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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식사하는 모습.
 지난 2005년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식사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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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 입대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누군가는 군대 음식이 입맛에 맞을까를 고민하지만, 누군가는 육류만 가득한 식단 속에서 버틸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채식을 고수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아직까지 채식이 유난스러운 것이라고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받아야 할 시선 또한 따갑기만 하다.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배려 없는 공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군대에서 채식주의자로 산다는 것

"오랫동안 비건(육류, 달걀, 어패류, 조류 등 동물성 식품을 일절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으로 살다가 훈련소 생활 초기에 억지로 동물성 식품을 먹다 보니 이유는 모르지만 혈변이 나온 적이 잦았어요. 그래서 그 뒤로부터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았더니 어지럽고 기운이 없어지다 열이 39도 넘게 솟기도 했죠. 훈련소의 특성상 제대로 된 약을 처방받기도 어려웠고, 입실했을 때도 제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어서 힘들었습니다. 결국 자대로 배속된 후에는 덩어리 육류는 먹지 않되 육수나 양념은 먹고(비덩주의) 있습니다."
- 복무 중인 A씨(22세)

"군대는 위계적이고 수직적 집단이다 보니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게 굉장히 두려워지는 것 같아요. 처음엔 제가 채식주의자라는 걸 말하지 못했어요. 육식은 곧 힘, 체력, 전투력을 부여해주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데, 이런 상황에서 채식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정상성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실제로 제가 채식주의자임을 밝히고 나서 '너는 그걸 먹고 힘이 나냐, 그건 건강하지 않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죠."
- 직업군인 B씨(25세)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국내 채식인구는 3~4%로 추정된다. 최근 20대에서 채식인구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군 내 채식주의자 수는 약 5~6% 내외로 추정 중이다"고 말했다. 결국, 위와 같은 고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대략 3만~3만 6천여 명이나 된다는 얘기다.

선택지 없는 식단, 1식1찬의 현실 
   
 대국민 국군 소통 서비스 앱 '더 캠프' 8월 자료
 대국민 국군 소통 서비스 앱 "더 캠프" 8월 자료
ⓒ 홍하늘,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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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들이 군대에서 맞닥뜨릴 현실을 알아보고자 대국민 국군 소통 서비스 '더 캠프' 앱에 나와 있는 육군훈련소 8월 표준식단을 분석했다. 그 결과 훈련병들이 한 달 동안 먹는 음식 중에 비건이 먹을 수 있는 구성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총 93끼 중 밥과 반찬 하나만 먹을 수 있는 식단이 42끼였다. 이 외에 밥만 먹을 수 있는 식단은 12끼였으며 밥(볶음밥 등) 없이 반찬 한두 개만 먹어야 할 때도 14끼였다. 전혀 먹을 게 없는 식단도 3끼였다.

군 급식은 1식4찬으로 돼 있으나 비건의 경우 1식 2찬을 넘기는 때가 전혀 없었다. 후식조차 우유나 아이스크림 같은 동물성 식품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이 결과는 표준식단에 명시된 메뉴 이름을 기준으로 분류한 결과이기 때문에 실제로 메뉴에 표기되지 않은 동물성 재료까지 고려하면 먹을 수 있는 선택지는 더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채식하는 의사들의 모임인 '베지닥터' 이의철 사무국장은 "채식을 원하는 군인들이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 2가지 이상의 채소와 콩류 등의 반찬이 제공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현재 제공되는 급식이 장병들의 전반적인 선호도를 반영한 것이므로 동물성 식품 위주로 식단이 구성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국방부가 발표한 2019년 급식 방침을 보면 새우, 사골곰탕 등 많은 동물성 식품들이 선호품목으로 채택돼 그 기준량과 횟수가 늘어났다. 시식회나 시험급식에서 호평을 받아 새롭게 제공되는 신규 품목 역시 깐쇼새우, 계란말이와 같은 동물성 식품이었다.

소수의 채식주의자는 다수결의 원칙에 밀려 급식메뉴 만족도 조사에서도 소외되는 현실이다.

채식 문제 관심 없는 국방부

군대 내 채식주의자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되고 있다. 녹색당은 현재 공공급식에서의 채식 선택권을 위해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으며 지난 6월 '채식급식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병역 중 채식 선택권을 보장해 달라는 민원을 병무청에 넣어 국방부와 각 군(육·해·공)의 답변을 얻어냈다.

채식급식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요구한 내용은 첫째, 동물성 식품 메뉴 표기, 둘째, 채식 병역의무자 사전조사, 셋째, 조리병 대상 채식 교육, 넷째, 채식음식 제공, 다섯째, 시민단체와의 적극적인 협력이었다.

그러나 채식급식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요구는 사실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요구한 내용에 대해 반영 의사를 밝힌 것은 해군이 유일했다. 해군은 "점진적으로 채식을 하는 병역의무자 사전조사, 채식주의자가 별도로 피해야 할 메뉴표시를 하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형식적인 답변에 불과했다. 채식주의자 사전조사의 구체적인 실시 계획에 관해 물어보자 해군은 채식 여부 조사가 사생활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대답을 번복했다.

국방부는 채식주의자 사전조사 실시 계획은 해군의 입장일 뿐이라고 못 박으며, 국방부 차원에서 이러한 조사를 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했다. 채식급식을 희망하는 사람들 박은주 대표는 "국방부가 채식인 수요조사를 안 한다면 개별 채식인이 보호받기란 쉽지 않다.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에서 개인이 직접 '채식인을 배려해 달라'는 요구사항을 냈다가는 배려는커녕 훈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며 국방부 사전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물성 식품 메뉴 표기 역시 요원한 상태다. 현재 군 식단에는 알레르기 유발식품 및 성분만이 표기될 뿐 동물성 식품은 따로 표기돼 있지 않다. 따라서 채식주의자들은 군 급식에서 어떤 식품의 섭취를 피해야 할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채식주의자 사전조사와 함께 동물성 식품 메뉴 표기를 시행하겠다고 한 해군은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어 시행하라는 지시는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추진된 바는 없다"고 답했다. 국방부와 육군, 공군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채식주의자 사전조사나 동물성 식품 메뉴 표기와 같이 기초적인 수준의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인 만큼, 채식주의자들에게 적절한 채식 음식을 제공하기까지는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방부는 "기존 식단 외 채식을 추가 제공하기 위해서는 예산 및 조리인력·조리시설 등 다양한 제약조건이 있어 즉각적인 시행은 제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입대를 앞둔 채식주의자 송아무개씨는 "우리나라 군인들은 자원입대를 하는 게 아니라 징집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군대는 그들에게 채식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징집 체계에서 국민에게 생존의 기본이 되는 식사 메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며 국방부의 방침에 반발했다.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조길예 대표 역시 "굶는 것밖에 선택할 수 없는 군대에서 채식인에게 그가 먹을 것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비인간적인 정책이고 그것을 묵인하는 정부 역시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방부 "채식 제공하려면 예산 소요"... 채식단체 "별도 비용없이 할 방법 있어"

군대에서 기존 식단 외 채식을 추가 제공할 수 없는 가장 주된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군의 조리공간·도구·인력은 1식4찬을 하는데 맞춰져 있기 때문에 채식주의자들에게 별도의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소요된다. 국방부는 기존 식단 외 채식 반찬을 1~2가지 더 제공할 시, 대략 몇백 억 정도의 추가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채식급식을 희망하는 사람들 박은주 대표는 "국방부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채식옵션을 제공하는 비용은 전략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답했다. 박 대표는 이미 민원을 통해 별도의 비용 없이 채식인에 대한 배려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채식급식 도입의 중간 단계로서 제시한 바 있다. 기존 식단에서 육류만 제외한 나머지 재료로 조리해 채식주의자에게 제공하는 방안이다.

가령 멸치꽈리고추볶음 조리 시, 꽈리고추를 먼저 볶아서 채식인을 위해 일부만 분리해 놓고 그 다음 멸치를 볶는 식이다. 이런 방안이라면 기존 식단에서 채식인과 육식인의 공존이 가능해진다. 국방부는 11월에 열리는 군내 급식 담당자들과의 회의에서 이 방안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 방안이 군내 급식 담당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군대와 채식주의자는 공존할 수 있을까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제도적 시스템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한국과는 달리 이미 많은 국가에서는 환경 문제나 동물권, 건강 등을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외국 군대 내 채식문화 사례
 외국 군대 내 채식문화 사례
ⓒ 홍하늘,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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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우 대체로 군대 내에서 채식이 자유로운 분위기다. 카투사(주한 미8군에서 복무하는 한국 육군)에서 군 복무를 마친 전아무개씨는 "각자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환경이라 채식주의자로서 겪는 어려움이 크지 않았고, 건강을 이유로 채식을 하며 이를 병사들에게 권유하는 상관도 있었다"고 말했다.

시스템 또한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매 끼니 채식주의자가 먹을 수 있는 식단을 필수적으로 제공하며, 여건 상 어려운 경우 따로 음식을 살 수 있는 생계수당을 지급한다. 또한 모든 전투식량이 동물성 식품인 우리나라와 달리 24가지의 전투식량 중 4가지가 채식주의자용 메뉴다.

징병제인 나라 중에서도 군대 내 채식 급식이 활발한 곳이 있다. 바로 핀란드와 이스라엘이다. 핀란드는 작년부터 전체 군인을 대상으로 채식 급식을 확대해 일주일에 두 끼니는 무조건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최근 몇 년 사이 채식주의자가 급증함에 따라 채식 배급을 도입했다. 현재 렌틸콩 버거나 곡물 샐러드와 같은 다양한 식물성 식단이 제공되고 있다. 이스라엘 군은 성명을 통해 "우리의 목표는 병사 개개인의 요구를 돌보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징병제라는 공통점을 가진 우리나라가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사례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지금 우리나라도 군대에서 채식을 원하는 장병들이 늘고 있고 채식 선택권에 대한 요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며 이미 국내의 많은 공공기관과 학교들에서 시행되고 있는 주 1회 채식의 날이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군대 채식 도입의 실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군이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결국 군 내 채식 급식의 실행 여부는 국방부의 의지에 달렸기 때문이다. 이원복 대표는 채식이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한 개인의 생존과 가치가 달린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실현되기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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