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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기자말

법원의 해임투표중지가처분 신청에 대한 기각 판결은 나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연히 해임투표를 중지하라는 인용 결정이 날 줄 알았다. 절차상 문제도 있었고 누가 봐도 해임 사유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가처분'은 절차에 엄청난 하자가 있을 때만 인용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재판부는 절차상의 하자가 존재해도, 설사 해임 사유가 되지 않는다 해도, 투표를 통해 입주민들의 판단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해임추진자가 제출한 해임사유서와 해임대상자가 작성한 소명서를 동시에 공고하면 합리적인 입주민이 읽어보고 알아서 판단한다고 보는 것이다.

기각 판결문을 받아 든 저들은 환호했다. "법원도 인정한 해임투표"라는 공고문을 모두가 볼 수 있는 게시판에 크게 붙였다. 힘이 쭉 빠지고 하늘이 노래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유권자인 입주민에게 나의 억울함과 저들의 불법성을 알리는 것밖에 없었는데, 저들의 방해로 우편 발송의 효과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고민이 깊었다. 
 
 아파트에서 1인 시위 하는 필자
 1인 시위 하는 필자
ⓒ 남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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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고민 끝에 나는 아파트 정문에서 출근 시간에 적절하고 짧은 문구를 담은 피켓을 들기로 결심했다. 2016년 1월 27일부터 해임투표가 진행되는 전날까지 5일 동안 나는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 동안 피케팅을 하고 출근을 했다. 우리 아파트에서, 아니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피켓을 든 나를 본 많은 입주민이 힘내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었고, 어떤 입주민은 다가와서 진지하게 묻기도 하였다. 1월말이라 정말 추웠지만 나의 억울함과 저들의 불법성을 알리기에는 더 없이 효과적이었다.

호응하는 입주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한 80이 다 된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다음과 같이 쏘아붙였다. "당신은 세월호 시위나 하러 다니는 빨갱이야, 들어보니 회의도 참석 안 하고 공사현장에도 안 와 보고 잘릴만 하더만, 아파트값 떨어지는 그 피켓 당장 집어치워!" 라며 호통을 치고는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정말 황당했다.

"남기업은 좌파 빨갱이자 부정의한 사람"

당시 나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문구가 담긴 피켓을 출퇴근 등 외출할 때마다 앞뒤로 목에 걸고 다녔다. 그것은 세월호에서 억울하게 희생 당한 학생들과 유가족들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한 나의 행동이었다. 2014년 8월 10일부터 시작한 '몸자보'를 아파트 회장이 되고서도 계속 메고 다녔는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피켓을 걸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아파트에서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들의 짓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그 사진을 주로 노년층에게 뿌렸다.

저들이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나를 '세월호 데모나' 하러 다니는 좌파 빨갱이로 낙인 찍기 위함이었다. 나에게 다가온 할머니도 그 사진을 보고 아침에 내게 와서 험한 말을 쏟아부은 것으로 보였다. 거의 '태극기 부대'의 마인드를 가진 저들은 나에게 좌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해임투표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한국 정치의 축소판이다.

그들이 만든 또 다른 프레임은 '남기업은 부정의하다'인데, 이것은 상대적으로 젊은 층을 겨냥한 것이었다. 저들은 '남기업은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예전에 있었던 페인트 공사 부정을 덮으러 나온 나쁜 사람'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저들은 몇 년 전에 멀쩡하게 동대표 활동을 하고 있던 사람들을 페인트 공사 입찰 부정이 있다고 몰아붙여서 해임하고 자신들이 입주자대표회의를 장악했는데, 당시 억울하게 해임 당한 동대표들은 공교롭게도 나를 지지하고 있었고, 그중에 나의 동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저들은 항상 공고문을 붙일 때마다 "페인트 입찰 비리의 주범 누구누구의 동서 남기업"이란 문구를 포함했다. 이렇게 해서 저들은 내 이미지에 분칠하려고 했다. 영리하고 교활했다.

해임투표 추진 이유가 드러나다

나는 당시에 저들이 '남기업 해임'을 향해 질주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회장의 힘이 막강하지만, 나는 혼자고 저들은 다수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아파트 업무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나를 요리할 수 있었다.

또한 회의에서 표결에 들어가면 저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원하는 결과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안건 상정 권한이 회장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안건에 상정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편인 관리소장이 나에게 이런저런 필요가 있다며 안건을 제안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들이 요건을 갖춰서 안건 상정을 요구하면 나는 그것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저들은 합법적으로도 얼마든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의결해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인 까닭에, 나는 저들이 해임 추진을 밀어붙이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1월 말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들이 전에 동대표 활동했을 당시 사용했던 동대표 운영비 사용 내역을 조사한 국토교통부 공문이 관리사무소로 날아온 것이다. 살펴보니 2000만 원 정도가 불법적으로 지출되었다. 그들은 동대표 운영비도 모자라 관리비에서 끌어다가 동대표 선물비, 경조사비, 심지어 단합대회비 등에 쓴 것이 들통난 것이다.

그런데 모든 걸 공개하려 드는 회장이 그것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니,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해임해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회장을 해임하면 자기들이 원하는 공사, 다시 말해서 아파트로서는 반드시 할 필요가 없는 공사를 마음대로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 같았다.

불법방송 하는 감사

나의 피케팅이 저들에게는 굉장히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좌파 빨갱이' 하면 바로 반응하는 사람들을 대거 동원하면 나를 손쉽게 날려 버릴 수 있다고 낙관했는데, 나의 정문 피케팅으로 아파트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황한 저들은 방송을 했다. "정문에서 불법으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해임 대상자 남기업 회장의 행위는 아파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으로 불법 행위입니다"라고 여러 번 방송하는 게 아닌가.

이 방송을 들은 우리 가족들의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방송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감사였다. 우리 아파트 관리규정에 방송 권한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에게만 있기에 엄연한 불법방송이었다. 아파트의 불법과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할 감사가 불법 행위를 한 것이다. 저들은 정말 못하는 게 없었다.

해임투표 결과는 부결

해임투표는 2월 2일부터 2월 12일까지 무려 11일 동안 진행되었다. 나를 자를지 말지 찬반을 묻는 것이었으니 내 마음은 너무나 괴로웠다. 매일 투표 종료 시각은 오후 6시였는데 상대적으로 젊은 직장인들의 투표 참여율을 떨어뜨리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한편 저들은 투표 참관인 신청도 거부했다. 해임투표 진행에 분노했던 동서가 저들이 투개표 부정을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더니 선거관리위원회에 투개표 참관인 신청을 했는데 거부해 버린 것이다. 항의해도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참관인 신청하면 받아줘야 한다고 규약에 나와 있는데 왜 안 되느냐고 따지는 동서를 저들은 겁박했다. 저들은 관리사무소에 항상 모여 있었다. 그야말로 어이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결국 이렇게 진행된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되었다. 저들이 개표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 때문에 나는 그날 일찍 퇴근해서 개표 과정에 참관했다. 결과는 해임반대 238표, 찬성 176표, 부결이었다. 결과를 듣는 순간 '이제 끝났구나!' 라는 안도감과 함께 통한의 눈물이 와락 쏟아져 버렸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회장 해임투표 공고일부터 개표일까지 정지된 회장 직무는 복귀되었다. 복귀 후 내가 제일 먼저 추진하려고 했던 일은 관리소장 교체였다. 왜냐하면 그는 저들의 적극적 지원자 혹은 기획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관리소장의 언행은 저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쪽에 협력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그는 해임투표 중지 가처분 재판까지 출석해서 해임투표의 정당성과 남기업이 해임 당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역설한 사람이다. 동대표들 간의 갈등에, 그것도 법원 재판까지 와서 나에게 해가 되는 발언을 한다는 것은 그들과 한 식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역시 나는 순진했다. 혼자인 내가 해임이 부결되자마자 다수인 저들에게 공격할 칼을 빼들었으니 말이다. 관리소장 해임은 추진할 수도 없었고, 해임투표도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이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아파트 회장 분투기'는 앞으로 약 30회 정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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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정의와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