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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은 하면 안 돼."

욕하지 말라고 배웠다. 내 아이들에게도 욕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건 해서는 안 되는 나쁜 말이라고 알려줬다. 어디선가 누군가 욕하는 소리가 들리면 자동으로 얼굴이 돌아갔다(그렇다고 눈도 못 맞추면서!).

버스 안이나 지하철, 혹은 카페에서 말끝마다 '씨O'을 붙이는 아이들을 보며 개탄했다. '세상에 바르고 고운 말이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말끝마다 욕을 붙이나... 한두 번도 아니고 거참 듣기 불편하네'라고. 그랬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욕 한 번 찰지게 해 본 적 없는 아이였다. 그 흔하디 흔한 '씨O'조차.

온라인 서점에서 새로 나온 동화 리스트를 훑다가 제목을 보고 멈칫했다. '욕 좀 하는 이유나'? 그 아이가 하는 욕의 실체가 궁금했다. 게다가 출판사는 '소오름 돋을 만큼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투로 문장을 썼다'라고 소개했다. 이제 곧 열네 살, 열 살이 되는 두 아이를 둔 부모인 내가 '욕 좀 한다는 아이의 욕은 대체 어느 정도인 거야?'라고 그 내용을 궁금하게 여긴 것은 당연한 수순.
 
 욕 좀 하는 이유나
 욕 좀 하는 이유나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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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좀 하는 이유나>의 이야기는 이렇다. 유나에게 친구 소미가 간절하게 부탁한다. "나 욕 좀 가르쳐줘." 먹던 닭강정이 병아리가 되어 튀어나올 만큼 이유나는 당황한다. 그것도 '씨O'같은 "하찮은 욕 말고 다른 욕, 좀 더 창의적인 욕"을 가르쳐 달라고 하니 원.

그런데 웬일인지 유나는 소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 고등학생 오빠에게도 묻고, 초록색 검색창에 질문도 해보지만 '발 닦고 잠이나 처자라, 개초딩' 따위의 현실댓글이 달릴 뿐 '창의적인 욕'을 알려주는 데는 없다. 그러다가 소미가 갑자기 왜 욕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를 알게 되는데...

이유나는 결국 성공한다. '똥 통에 빠질 녀석이나, 치석 틈에 똬리 튼 충치 같은 녀석, 넓적송장벌레 같은' 따위의 누가 들어도 신선한 '창의적인' 욕, 처음 들어보는 욕을 찾아 소미에게 알려준다(국어사전의 용도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그리고 소미에게 그 뜻을 알 수 없는 욕을 하며 괴롭힌 친구 호준이에게 복수한다. 이게 끝이었다면 좀 뻔했을까. 작가는 아이들 마음으로 한 뼘 더 들어간다.

유나는 소미를 괴롭힌 호준이를 혼내준 건 후련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호준이 입장에서는 친구들 앞에서 (어려운 우리 말이라) 뜻을 알 수 없는 욕을 들으며 창피를 당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유나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게다가 소미에게 '그런 말(욕) 안 하는 이유나가 훨씬 좋다며 이제 욕 안 가르쳐줘도 된다'는 말까지 듣는다. '애써 복수해줬더니...' 유나는 기분이 별로라고 생각하면서도 소미의 말이 신경이 쓰인다.

복수 사건이 있고 난 후 유나는 호준이가 욕을 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욕을 쓰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호준이의 속마음도 듣는다. 호준이는 외국에서 살다 온 아이였다. 학교도 마음에 안 드는데, 말만 하면 아이들이 놀렸다. 그런데 영어로 욕을 하니까 애들 반응이 달랐다는 거다. 쿨하고 멋있다면서. 유나는 그런 호준이에게 그날의 일을 사과한다. 이후 호준이도 소미에게 정식으로 사과하는데...

아이가 욕하는 이유

기대했던 요즘 애들이 쓰는 욕은 없었다. 대신 책장을 덮으면서 아이를 키우며 숱하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애들이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는 이야기. 얼마 전 큰아이도 그랬다. '민주주의가 어쩌고, 우리나라 독립운동가가 어떻고'를 써놓는 학교 학습노트에 큰아이가 '너는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하는 이상한 말을 적어놨기에 물었다.

"이 글은 뭐야? 누가 봐도 OOO한테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여기다가 이렇게 써도 돼? 이거 그 친구한테 하는 욕 아니야?"
"선생님이 써도 된다고 했어."
"응? 무슨 말이야?"
"말로 하기 어렵고 힘든 건 글로 써도 된다고. 그래서 쓴 거야."

아아... 그렇게라도 답답한 걸 풀고 싶었던 거구나. 친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고민이 많은 건 알았는데, 이렇게 욕이라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건 몰랐다. 선생님에게 한 수 배웠다. 그러고 보니 앞서 내가 한 말을 수정해야겠다. 나도 한때 이유나처럼 욕 좀 해본 아이였다고 고백해야겠다. 차이라면 말 대신 글로 했다는 거.  말로 내뱉지 못하고 일기장에 써놓은 그 수많은 욕은 욕이 아니고 무엇인가.

소미의 말대로 '하찮은 욕'이 아니라, 대단히 창의적인, 어디에도 없을 법한 나만의 욕들로 꽉 채워진 일기장. '@#$%^&&&&*%$#$$@$#%^'이라고 쓰면서 분함을 풀고, 화를 삭이면서 나를 토닥거려준 그 다양하고 창의적인 욕들이 그제야 생각난 거다. 말로 하면 서로 상처가 될 게 뻔하니 글로 쓴 거겠지.

그러니 아이들에게 욕하지 말라고 훈계하지 말아야겠다. 그보다 그 욕의 뜻을 아는지 묻고(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다르니까), 왜 그런 욕을 하게 됐는지 들어줘야겠다. 당장 혼내지 말고 그 마음에 관심을 둬야겠다. 물론 아이들은 이런 내 마음과 달리 "그냥", "몰라" 할 게 뻔하지만 그래도 계속 물어야지(말할 때까지 집요하게 묻는다는 뜻은 아니다).

'엄마는 언제나 너에게, 너의 마음에 관심 있어.' 이런 마음을 아이가 알 수 있게, 그 진심이 느껴지도록 그런 티 팍팍 내고 살아야지. 그러면 언제든 욕 하고 싶을 때, 혼내지 않고 들어주는 엄마가 있다는 생각을 조금은 하지 않을까. 혼내는 엄마가 아니라 내 이야기 들어주는 엄마로 한 뼘쯤 가깝게 생각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궁금한 거 한 가지. 그런데 이유나는 왜 욕 좀 하게 된 걸까? 이유나, 다음에는 네가 '욕 좀 하는 이유나' 들어보자, 응?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베이비뉴스에도 실립니다.


욕 좀 하는 이유나

류재향 (지은이), 이덕화 (그림), 위즈덤하우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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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은경의 그림책 편지'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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