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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주요 정밀 화학 물질 3종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다음날인 7월 1일 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요언론 한 목소리로 일본 비판…보수-경제지는 '외교 실패 프레임' 양비론

일본의 조치는 한일관계에서 벌어진 첫 '경제 공격'이기 때문에, 일본 언론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언론들은 선제공격을 가한 일본 쪽에 좀 더 책임의 무게를 두는 모양새입니다. 국내 언론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파이낸셜 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가디언 등 외신들은 '일본이 자기 발등을 찍는다', '자유무역에 대한 일본의 위선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고 합니다. 일본 언론도 마찬가지로 일본 기업 피해를 우려했습니다.

7월 1일부터 4일까지 5개 주요일간지와 2개 경제지의 사설 제목과 주요 내용을 비교해봤습니다. 모든 신문이 일본 정부를 '옹졸하다', '좁은 도량' 등의 표현을 쓰면서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중앙‧동아와 경제지들은 온도차가 있습니다. 일본을 비판하는 동시에 양비론을 펼치며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함과 무대책을 비난한 것이죠.
 
 △ 일본 경제보복에 관한 신문 주요 사설 제목과 핵심 내용(7/1~5)
 △ 일본 경제보복에 관한 신문 주요 사설 제목과 핵심 내용(7/1~5)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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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말도 안되는 주장 ① 일단 문 정부 때리기

사설 중 가장 눈에 도드라지는 것은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일보는 7월 4일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과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 2건을 함께 게재했습니다.
 
 △ 조선일보 4일자 사설란에 나란히 실린 양측 정부 비판 사설(7/4)
 △ 조선일보 4일자 사설란에 나란히 실린 양측 정부 비판 사설(7/4)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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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설/일본도 중국 수준의 나라인가>(7/4)에서는 일본 정부를 "(국가별 호감도 최상위권 국가인 일본이) 알고 보니 무도한 경제 보복을 일삼는 중국과 다를 것 없는 수준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밑의 <사설/'전략적 침묵'한다는 청와대, 무능 무책임일 뿐>(7/4)에서는 "다각도로 보복 조치를 검토한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수도 없이 나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일본에서 무슨 일이 돌아가는지 깜깜했다"며 "대일 강경 외교 일변도이던 청와대는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전략적 침묵'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무능이자 무책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한편, 조선일보는 곳곳에서 한일 청구권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보였습니다. 조선일보 <사설/일본도 중국 수준의 나라인가>(7/4)를 잘 뜯어보면 '굴욕적 한일청구권 협정을 일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규범을 지키는 국민, 국가라는 평가를 받는' 일본이 경제 보복 대신 외교적 해결을 보는 것이 좋다'는 뉘앙스를 줍니다. 사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세계 국가별 호감도 조사에서 일본은 늘 최상위권에 속하는 나라다. 이런 호평을 받는 것은 규범을 지키는 국민, 국가라는 평가 때문일 것이다. 이번 무역 보복을 보면 일본도 알고보니 무도한 경제 보복을 일삼는 중국과 다를 것 없는 수준이다. 과거 한일청구권 협정문에 '양국 간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확인한다'고 명시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이 이 합의를 깼다고 일본이 분노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외교적 방법이 아니라 경제 보복이라는 폭력적이고 야비한 수단으로 표출하나. 양국 관계의 미래를 위해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조선일보의 말도 안되는 주장 ② 일본경제 보복은 52시간제 때문?

한편, 조선일보는 일본 경제보복을 기회로 각종 소재를 '변주'하여 한국 정부 비판에 열을 올렸습니다. 일본 경제보복에 뜬금없이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언급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일본 경제보복은 기초과학이 약해 일어난 일인데 노동시간 단축으로 기술개발이 느려지게 됐다'는 취지입니다.

조선일보는 <사설/세계는 기술 전쟁, 일은 기술 보복, 한국은 불 꺼진 연구소>(7/3)에서 일본 경제보복과 노동시간 단축을 연관시켰습니다. 느닷없이 "일본이 우리의 기술 약점을 겨냥해 보복을 가하고 전세계가 과학기술 개발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는 연구‧개발자들이 일하고 싶어도 못 하게 막는 기막힌 나라가 됐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핵심 기술의 대일 의존도를 줄이려면 자체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지원해야 할 정부가 도리어 기술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며 비난까지 덧붙였습니다.

조선일보는 7월의 노동시간 단축 확대를 앞두고 그동안 <주 52시간제 1년의 명암>이라는 기획기사를 연재해 왔습니다. "연구 개발자들이 일하고 싶어도 못 하게 막는 기막힌 나라"라는 이 사설은 마치 기획기사의 화룡점정처럼 보입니다.
 
 △ 일본 경제보복에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비판하는 조선일보(7/3)
 △ 일본 경제보복에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비판하는 조선일보(7/3)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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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중앙, 한경, 서경과는 클래스가 다른 조선의 우기기

일본이 반도체 소재와 장비를 독점한 것은 노동시간 단축 훨씬 전부터 벌어진 일인데 둘을 연관지은 것도 황당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조선일보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우선, 노동시간이 68시간이었던 이유는 고용노동부가 노동법에 '1주간 연장 노동시간을 12시간으로 제한한다'고 쓰여 있던 것에 대해 '1주에 주말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일반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즉, 이번에 단축된 16시간은 어차피 주말노동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노동시간이 68시간이든 52시간이든 주중 저녁시간엔 연구소 불이 똑같이 꺼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한국의 노동시간 제한은 40시간이고 12시간은 예외적인 연장노동시간입니다. 이미 주당 12시간의 '탄력근로시간'이 있는 셈이지요.

게다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 <연구개발분야 노동시간 단축 현장안착을 위한 소통 강화>를 보면 이전에도 국책연구소 연구자들의 노동시간은 주당 평균 45시간으로 52시간보다 짧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노동시간이 많아 연구자들을 혹사시킬수록 기초과학이 발전했다면, 연간 노동시간이 한국보다 많은 코스타리카(2179시간)와 멕시코(2257시간)가 세계 최고의 기술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일본을 포함한 대다수의 기술 강국들은 한국보다 근로시간이 200시간 이상 짧습니다.

경제지와 여타 보수성향 신문들도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노동시간 단축 정책에 대해 비슷한 논리로 볼멘소리를 쏟아내고 있었지만, 최소한 조선일보처럼 일본 경제보복과 직접적으로 연관짓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의 말도 안되는 주장 ③ 친일 논리의 '만물상'

조선일보 <만물상/청구권과 사법 농단>(7/5, 임민혁 논설위원)은 더 노골적입니다. 이 칼럼은 우선 '청구권 협정'을 체결한 당사자인 고 김종필 총리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기 전에 먼저 빵을 먹고 자라는 것"이라는 회고록 내용을 언급하면서 시작합니다. 임민혁 논설위원은 65년의 청구권 협정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우리 정부는 (청구권) 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달러, 장기 저리 2억달러 상당의 물자'를 받았다. (중략) 이 돈은 포항제철‧경부고속도로 등의 밑천이 됐다. 청구권 협정에는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보상도 명시돼 있다. 강제징용자를 103만여 명으로 산정하고, 개인청구권에 대해서는 '나라로서 청구하며 개인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조치하겠다'고 했다. 피해자를 대신해 자금을 받은 한국 정부가 개별 보상으로 해결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대부분 자금을 경제개발에 투입하다 보니 피해자들에게 돌아간 돈은 92억에 불과했다.
 
 △ 강제징용자의 개인청구권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는 조선일보 <만물상>(7/5)
 △ 강제징용자의 개인청구권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는 조선일보 <만물상>(7/5)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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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주장은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은 없어졌으며, 피해보상금은 한국 정부가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청구권 협정 전말을 짜깁기한 왜곡입니다. 임민혁 논설위원이 청구권 협정에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보상이 명시되어 있다고 주장한 근거인 '강제징용자를 103만여 명으로 상정했으며, 개인청구권을 나라에서 조치하겠다며 없앴다'는 대목은 한일협정문 조약에 들어가 있는 문구가 아니라, 2005년 공개된 한일 양측의 의견대립을 담은 한일협정 당시 외교문서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2005년 문서 공개 당시 연합뉴스 <한일협정 문서 공개 의미와 파장>(2005/1/17)에 따르면, 이 때 공개된 문서에는 한국 정부는 강제 징용자를 103만여 명으로 상정하고 이에 대한 개인보상금 3억 6400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문제는 당시 일본 정부가 이것을 개인보상금이 아니라 경협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2005년 문서 공개 때 일부 전문가들은 '이 문서 공개로 개인청구권이 살아날 수 있다'는 전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현 시점에서 국제법 학자들, 그리고 한국 대법원과 일본 정부의 법적 판단이 달라지는 대목은 외교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있는지/없는지의 여부이기 때문에 조선일보의 칼럼이 주장하는 논리는 '뒷북'에 불과합니다.

이번 경제 보복의 원인이 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2012년 대법원이 '외교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한 뒤, 고등법원에서 확정되었지만 일본 측이 재상고함에 따라 다시 대법원에 판단이 맡겨졌습니다. 애초에 우리 정부 책임 범위에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대법원은 이유 없이 이 판결을 5년 이상 끌었는데, 박근혜 정권이 물러난 후 그 이유가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대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그런데 만물상 칼럼은 청구권이 이미 정리됐다는 주장에 이어서, 해당 대법원 판결을 '한일관계의 폭탄'이라고 표현하며 박근혜 정부 시절 '사법 농단'을 옹호했습니다.

임민혁 논설위원은 "당시 주심인 김능환 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썼다'고 했지만,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판결을 따르자니 국제적 합의를 깨야 하고, 그렇다고 판결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이후 외교부와 대법원은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의견을 교환했다. 이 정부는 이를 '재판 거래' '사법 농단'으로 낙인찍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 거래', '사법 농단'을 '의견 교환'으로 포장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얼마 전 한 판사가 '전 정부 대법원이 강제징용 사건 판결을 미룬 것이 외교적 해결을 위한 시간을 벌어 준 것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을 언급했습니다.

사법부와 정부가 삼권분립을 깨고서라도 '의견 교환'을 해서 대일외교를 위해 5년 동안 국민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해도 된다는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주장은, 그 동안 조선일보가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사법부 장악'이라며 비난한 것에 비추어 보면 어처구니없는 자가당착입니다. 조선일보에는 나라도 없지만 논리도 없는 모양입니다.

이미 충분한 친일의 역사에 하나를 더 얹는 최근 조선일보 보도

최근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친일 역사에 또 하나의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충분히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2019년에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이며 반역사적이며 반민족적인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에 친일언론의 역할을 다해왔고, 해방 이후에도 한번도 반성이나 사과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한일협정 당시에도 조선일보는 "우리(국민)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했다는 (박정희)정부의 자부", "국민들의 감정의 크기에 비하면 조인된 제 협정은 너무나 기대에 어긋난 감", "어느 정권이 맡아 한들 현재와 같은 여건 하에 그 이상은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에 일말의 동정 운운하며 양시양비론을 폈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선일보는 박정희 정부의 친일적 태도를 우려하며 아래의 사설을 쓴 바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보도는 조선일보로 반박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물상을 쓴 논설위원 및 조선일보 종사자들에게 조선일보의 <사설/방황하는 대일 주체성>(1966/2/13)를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 사설은 이른바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되살아난 친일파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취지에서 당시 최석재 주필이 작성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거친 홍역을 치렀던 한일 간의 새 국교가 개시된 지도 벌써 두 달이 가까워 오고 있다.(중략) 국교가 개시된 이상 지난날의 대립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선린우호의 터전을 마련하자는 것은 당연한 귀추요, 여기에 조금도 우리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한일문제가 거국적 논쟁의 초점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대부분 지도층은 한결같이 '민족주체성'을 운위했던 것이며, 한일수교를 적극 추진한 정부‧여당이나, 그것을 반대한 야당이나, 그리고 찬반을 초월해서 지식인‧학생‧경제인 할 것 없이 이점만은 거의 동일한 논거에서 대일경계의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중략)
문제는 지난 일이 아니라 이제부터의 일인데, 이미 한일국교가 재개된 지금 그렇게 요란스럽게 거국적으로 떠들던 '민족주체성' 다시 말해서 대일 주체성은 과연 어떻게 구체화하고 있으며, 대일교류의 국가적 태세나 각계의 현실적인 자세에 있어서 어떤 원칙과 목표가 뚜렷이 서 있는가, 없는가를 우리는 다시 한번 요로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며, 국민들의 자각을 호소하고자 한다. (중략)
끝으로 한국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정체를 분간 못할 두 가지 성명을 가지고 행세하는 유명무명의 인사들이 왔다 갔다 하며, 심지어 시민회관의 간판에 대문짝만한 일본이름의 광고까지 나붙는 요즘이다. 민족의 '대일주체성'이 건전한가, 어떤가 모두 반성해주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방황하는 대일 주체성>(1966/2/13) 중에서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7월 1일~5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별지섹션은 제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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