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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 만세 시위 도중 일경에 의해 왼팔이 잘려 낭자하게 흐르는 피를 부여잡고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결코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았던 '남도의 유관순', 윤형숙(1900.0.3~1950.9.28, 다른 이름 윤혈녀) 열사를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윤형숙 열사 남도의 유관순 윤형숙 열사
▲ 윤형숙 열사 남도의 유관순 윤형숙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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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세미나 “의혈지사 윤형숙을 기억한다”라는 주제의 3.1운동100돌 기념 학술세미나와 추모제 포스터
▲ 학술세미나 “의혈지사 윤형숙을 기억한다”라는 주제의 3.1운동100돌 기념 학술세미나와 추모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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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시 여수문화홀에서 오는 9월 27일(금) 낮 2시부터 여수시와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회장 오룡) 주최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는 "의혈지사 윤형숙을 기억한다"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3.1운동100돌 기념 학술세미나와 추모제를 겸하며 열리는 윤형숙 열사 관련 학술세미나는 이번 행사가 처음이다.

이날 학술 세미나는 한규무 광주대학교 교수의 '항일애국열사 윤형숙 관련자료 검토 및 생애와 활동 재조명'과 김호욱 광신대학교 교수의 '일제강점기 호남 기독교 선교와 윤형숙의 항일운동' 발제로 진행된다. 이어 토론은 김인덕 청암대학교 교수,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필자(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윤치홍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 독립유공자발굴위원장이 맡는다. 이 토론에서 그동안 학술적으로 조명 받지 못했던 윤형숙 열사의 삶을 재조명할 예정이다. 이어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에 있는 윤형숙 열사 무덤을 찾아 뫼절(참배)한다.

윤형숙 열사는 광주 수피아여학교(현, 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 재학 중 이 학교 교사 박애순 선생의 지도 아래 급우 60여 명과 함께 광주교(光州橋) 밑 천변에서 이 지역 주민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 시위에 앞장섰다. 시위 도중 일본 헌병대가 출동하여 총을 쏘며 탄압에 나섰고 이들은 맨 앞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윤형숙 열사의 왼팔을 칼로 잘라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오른쪽 눈도 부상을 당해 평생을 실명 상태로 지내야 했다.
 
항일열사기념탑 부조 칼을 든 일본 순사 앞에 팔이 잘린 윤형숙 열사의 모습이 새겨진 여수 이순신공원에 있는 항일열사기념탑 부조
▲ 항일열사기념탑 부조 칼을 든 일본 순사 앞에 팔이 잘린 윤형숙 열사의 모습이 새겨진 여수 이순신공원에 있는 항일열사기념탑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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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육군성 기록물 광주만세운동이 기록된 일본 육군성 기록물
▲ 일본 육군성 기록물 광주만세운동이 기록된 일본 육군성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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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윤형숙 열사의 묘 도로 가에 세워진 "독립유공자 윤형숙 열사의 묘" 안내판, 저 뒤로 열사의 무덤이 보인다.
▲ 독립유공자 윤형숙 열사의 묘 도로 가에 세워진 "독립유공자 윤형숙 열사의 묘" 안내판, 저 뒤로 열사의 무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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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장애를 가진 몸으로 항일투쟁, 문맹퇴치운동을 계속하며 전도사로 선교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1950년 한국전쟁 때, 9.28 수복 당시 퇴각하는 인민군에 잡혀 손양원 목사 등과 함께 학살당했다. 윤형숙 열사 나이 50살 때였다.

남도의 유관순, 호남의 유관순, 제2의 유관순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여수 출신 윤형숙 열사의 이번 학술 세미나를 알리기 위해 며칠 전 상경한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 오룡 회장과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 독립유공자발굴위원장 윤치홍 선생을 만나 이번 학술 세미나의 의미를 들었다.
 
'윤형숙 열사야말로 또다른 유관순'
윤형숙 열사 학술 세미나를 앞두고 윤치홍, 오룡 회장 대담
 
윤치홍, 오룡  대담을 하는 윤치홍(왼쪽), 오룡 회장
▲ 윤치홍, 오룡  대담을 하는 윤치홍(왼쪽), 오룡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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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열리는 윤형숙 열사 학술 세미나의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올해는 3.1만세운동 100돌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돌을 맞는 해다. 여수 출신의 윤형숙 열사 역시 3.10 광주 만세운동 때 수피아여학교 학생으로 참여하며 왼팔이 잘리고 눈을 실명당하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독립의 횃불을 높이든 여성독립운동가임에도 그동안 학술 세미나 등을 통해 재조명하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늦었지만 이번에 3.1운동 100돌을 맞이하여 처음으로 윤형숙 열사의 학술 세미나를 열 예정이다."
 
- 3.1만세운동 85년 만에 서훈을 받게 된 경위는?
"윤형숙 열사는 1919년 3월 10일 광주 만세운동 이후 85년 만인 2004년에서야 정부로부터 200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다. 윤형숙 열사의 서훈을 위해 윤형숙 열사 오라버니인 윤재주씨의 장손자인 윤중권 선생과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 독립유공자발굴위원장 윤치홍 선생, 여수시의 노력 끝에 2002년에 서훈 신청을 하여 200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 받은 것다.
 
- 그간 여수지역에 윤형숙 열사에 대한 추모는 어떻게 해왔나?
"1960년도에 윤형숙묘비건립기성회에서 묘비 제막식(여수시 소라면 관기리 80)을 하는 등 윤형숙 열사에 대한 여수시민들의 노력은 줄곧 이어져 왔다. 특히 1960년대부터 지역향토사학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윤형숙 열사에 대한 기록을 해왔는데 윤형숙 열사의 제자였던 김처녀(전 여수제일교회 전도회장)씨와 김충만(전 국립여수수산대 교수) 교수의 증언 등도 기록해두었다."
 
- 앞으로 윤형숙 열사를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
"솔직히 여수시민들이라고 해서 여수 출신의 윤형숙 열사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윤형숙 열사의 삶을 재조명 하려는 것도 우선 지역에서부터 잘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3.1만세 운동이 일어난 지 100돌이 된 올해 그동안 윤형숙 열사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던 것을 이번 학술 세미나를 계기로 불식시키고자 한다. 윤형숙 열사야말로 남도의 유관순을 넘어 한국의 유관순임을 널리 알리고 싶다. 그러한 작업의 출발이 이번 학술세미나다."
 
<의혈지사 윤형숙을 기억한다> 학술 세미나 및 추모제 안내
*때: 2019년 9월 27일(금) 낮 2시~
*곳: 여수시 여수문화홀
*문의: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장 010-4223-8033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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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시집《사쿠라 불나방》,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8권,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답사기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