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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가 1985년 국방부가 제작한 '光州事態의 實狀(광주사태의 실상)' 문건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으로부터 받아 확인한 결과, 북한군 개입설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마이뉴스>가 1985년 국방부가 제작한 "光州事態의 實狀(광주사태의 실상)" 문건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으로부터 받아 확인한 결과, 북한군 개입설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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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신군부는 광주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적대적이고 토멸의 대상으로 여겼다. 국방부에서 23일 내놓은 「광주사태의 실상」이란 문건의 후반부다.

철시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은 오직 총기를 휴대한 무장폭도뿐이었다. 그들은 군용 지프차와 트럭, 버스를 타고 시가지를 돌면서 위협 시위와 요란한 가두방송을 하였는 바 심지어는 "우리 방송은 못 믿으니 북한 방송을 듣는 것이 좋다"고 버스에서 북괴 방송을 틀고 운행하기도 하였다.

공장 직공들과 걸인, 불량배 등 20대 전후가 대부분인 무장폭도들은 탈취한 경찰복, 군복 및 철모 등을 착용하고 방독면, 수건 등으로 복면하였으며 어떤 자들은 무거운 기관총 실탄띠를 자신들의 상반신에 X자형으로 걸치고 다녔다. (주석 15)


국방부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실상'을 발표하고, 신문과 방송들은 여전히 '과격파' 운운하면서 광주시민들을 욕뵈었다.
 
 5.18 당시 정규 언론들은 광주 시민들을‘폭도'로 매도했다. 신군부의 삼엄한 검열 하에 어느 언론에서도 진실을 접할 수 없었다.
 5.18 당시 정규 언론들은 광주 시민들을‘폭도"로 매도했다. 신군부의 삼엄한 검열 하에 어느 언론에서도 진실을 접할 수 없었다.
ⓒ 5.18 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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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같은 광주데모 6일째, 자극적인 소문이 기폭제"(조선일보, 5월 22일자), "무정부상태 광주, 총 들고 서성대는 '과격파'들"(같은 신문, 5월 25일자) 등 진실보다는 학살자들의 발표를 보도할 뿐이었다.

시민들은 자체 제작한 유인물과 성명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밝혔다. 5월 23일 시민대책위원회와 학생수습대책위원회 공동으로 「광주시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는 정부와 사이비언론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온건하면서도 합리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

청사에 빛나는 칼날의 무서움을 모르는 채 사랑하는 내 시민을 짓밟아 버리는 천추에 맺힌 한, 원한에 맺힌 한을 어느 누가 풀어 줄 길이 없어 시민 모두가 일어선 5ㆍ18광주 민중봉기는, 우리 민족의 슬기와 민주화 염원에 의한 투쟁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달성된 것이 소수뿐이기에 투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평화적이어야 하며 이 평화적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민의 질서회복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이 질서회복이 최선의 방법이며 우리들의 피해를 줄이는 최선의 길입니다. 지금까지의 투쟁이 헛되지 않게 스스로가 합심동체가 되어 이 난국을 타개합시다.

1. 계엄군은 진주하지 않고 우리와 일체 교전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2. 총기는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휴대해야 하며 통제권에서 벗어날 경우 시민의 안전을 위해 회수되어야 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시민 여러분꼐서는 각 직장별 일상업무에 복귀할 수 있는 이성을 회복합시다.
4. 일부 무기류 휴대자들에 의한 오발사고와 약탈행위는 철저하게 근절돼야 하오니 협조바랍니다.
5. 이번 투쟁에서 희생된 사망자는 엄숙한 시민장으로 거행돼야 합니다. (주석 16)

   
이상의 사항을 전파하는 데 모든 분들의 협조를 바라며 앞으로의 사태 추이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5.18 항쟁 기간중 유일하게 진실한 언론 역할을 했던 <투사회보>
 5.18 항쟁 기간중 유일하게 진실한 언론 역할을 했던 <투사회보>
ⓒ 5.18 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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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전남대학 연합대표자회의도「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전남 도민 여러분!

지금 우리는 조국의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기필코 달성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4ㆍ19학생혁명과 부마민중의거로 점철되어 온 민족사의 요청입니다.

그러나 광주는 지금 민족사가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는 과업을 성취하기에 적지않은 난관에 처해 있습니다. 총기를 휴대하고 있는 몇 사람 중에는 오발을 하는가하면 무책임한 짓을 벌이며 우리들이 도달해야 할 조국의 민주화에 저해가 되는 일도 저지르고 있는 듯 합니다.

이것이 시민의 공연한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하여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 전남지역(서울포함) 대학생들은 책임감을 느끼며 전열정비를 위하여 나서게 된 배경입니다.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투쟁을 지속적으로 이끌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조속한 광주 질서 회복이 필요합니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정상화되며, 도시기능이 하루속히 회복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이 폭동이 아닌 지속적이며 조직적인 민주화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책임감있고 성실한 사람들이 나서야 하겠습니다.

모든 무기는 도청내 지휘 통제부 관할 하에서 일사분란하게 이용되어야 하며 여타의 모든 무기는 회수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학생들은 적극 나서야 하겠으며 광주의 치안유지와 질서회복을 위해서 대학별, 고교별, 직장별, 지역별 조직이 편성되었거나 되어가는 중입니다.

대학생, 고교생, 예비군, 그리고 민주화의 성취를 열망하는 시민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방관한다면 광주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자멸을 초래하게 될 것이며 조국의 민주화는 달성될 수도 없습니다.

도청 내에 설치된 대학생 대표자회의에 신뢰를 바라며 대학생 여러분의 전폭적인 성원과 참여를 바랍니다. (주석 17)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시내 주요 지역마다 공수부대 병력이 투입되어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시내 주요 지역마다 공수부대 병력이 투입되어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시내 주요 지역마다 공수부대 병력이 투입되어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시내 주요 지역마다 공수부대 병력이 투입되어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다
ⓒ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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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성 계엄사령관은 23일 「경고문」을 발표, 광주항쟁을 "고정간첩, 불순분자, 깡패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매카시즘을 동원, 광주시민들을 매도했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이제까지는 여러분의 이성과 애국심에 호소하여 질서회복과 질서확립을 기대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총기와 탄약과 폭발물을 탈취한 폭도들의 횡포는 계속 가열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국군이 소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민 여러분!
소요는 고정간첩, 불순분자, 깡패에 의해 조종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대열을 이탈하여 집과 직장으로 돌아가십시오. (주석 18)


주석
15> 국방부, 「광주사태의 실상」, 1980년 5월 23일.
16> 『5ㆍ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2)』, 44쪽.
17> 앞의 책, 45쪽.
18> 같은 책, 4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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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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