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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수제맥주 펍 <서프파이어>의 모습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수제맥주 펍 <서프파이어>의 모습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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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정주화(36), 그를 다시 만났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수제맥주 펍을 오픈한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이제 그의 삶에도 행운의 빛이 서서히 비쳐오고 있다.

그런 설렘을 가득 담은 동네, 서울시 관악구 '행운길'의 한 골목에 그의 가게가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그는 확실히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활기차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전직 간호사이자 서울소방에서 구급대원으로 잘 나가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소방관을 그만둔 이유는 뭘까? 쉽지 않은, 하지만 누구 못지않게 성실히 살아온 그의 인생을 360도 바꾼 계기는 바로 술에 취한 사람들이었다.

취하고 싶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에 취해 출동한 소방대원에게 욕설을 하고 폭행을 가하는 일은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 될 수 없다. 지속적인 폭언과 폭행으로 그는 그렇게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관련기사: "주취자의 폭언과 폭행으로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어느 날 출동을 나갔다가 한 주취자로부터 심한 욕실을 듣고 분을 참지 못해 피가 나도록 소방차에 머리를 부딪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러다가 정말 큰 일 나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냈다. 소방관을 그만두고 북한산 산악구조대에서 근무하며 자연에 몸을 의지했다. 망가진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서핑, 크로스핏(CrossFit)과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에도 도전했다.

그렇게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던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수제맥주 집을 오픈한다고 알려왔다. 술에 취한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고통 받았으면서 술집을 차린다고? 반전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대개의 소방관들은 끝을 보는 근성이 있다. "혹시 술로 받은 고통을 술장사로 끝을 보려고 하는 걸까?" 호기심 반, 걱정 반에 그의 가게를 찾았다. 가게를 차린 이유를 묻자 감성 토크를 나눌 수 있도록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것, 그리고 과하지 않게 절제하며 마시는 문화도 알리고 싶다고 했다.

마침 11월 9일이 소방의 날이어서 소방관을 위한 맥주도 출시했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아직도 그는 여전히 소방을 사랑하는 소방인임에 분명했다. 이번에 출시된 맥주의 이름은 바로 '파이어 엔진(Fire Engine)', 우리말로 '소방차'다.

소방차 한 잔당 판매가는 7500원. 한 잔 판매할 때마다 1190원을 '사회복지법인 한림화상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다. 한림화상재단은 서울소방에서 '몸짱 소방관 달력' 수익금을 기부하는 곳이기도 하다.
 
11월 9일 소방의 날에 출시된 소방관을 위한 맥주, Fire Engine.
 11월 9일 소방의 날에 출시된 소방관을 위한 맥주, Fire Engine.
ⓒ 서울브루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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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맥주는 캐나다인 양조사 조쉬, 서울브루어리, 수제맥주 계간지 트랜스포터, 그리고 서프파이어 정주화 대표의 아이디어가 합해져 나온 콜라보 맥주다.
 
서프파이어 정주화 대표가 11월 9일 소방의 날을 맞아 소방차 맥주를 출시하고 응원하러 온 소방인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서프파이어 정주화 대표가 11월 9일 소방의 날을 맞아 소방차 맥주를 출시하고 응원하러 온 소방인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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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술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젠 그 술로 또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소방관들이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만들었다는 그의 생각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힘들었던 시간 속에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행복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소신껏 즐기면서 살겠다는 그의 인생목표가 잔잔한 울림을 전해준다. 이참에 혹시나 소방관으로써 같은 고민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서프파이어 정주화 대표가 가게를 방문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프파이어 정주화 대표가 가게를 방문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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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만 너무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적극적 방법을 찾아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보다 사랑받아야 하는 고귀한 분들입니다. 앞으로 더 구해야 할 사람들이 많은 소중한 소방관입니다." 

소방관 선배로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도 소방을 항상 응원하고 소방관이 진심으로 존경받는 사회문화와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또 다른 그의 행복이야기를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태그:#소방차 맥주, #FIRE ENGINE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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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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