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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이 단어는 주로 '없다'와 만나 분노로 이어지곤 한다. '염치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염치'란 단어가 원래 갖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편집자말]
"화장실 앞에 있어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출국하려는 사람으로 북적 거리는 김해 국제공항 한복판에서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을 찾아야 했지만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었다. 여지없이 '그'였다.

'부산갈매기'가 바탕체로 적힌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자이언츠'가 수놓인 야구 유니폼을 단추 채우지 않고 입었으며 헐렁한 반바지에 크록스 신발을 꿰어 신었다. 짧게 손질한 눈썹을 빼고는 영락없이 '한국 남성'이다. '혹시'라는 말도 필요 없이 "안녕하세요" 인사부터 건넸다. 
 
 트위터상에서 이가와 요시키씨에 대한 호칭은 "명예 한국인", "대한일본인", "프로매국노" 등 다양하다.
 트위터상에서 이가와 요시키에 대한 호칭은 "명예 한국인", "대한일본인", "프로매국노" 등 다양하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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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상에서 "명예한국인" 혹은 "대한일본인" 더 나아가서는 "프로매국노"라 불리는 이가와 요시키(28)다. 트위터(@yoshikin_kr)에 직접 올린 그의 일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노래방 애창곡은 '멸공의 횃불'이다. 전자담배에는 '대한민국 청와대' 스티커가 붙어있다. 대한민국이 적힌 티셔츠를 사고는 '매국티셔츠를 사서 기분이 최고'가 됐다. 사무실에서는 '독도' 볼펜을 쓰고, 광복절 하루 전인 8월 14일에는 '대한독립만세'라고 멘션을 올렸다.

야구팀 롯데 팬으로, '롯데 관전은 국민의 의무'라고 여긴다. 2시를 '콩시(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홍진호의 별명인 '콩진호'에서 따온 것으로, 홍진호는 만년 2위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콩시'는 '2시'를 뜻한다)'라 쓰고, '본인은'을 보면 '29만 원, 그 분'을 떠올린다.  

애국심 깊은 '한국 사람'으로 여겨지는 그는 도쿄에 거주 중인 "92년생"(나이를 묻자 92년생이라 답했다) 일본인이다. 그의 트위터 멘션은 트위터 내에서 뿐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대한일본인 요시키좌 근황.jpg' 등으로 퍼지며 제법 유명세를 탔다. 그렇게 얻은 각종 별칭 중 "명예한국인"이 가장 좋다는 그는 "기쁘긴 한데, 한국말도 잘 못하고 민망하다"며 손을 저었다. 

17호 태풍 타파가 부산을 강타할 때 하필 부산에 놀러온 요시키를 지난 23일 김해공항에서 만났다.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 "망명하고 싶어요" 
 
 트위터리안 요시키의 각종 멘션들이다.
 트위터리안 요시키의 각종 멘션들이다.
ⓒ 요시키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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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콩시', '29만 원, 그 분' 같은 건 어떻게 아시나요.
"트위터를 통해 여러분들이 다 알려주셨어요. 트위터가 없었다면 한국 여행을 올 일도 없었을 거예요."

축구 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 했지만, 그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어를 배웠고, 한국 친구를 사귀었으며, 한국 역사를 배웠고, 한국 정치를 알았다"고 했다. 그는 "트위터가 없었다면 일본 언론을 그냥 믿었을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트위터로) 내 인생은 풍요롭게 됐다"고 말했다.

태풍 타파로 인해 직관하려던 야구 경기가 취소됐다. 그는 트위터에 '번개' 공지를 올렸다. 21일에 번개로 만난 '트위터 친구'들과는 4차까지 갔다. 22일에는 온천과 노래방을 다녀온 후 부산의 유명한 양곱창집에서 역시나 '트위터 친구'인 사장님에게 '이대호 사인볼'을 선물로 받았다. 2박 3일 일정동안 만난 한국인만 10명. 

그의 '한국 사랑'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됐다. 한국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함께 중학생인 14살 때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처음 왔을 때 한국어도 모르고 말할 수도 없었는데, 식당에서 옆 테이블 분이 '뭐 먹고 싶냐'고 제스처로 도와줬어요. 그게 한국의 첫인상이었어요. 길 잃었을 때도 도와주셨고요. 다들 모두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니 그게 가장 감동적입니다."

한국이 왜 좋냐 물으니 '친절함'을 꼽았다.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감자탕'과 '짜장면'이라고 했다. 그렇게 여덟 번 한국에 놀러왔다. 이제는 농반진반으로 "한국으로 망명하고 싶다"는 그다.

"과거 일들에 대해 항상 한국인에게 미안... 독립을 축하하는 건 당연하죠" 
 
 이가와 요시키씨
 이가와 요시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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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아무리 좋아해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건 다른 문제다. 지난 8월 14일 올린 '대한독립만세' 트윗에 대해 "일본인이지만 과거 침략에서 해방된 걸 축하하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하다"고 부연했다. 왜 '당연'할까.

"그 때는 험한 시대였죠. (친)할머니가 일본인이시긴 한데, 그 시기 한국에서 태어나셨어요. 그래서 그 때 한국에서 벌어진 위안부, 강제징용, 한국말 금지 조치 등 괴로운 얘기를 어릴 때부터 많이 듣고 자랐어요. 그런 사람으로서 해방은, 일본인이지만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이 과거에 행한 일들에 대해 한국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요." 

'당신이 과거 일본의 행동에 책임이 있는 건 아니지 않냐'고 재차 물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조금이라도 보상하고자 하는 노력을 했다면 그런 생각을 덜 했을지 모른다"면서 "그러나 현재진행형으로 피해자에 대해 사죄하고 있지 않으니 그런 마음이 든다"고 설명했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에 대한 '염치'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그렇게 평가해주시니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의견은 일본에서 비난 받기 쉽다"며 씁쓸히 웃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염치는 '대단한' 게 아니라 '당연한' 데에서 비롯됐다. 그렇기에, 일상에서 자연스레 묻어나는 것이었다.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김대중 전 대통령... 독재정권과 싸운 멋진 정치인" 
 
 일부 누리꾼은 그를 두고 일본인인 척 하는 한국인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곤 했다. 이가와 요시키씨에게 여권 '인증샷'을 부탁했다.
 일부 누리꾼은 그를 두고 일본인인 척 하는 한국인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곤 했다. 이가와 요시키에게 여권 "인증샷"을 부탁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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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을 '선생님'이라고 칭한다.

"그 분은 자신이 죽을 수 있는데도 싸웠어요. 멋진 정치인입니다. 독재정권과 싸우는 정치인은 일본에 없어요. 존경합니다. 또 북한과 회담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연 개척자이기도 하죠. 한국 정치는 일본과 비교하면 저 앞에 있어요. 일본은 아직 '제국 정치'가 이어지고 있거든요. 일본에는 '염치없는 정치인'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민감한 정치 문제 등에서 막힘없이 대답하던 그는 '야구' 질문에 비보도를 요청했다. 가장 싫어하는 야구팀을 묻자 단번에 "기사에는 쓰지 마세요"라 말했다. 그는 야구팀 '롯데' 팬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처음에는 트위터에 일본 롯데팀 얘기를 했는데 '한국 롯데는 더 형편없으니 꼭 보라'는 멘션이 왔어요. 한국 롯데 야구를 보면 감정이 폭발할 거 같아요. 일본어로는 그 기분을 표현할 수 없죠. 그래서 (한국어로) 시X!!!!! 등을 올려요."


24일 현재 롯데는 10개 팀 가운데 10위다.

"한국에 오면 항상 즐겁고 감동적인데 갈 때마다 절망적"이라는 그는 인터뷰 내내 "아... 진짜 (일본에) 가기 싫다"를 반복했다. 임박한 비행시간에 맞춰 국제선 출국장을 빠져나가며 그는 두 번 돌아봤다. 두 번 모두 한껏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23일 김해국제공항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이가와 요시키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통역 : 박예나씨)
 23일 김해국제공항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이가와 요시키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통역 : 현승희씨)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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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친 이가와 요시키씨가 수하물을 맡기려고 이동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친 이가와 요시키가 수하물을 맡기려고 이동하고 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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