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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차는 우리가 원조

아르헨티나보다 마테차를 많이 마시고 탱고의 본고장은 우루과이라고 외치는 우루과쇼(Uruguayo, 스페인어로 '우루과이 사람'을 뜻하는 말)와 함께 한 몬테비데오에서 한달살기를 시작했다.

우루과이는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지만 먹고사니즘 때문에 즐기는 것은 뒷전이다. 남미에서 가장 안정된 경제와 사회 구조를 만들었지만 높은 물가 덕분에 이들의 삶은 퍽퍽하다.

우루과이는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유쾌하고 시끌벅적한 남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집에 함께 사는 호스트 세실리아만큼은 누구보다도 우리를 따뜻하게 환대해주었다. 어쩌면 운이 이리도 좋을 수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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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비데오는 내게 맡겨!

세실리아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여행객인 우리의 하루 일정부터 확인했다. 그녀의 관심은 그날 우리가 다녀온 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길은 헤매지 않았는지, 짓궂은 일을 당하지 않았는지 등 매우 구체적이었다.

어느 날은 집에서 종일 뒹굴었더니 '몬테비데오에 갈 만한 곳이 없어서 그러느냐?'며 걱정했다. 우리는 단지 휴식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 다음 날부터 세실리아의 입에서는 몬테비데오 관광 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기 박물관은 우루과이 현대 미술 작품이 있어."
"여기 도서관은 19세기에 지어졌는데 꼭 한 번 가 봐."
"마침 몬테비데오 국제영화제 기간이야. 내가 할인권을 준비해놨어."

현지인이 그 도시에 대한 정보를 준비해 주면 낯선 이의 여행은 풍부해진다. 여느 날처럼 퇴근 후 돌아온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그동안 세실리아가 우리에게 보여 준 친절함의 이유를 알게 됐다. 

"세실리아, 우루과이랑 아르헨티나가 축구를 하는데 싼 표를 구해 주겠다는 사기꾼을 만났어요."
"맙소사. 그나마 당하지 않았다니 천만다행이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설마 이 일로 우루과이가 싫어진 건 아니지?"

그녀는 멀리서 온 동양인들에게 자신이 몬테비데오 또는 우루과이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거쳐 온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몬테비데오가 초라한 곳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몬테비데오에서 가장 좋은 곳을 알려주었고 조금 떨어진 지역이라도 우루과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을 매일 같이 추천했다.

그녀는 또 문화 차이로 게스트에게 실수하지 않을까 싶어서 우리가 오기 전에 한국과 아시아 문화에 대해 공부했다고 했다. 그동안 만났던 호스트 중에서 게스트를 위해 일부러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며 맞이했는데 몬테비데오에서 겪는 인종차별과 사기꾼으로 의심되는 사람의 출현이 그녀의 마음에 쓰였던 것이다.

"세실리아, 인종차별은 어느 나라나 있는 문제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저희도 처음엔 이 나라가 아르헨티나나 칠레랑 다르지 않아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이 보여요. 어떤 나라의 수도도 몬테비데오처럼 아름다운 해변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그리고 우루과이 사람은 착하고 친절하지만 외국인과 친해지는 데 오래 걸리는 한국 사람과 비슷해요. 그래서 몬테비데오에 애착이 생겨요. 그 매력을 알았으니 우리가 이 도시를, 이 나라를 미워하며 떠날까 초조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세실리아의 마음 다 알아요."
  
 몬테비데오의 호스트 세실리아는 누구보다 우리를 따뜻하게 환대해주었다
 몬테비데오의 호스트 세실리아는 누구보다 우리를 따뜻하게 환대해주었다
ⓒ 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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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최고로 걱정해 주는 사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세실리아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도 더 이상 그녀를 불편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친절도 그녀의 모습이니까. 어느 날 출근한 그녀가 근무 시간 중에 메일을 보내왔다.

"내일 저녁에 '몬테비데오 시향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는데 갈 생각 있으면 티켓을 구해 놓을게."

못 말리는 그녀다. 게다가 세실리아는 티켓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점심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여행 중에 만났던 호스트 중에서 최고로 우리를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여행하다 보면 도착하는 순간부터 착착 마음에 붙는 도시가 있는 반면 떠나는 순간까지도 정이 들지 않는 도시도 있다. 우루과이를 스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부분 후자에 속하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이 도시에 길게 머무른 여행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도 도착한 첫 주에는 물가는 높고 아르헨티나와 비교해 볼 것도 많지 않은 작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결국 한 달을 모두 보내고 나면 실망하게 될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일정을 앞당겨 다음 도시로 떠나는 버스 티켓까지 예매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더 있어야 하는데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싶다. 그 사이 세실리아가 알려준 곳을 모두 들를 수 있을지 마음이 조급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몬테비데오와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어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은덕, 백종민 님은 좋은 친구이자 부부입니다. 한 달에 한 도시를 여행하며 행복해지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19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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