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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프로그램에서 일하던 습관이 남아 있어 뉴스를 자주 체크하는 편이다. 며칠 전 별생각 없이 기사 하나를 클릭했다. "MBC가 프리랜서 작가와 '독소조항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제목으로 지난 14일 보도된 국회 국정감사 뉴스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해 2017년 12월 '방송 작가 집필 표준계약서'를 제정했지만 여전히 방송 현장에서는 프리랜서인 방송 작가에게 불리한 자체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일례로 최근 MBC에서 일어난 방송작가 계약 중단 사건이 언급됐다. 언론 보도와 방송작가유니온의 성명을 통해 파악한 사건 내용은 이렇다. MBC <2시 뉴스외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일하던 A 작가는 지난 9월 16일 아침 회의에 참석했다. 거기까지는 여느 날처럼 평범했다.

그런데 평소 못 보던 사람이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별다른 언질 없이 회의가 끝났다. 회의 이후 회사 관계자가 A 작가를 불렀고, 구두로 계약해지 의사를 밝혔다. 회의에 참석한 낯선 이는 대체작가였다.

2019년 12월 31일까지 계약 기간이 명시된 계약서가 존재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계약 종료 전이라도 '일주일 전에 통보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회사는 '계약 종료 기간 전에 해지 의사를 밝힌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유예기간을 통보"했으므로 '미리 예고 후 계약을 해지한다'는 계약서 내용을 어기지 않았고, 따라서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대체작가까지 뽑혀 있는 마당에 유예기간 동안 둘이 함께 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A 작가는 통보 다음 날까지 일했다. 그리고 16일 현재,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기사를 보고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TV를 볼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그 이야기를 완전히 잊지 못했다. 자려고 누우면 갑자기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뛰었다. 며칠째 통잠을 못 자고 한두 시간마다 계속 깨는 바람에 다크서클의 문신화가 진행되고 있다.

마음이 축나면 몸도 따라서 축난다. 결국 나는 쓰려던 다른 글감을 치워두고 이 이야기를 쓴다. 쓰지 않으면 기어이 어딘가 아프고 말 것 같아서다.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모두의 이야기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가 지난 9월 23일 낸 성명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가 지난 9월 23일 낸 성명서
ⓒ 언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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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지도 못하는 방송작가의 해고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사사로운 이유가 있다. 앞서 내가 A 작가와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겪으면서 사람은 경험하는 만큼 타인에게 공명할 수 있다는 것을 절절하게 배웠다. 내가 잘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잠까지 설쳐가며 (쓸데없이) 깊이 공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계약 만료 통보를 받던 당시, 나는 순식간에 4kg이 빠졌다. 하루아침에 나가라는 통보를 받다니, 내가 능력 없고 초라한 작가임을 공인받는 것 같아서 숨기고 싶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을 보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물었다. 나는 "별일 아니고..."로 입을 열어 결국은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목이 멘 채로 입을 닫았다. 별일 아닌 척했지만 별일이라는 것을, 올해 최악의 일이라는 것을 끝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지금은 지인들에게 그날 이야기를 해야 할 때 목소리를 떨지도 않고, 그 이야기를 소재로 농담을 하기도 한다. 해고 스토리를 기점으로 내 삶에 대한 글을 쓰게 됐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되돌아보면 치유는 그날의 일을 글로 회고하는 데서 시작됐다. 그 전에도 누가 괜찮냐고 물으면 짐짓 "당연하지!"라고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글로 풀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괜찮아졌다. 

치유에 몰두한 나, 연대하고 투쟁하는 그녀
 
 방송작가유니온을 통해 공개된 뉴스외전 패널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의 손글씨 지지문
 방송작가유니온을 통해 공개된 뉴스외전 패널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의 손글씨 지지문
ⓒ 방송작가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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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작가는 나보다 더 괜찮을 것이다. 내가 글쓰기를 통한 치유에 몰두했다면 그녀는 연대와 투쟁을 선택했다. 주저앉아 울지 않고 광장에 나왔다. 나와 한 문장에 넣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찬연한 행보다. 

그녀와 한 프로그램에서 일하던 동료 작가는 집필을 보이콧했다. 방송에 출연하던 한 패널은 출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방송작가유니온은 그녀의 이야기를 성명으로 발표했다. '땅콩 회항' 공익제보자 박창진씨가 연대 시위에 나섰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선숙 의원(바른미래당)은 A 작가 사례를 언급하며 "작가들이 처한 불합리한 처우 개선"을 위해 즉각 작가 표준계약서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엇보다, 그녀 자신이 1인 시위에 나섰다. 그것도 MBC 앞에서. 매일 한솥밥 먹던 사람들이 눈앞을 황급히 지나가는 동안 묵묵히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쓰면서 또 조금 치유된다. 적어도 A 작가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위로받는다.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작가이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이 시대를 사는 많은 프리랜서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물론 앞으로도 갈 길이 구만 리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고 있지만 A 작가의 사례도 아직 해결된 것이 없을 뿐더러, 지금 구조에서는 얼마든지 제2, 제3의 A 작가가 나올 수 있다. 아니, 나오고 있다. 작가와 계약서를 쓰지 않는 한, 어렵게 계약서를 쓰더라도 갑에게 유리한 조항을 은근슬쩍 끼워 넣을 수 있는 한, 프리랜서를 사람이 아닌 갈아치울 부품으로 보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썼다. 이게 내 방식의 연대다. 일면식도 없는 A 작가에게 조심스레 묻고 싶다. 

"작가님, 제가 감히 응원해도 될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relaxed)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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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와 밤이 있는 한 낭만은 영원하다고 믿는 전직 라디오 작가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