생이 된 직원들은 이해받고 동정 받지만, 위력 성폭력 피해자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 아니었는지, 다른 의도는 없는지 의심 받는다. 

<함께사전> 집담회에서, 한 참석자는 조직 내 문제제기의 어려움을 "가해자와 싸우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와 싸워야 한다는 생각까지 해야 된다"며 "부장이면 밑에 과장, 차장, 대리까지 주르륵 '우리 부장님이 그럴 리가 없어'라며 회사 전체적으로 그렇게 돼요"라고 요약했다. 외로운, 심지어 승산마저 희박한 장기전이 되리라는 예측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사와 미성년자 학생 관계나 목사와 신도 관계가 아닌 이상 불륜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안희정은 일개 부장이 아니라 대권주자였던 거잖아요. 상사가 자신을 성적으로 이용하려고 했고 다른 동료들로부터는 배신 당했는데 밥줄을 잡힌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라고 말했더니 '아이 그거랑 그건 다르지'라는 거예요. 뭐가 다르다는 건지, 답답하더라고요."(함께사전 집담회 중)

여성들은 <함께사전>에 모임이나 학교, 직장 등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의심과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을 들었던 경험, 그리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들었던 착잡함과 분노의 감정들을 남기기도 했다. 조직 구성원들이 성폭력 사건에 대해 피해자 탓을 하는 것은 위축감을 준다. '내'가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입장에 놓였을 때, 내게 적대적인 환경이 만들어지리라는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부당한 위력 남용을 멈추자… 모두에게 필요한 직면과 용기
 
"대단한 남성을 실각하게 하는 여성, 성적 대가로 받을 것이 있는 여성, 원하는 것이 있는 여성, 이건 피해여성을 보는 익숙한 편견임과 동시에 가부장제가 두려워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가해자들 말처럼 다른 권력으로부터 '공작'하도록 지시받아서 문제제기한 거였다면 일찍이 들통나고 사회에서 매장 당했을 텐데요."(<함께사전> 집담회 중)

사람들이 위력 성폭력 가해자에게 온정을 보내고 옹호하는 이유는 평소 덕망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가해를 할 이유가 없다는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미투 당할까 두렵다"고 하고 '펜스룰'을 운운하면서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경각심을 부추기기도 한다.

"나는 권력 없으니까"라며 권력자를 정치인, 유명 문화예술인으로 한정시키며 남의 일처럼 비판만 하는 것으로 위력은 중단되지 않는다. 직업·지위나 경력, 인적 네트워크 등 권력이 발생하지 않는 곳은 없다. 그래서 시민들과 함께 정의 내린 '위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위력이란 말 한마디 없이 눈빛이나 한숨, 몸짓으로도 행사되는, 그래서 나로 하여금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해서 비위에 맞게 행동하도록 하는 힘이다. 관계에서 아무 불편을 느끼고 있지 않다면 위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은 한국 사회의 조직을 운영하는 '구조'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성별, 나이, 직급, 경력, 인적 자원 등의 차이가 조직 내에서 어떤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작동하는가', 그래서 '어떤 형태의 의사소통과 친밀감의 표현, 농담 같은 사소한 일상문화를 허용하는가'와 같은 것이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는 2018년 7월 2일 '위력을 인지할 때 위력은 제지된다'는 제목으로 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바 있다. 기자회견의 제목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위력을 인지할 때, 위력은 제지된다.'

또 사회 곳곳의 위력을 인지하고 드러낼 수 있어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이 성폭력을 처벌하는 법률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고, 법률이 취지에 맞게 작동해야만 위력의 피해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따라서 피해자의 주변인이 응답하는 정확한 방법이란 결국 자신의 위치를 직면하고 성찰하는 것, 익숙한 편견 대신 사건을 둘러싼 구조를 보는 노력을 들이는 것,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피해자의 곁에 서는 용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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