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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기자말

2016년 2월 12일 금요일 저녁 해임투표 결과가 나왔다. 해임반대 238표, 찬성 176표, 해임부결이었다. 그렇다면 2월 15일 월요일에 당연히 투표결과를 공고해야 한다. 그런데 그날 아파트 홈페이지엔 해임투표 결과 공고문이 올라오지 않았다. 뭔가 불길했다. 그러더니 저녁 무렵에 '남기업이 해임투표 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의신청서가 접수되었기 때문에 공고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올라온 것이 아닌가.

선거관리위원회의 만행이 시작된 것이다. 해임투표가 부결될 걸 대비해서 세워둔 '플랜 B'를 가동시킨 게 분명했다. 저들은 주도면밀했다. 저들이 장악한 선거관리위원회는 다수의 동대표들과 매일 대낮에 관리사무소에 모여서 대책회의를 했다. 관리사무소에 마련한 사무실에서 음식을 시켜 먹고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커피 대접을 받으면서 말이다. 관리소장은 저들을 열과 성을 다해 지원해주었다. 아니, 기획·주도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들이 내놓는 문서는 모두 관리소장이 작성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더니 1주일 후 선관위는 이의신청을 심의한 결과 투표 기간에 해임대상자 남기업이 부정을 저지른 것이 확실하여 해임투표 결과를 무효로 하고 3월 2일부터 9일까지 2차 해임투표를 하겠다고 결정했다. 선관위원 소수가 1680세대 입주민의 총의를 두 번씩이나 깡그리 무시해버린 것이다.

맥박수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대체 저들은 왜 저러는 걸까. 해임을 시도해서 실패했으면 머리를 긁적이며 정기회의에 나타나서 자기들이 원하는 걸 결정해서 추진하면 될 일 아닌가? 자기들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공사를 하고 싶으면 할 수 있고, 자기들이 원하는 업체에 공사를 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자기들이 불법적으로 집행한 2000만 원을 회수하는 일도 회장인 내가 하고 싶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저들이 저러는 이유를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회장의 사회권도 박탈하다!

저들의 대담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6년 2월 19일에 열린 정기회의 사회를 보러 회의 장소에 갔더니 회장 자리를 치워버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따지니까 고개를 바짝 치켜든 관리소장은 선거관리위원회가 해임투표 결과를 공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기업 회장은 아직 직무 정지 상태이고 따라서 사회권이 없다며 눈을 부라렸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된다며 거칠게 항의하니까 저들은 해임투표 결과의 공고 여부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일이니까 거기 가서 따지라며 나를 밀쳐냈다. 완전히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와 저들이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아파트 입주민이 다 아는 데도 말이다. 나는 결국 회의 장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저들은 왜 회장 사회권까지 박탈한 것일까? 그것은 그날 회의에 저들에게 매우 중요한 안건, 즉 '아파트 보도블록과 경계석 교체' 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공사(工事)'였다. 지은 지 20년이 훌쩍 넘은 우리 아파트의 보도블록과 경계석이 낡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쓸만했다. 그런데 저들은 수원시의 재정 보조를 받아 보도블록과 경계석 교체 공사를 그토록 하고 싶어 했고, 내가 사회를 보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의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나의 사회권까지 박탈해서 의결한 결과는 결국 저들에게 자살골이 되고 말았다. 수원시에서는 몇 달 후 이 회의가 회장의 사회권을 박탈하고 진행한 불법 회의였고, 불법 회의를 통해서 결정된 사항은 무효라고 확인해주었다. 그리고 관리소장은 이 과정에서 회장인 나에게 허락이나 동의도 구하지 않고 회장 직인을 찍는 불법을 저질렀는데, 이 일로 소장은 전과자가 되어 결국 우리 아파트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2차 해임투표를 막기 위해 또다시 법원으로 
 
소중한 한표  4·3 국회의원 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3월 29일 오전 경남 통영시 통영시청 제2청사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투표(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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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에서 9일까지 2차 해임투표가 진행된다는 공고문을 본 나의 괴로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빠를, 남편을 자르는 투표를 진행한다는 공고문을 벌써 여러 달째 보고 있는 가족들의 불안도 상당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투개표 부정과 같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나를 해임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투표 자체를 막아야 했다.

하여 나는 또다시 해임투표중지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런데 2월 26일에 법원에 제출한 가처분 재판에 문제가 생겼다. 피고, 즉 피신청인을 해임을 주도한 완장 찬 감사로 했는데, 법원은 감사는 피신청인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피신청인을 변경하면 된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다.

2차 해임투표가 3월 9일에 끝나는데 피신청인 교체로 시간이 지체되면 3월 9일 이후에 가처분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 문제였다. 저들의 투개표 조작으로 해임이 가결된 이후에 재판 결과가 나오게 되면 그것을 법적으로 바로 잡는 것은 너무 힘들고, 그 과정에서 저들과의 대립과 갈등은 불 보듯 뻔한데 그건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말 그대로 애가 탔다. 당시 나의 사건을 맡았던 법무법인 에셀의 오재욱 변호사와 이 일로 새벽 1시까지 통화를 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어떻게 하면 피신청인 교체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3월 9일 전에 재판 결과가 나오게 하느냐가 고민의 핵심이었다.

나의 사건을 공익적 성격이 강하다고 여기고 놀라울 정도로 집중력과 성실함을 보인 오 변호사는 검토의 검토를 거듭한 끝에 우리 아파트의 거물, 즉 회장을 4번이나 하고 회장 선거에서 나하고 경쟁했던 사람, 직업이 동대표로 보이는 저들의 몸통을 피신청인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해서 결국 법원으로부터 3월 3일 결정을 받아냈다. 재판은 3월 5일에 열리고 재판 결과는 투표 마지막 날인 3월 9일에 내려졌다. 그야말로 숨 가쁜 순간이었다.

물론 법원의 판결은 2차 해임투표를 중지하라는 것이었다. 1차 해임투표 결과를 공지하지 않았고,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해임투표 결과를 무효로 하고 다시 진행하는 것은 명백한 절차상 하자라는 것이다.

남기업은 회장이 아니었다!

2차 해임투표가 무산되었으니 이제 저들도 해임투표를 포기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저들은 다시 세 번째 계획, '플랜 C'를 가동시켰다. 플랜 C의 핵심은 검토해 보니 남기업은 원래 회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저들의 논리는 이러했다. 2015년 9월에 남기업이 회장에 입후보할 때 서류제출을 관리사무소가 아니라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에게 이메일로 제출했는데, 이것이 명백한 절차상 하자라는 것이다. '전자우편을 통한 서류제출 → 후보등록무효 → 당선무효'이므로 해임투표를 할 필요도 없이 회장을 새로 뽑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결정이 담긴 선거관리위원회의 공고문에는 남기업은 현재 동대표이니 회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었다.

입주민의 불만은 폭발하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지켜보던 입주민의 불만이 드디어 폭발했다. 홈페이지 게시판은 선거관리위원회를 성토하는 내용으로 도배가 되었고, 어떤 입주민은 "대체 얼마를 해 먹었길래 멀쩡한 회장을 자르려고 저러는 것이냐, 관리사무소를 폭파시켜 버리고 싶다"라는 댓글까지 달았다. 또 어떤 입주민은 내게 힘내라고, 꼭 이겨달라는 문자도 보내왔다.

홈페이지의 성토와 응원 문자가 내겐 위로가 되었지만 괴로움은 너무 컸다. 하여 이번에는 수원시로 달려갔다. 회장 재선거를 중지해 달라는 민원을 넣었는데, 이번에는 수원시가 신속하게 대응했다. 이 해임투표 과정이 언론에 보도가 되니까 우리 아파트가 수원시의 '관심 아파트'가 된 듯했다. 수원시는 '회장 재선거 당장 중지하라, 남기업은 적법하게 선출된 회장이다, 만약 회장 재선거를 실시하면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즉각 발송했다.

공문의 내용은 단호했고 과태료 때문인지 저들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저들의 해임 작전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저들은 수원시의 재선거 중지 명령은 따르겠지만 이제 제대로 절차를 거쳐서 3차 해임투표를 하겠다고 결정해버린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아파트 회장 분투기'는 앞으로 약 30회 정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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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정의와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